적당히 알던 동생은 꼭 챙겨줘야 하는 동생이 되었다.
회사에서 종종 부고 메일을 받는다.
메신저에 울리는 알림 하나, 제목을 보면 벌써 내용이 짐작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장이 제목에 담긴다. 당사자들은 상을 치르고 오면 감사의 메일을 보낸다.
삼가 감사 인사 올립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참석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나
서면으로 인사드리는 점 헤아려주시면..
이런 류의 메일이다. 대부분 복붙에 가까운 똑같은 멘트의 메일이다. 말 그대로 관례적인, 형식적인 글이다. 간단히 읽고 끝나게 된다. 무례하지 않게 읽고, 감정을 담지 않고 넘어간다.
이러한 복붙의 홍수 속에 기억나는 메일이 있다. 얼 전에 받은 아는 동생의 메일이다.
(중략)
어머니께서는 수년간 암으로 투병하셨지만 늘 삶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으셨고, 마지막 순간에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 곁에서 평온한 표정으로 마지막 호흡을 내쉬며 잠드셨습니다.
올해 3월 제 생일날 어머니께서 뭔가를 아셨던 듯이 '태어나줘서 고맙다. 우리 아들 기르면서 행복하고 많이 즐거웠다'는, 평소와는 다른 마지막일 것만 같은 생일 축하 문자를 보내오셔서 괜히 눈시울을 붉혔던 기억이 납니다.
(중략)
저의 두 자녀들을 양육하는 데 있어서도 분명 힘들 때도 있지만 자녀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어머니처럼 감사하며 희생적으로 양육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님께서 생전에 삶으로써 본보기를 보여주신 것처럼, 바른 신앙과 양심을 지키고 주변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살겠습니다!
메일을 읽고 한참을 멍하게 화면만 바라봤다. 복사해서 붙인 듯한 문장이 아니라, 한 자 한 자 눌러쓴 글이었다. 그가 겪은 시간들, 아물지 않은 감정이 문장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사실 이 동생과 그렇게 긴밀한 사이는 아니었다. 함께 일한 기간도 짧았고, 업무상 가까운 관계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한 통의 메일로 그는 내게 인성이 참 좋은 동생으로 각인되었다.
사람의 솔직한 진심은 상대를 감동시킨다. 감동은 관계를 단순한 동료 이상으로 만든다. 진심이 담긴 문장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오래 기억에 남는다.
직장 생활에서는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쉽지 않다. 감정을 감추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래서 더더욱, 그런 진심이 담긴 한 줄의 문장이 울림이 된다.
글을 잘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진심을 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