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력이 없어도 회사에서 살아간다

정치력 대신 회사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by 배부른기린

나름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월급이 밀린 적이 없다. 게다가 월급은 꾸준히 우상향해 왔다.


월급 우상향의 기울기는 개인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가파를 테고, 어떤 이는 완만하다. 고과에 따른 것이겠다. 기울기를 높이려는 조직 안에서의 소리 없는 전쟁은 매일 일어난다.


인간 사회에서는 정치라는 것이 존재한다. 먼 옛날 수렵, 채집을 하던 때에도 있었을 것이다. 무리의 강자가 있고, 강자가 사냥해 온 고기를 아부를 통해 얻어 가는 그런 류의 조상도 있었을 것이다.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의 일이지만 쉽사리 추론이 가능하다.


문자 발명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다. 펜보다 칼이 앞서던 시대의 정치력은 생존력이었다. 수만 년이 흘렀지만 인간 사회는 여전하다. 여전히 모든 조직에서 정치가 이루어진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정치를 잘하는 사람들이 조직 내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




정치적인 면에서 보면 나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회사 생활을 하며 성과 어필을 잘하지 못했다. 그저 묵묵히 할 일 잘하면 누군가는 알아준다고 믿었다. 학창 시절 선생님과 부모님께 그렇다고 배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회사는 우는 아이에게 맛있는 떡을 주었다. 힘들다고 울고, 다른 곳 보내 달라고 우는 아이에게 기회를 더 주었다. 자기 일만 묵묵히 하면 묵묵해지고,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되었다. 내가 고생한 것은 알아주는 것은 나뿐이다.

입사 3년 차 면담에서 그것을 깨달았다. 순서대로 고과를 주는 관행. 그것을 따르는 부서장 덕분이었다. 정치 센스가 부족하고 어필에 능하지 않은 내가 선택한 것이 있다.


적당히 일하는 것이었다.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이후 면담은 그저 통과의례일 뿐이었다. 5분이 넘지 않았다. 고과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그저 남들 하는 만큼 해왔다. 아니 중간 이상은 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주말 출근과 야근의 바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두 차례 조기 진급으로 남들보다 빠른 성장을 한 선배가 있다. 정치력이 좋다고 평가받는 선배다. 선배에게는 나에게 없는 것들이 있다. 빠른 눈치와 판단력 그리고 적절한 성과 어필이다. 최근 선배가 해준 조언을 생각해 본다.


"부서장 면담은 회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야. 면담이 갑자기 잡힌다 해도 생각했던 것을 상사에게 말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준비해야 둬야 한다"


"나는 회사에서 어떤 커리어 패스를 탈지 항상 생각한다. 산책하다가도, 샤워하다가도 문득 떠오르고 그래"


어필이 중요하다는 것이 선배의 생각이다. 특히나 면담은 어필을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자리인 것이다. 선배가 보기에 그 중요한 면담의 기회에서 소득 없이 나오는 내가 안타까웠을 것이다. 면담 때마다 5분을 넘기지 않았으니 말이다. 면담이 끝나면 잔소리를 한다. 하고 싶은 말을 했냐며 말이다.


선배의 기대와는 달리 실제 고과 면담에서 나의 성과를 어필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교육과 주재 그리고 임원까지 가는 회사 내의 커리어는 나의 삶의 우선순위에 있지 않다.


임원까지 가는 커리어에는 많은 희생이 따른다. 가족과 건강 그리고 나의 시간의 기회비용 등이 그것이다. 투자 마인드로 접근한다면 가성비가 떨어지는 행위다. 물론 명예라는 정량으로는 측정하기 힘든 것이 있긴 하지만 나는 명예욕과 권력욕이 그다지 크지 않은 사람이다.


선배는 회사 내의 성공을 꿈꾸고, 나는 회사 밖에서의 성공을 꿈꾼다. 나와 선배의 차이가 이것이다. 가치관의 차이겠다. 길을 걷는 중에 내가 투자나 사업 아이디어를 생각한다고 하면, 선배는 회사 내에서 어떻게 해야 임원에 가까워질까를 고민한다.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의 분야가 극명하게 갈린다.




나는 회사 밖에서 투자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나의 투자 성과나 내가 가진 생각을 선배는 모른다. 오픈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선배는 더 안타까워할지 모른다. 회사에서 성공하려면 본인처럼 해야 할 텐데 후배가 따라오지 않는다. 내가 투자를 하라고 잔소리를 해도 하지 않는 후배를 보는 기분이 이럴 것이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이다. 다르지만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목표는 달라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분명하다.


정치력이 있다 해서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력이 없다 해도 살아가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강점을 찾아서 키우면 될 일이다.


정치력이 없는 사람이 있고, 있는 사람이 있다.


나 같은 사람이 있고, 선배 같은 사람이 있다.


무엇이든 정한 길이 있다면 좋은 것이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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