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된다, 인간사가 바뀌지 않는 이유
초한지의 주인공은 유방이다.
훗날 한나라를 세우고 한고조라 불리게 된다.
그에게는 같은 고향 사람들이 있다. 무관으로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번쾌가 있었다. 훗날 한나라 건국의 공신이 된다. 문관으로는 재상까지 오른 조참과 소하가 있었다.
유독 고향 출신의 인물들이 많았던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신이 어지러운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 인물들을 몰아 태어나게 한 것일까.
비슷한 사례는 서양에도 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버지니아 출신이다. 그 뒤를 이은 토머스 제퍼슨도 버지니아 출신이다. 무려 5대 대통령까지 줄줄이 버지니아에서 나왔다.
마치 신이 버지니아를 특별히 편애한 듯한 모습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나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
정보가 부족하던 그 옛날,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칼이 붓보다 가까이 있던 시절이다. 믿을 만한 사람을 선택하지 못하면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
그나마 믿는 사람의 추천이 검증의 절차였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 고향 사람으로 채우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지연(地緣)이 생겨난 이유다.
요즘은 조금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지연보다 학연이 더 강력하다고 느낀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며 지역의 경계는 옅어졌다. 대신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학연이 더 강하게 작동한다.
회사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사장, 전무의 진급 라인을 보면 같은 학교 출신이 보인다. 같은 학교 출신의 부장이 임원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다른 학교 출신 직원이 월등히 뛰어나지 않다면, 결국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이것을 회사에서는 "라인"이라고 부른다.
학연, 지연을 타파하고 실력만으로 선발한다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게 작동한다.
잘 나가던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우리 상무님, 줄도 없고 해서 고생하는 거 보이잖냐.”
결국 선배는 임원 목표를 접었다.
역사를 보나, 회사 생활을 보나, 인간사의 패턴은 크게 다르지 않다.
수천 년을 반복해 온 것을 보면, 씁쓸하지만 쉽게 바뀌기 어려운 현실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