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무게를 덜어내고 얻은 것
학창 시절, 나는 모든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한 반에는 대략 다섯, 여섯 개의 무리가 있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집단들이다. 어떤 무리는 일곱, 여덟 명이었고, 어떤 무리는 두세 명뿐이었다. 혼자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각 무리마다 주제가 있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무리, 게임을 즐기는 무리, 음악 이야기를 하는 무리 등이다.
나 역시 내 무리 속에서 어울리며 지냈다. 그런데 나는 조금 욕심이 있었다. 다른 무리와도 두루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것이다.
A 무리와 점심을 먹고, B 무리와 오후 수업을 듣는다. 다음 날은 C 무리와 점심을 먹고, D 무리와 축구를 했다. 생일이면 매점에서 과자를 사서 여러 무리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내 장점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주기적으로 만나는 약속을 잡고, 모임마다 계를 만들어 매년 여행을 떠났다. 결혼식 날에는 친구들이 많이 와서, 단체 사진이 빽빽하게 찍히기도 했다. 친구들 속에서 나를 찾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려 애쓰지 않는다. 심지어 예전 친구들조차 서서히 멀어졌다. 주기적으로 가던 모임에도 나가지 않은 지 꽤 오래됐다.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다. 업무 시간에는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지만, 퇴근 후 술자리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피한다. 관심사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서른 중반을 넘기면서 가족이 생기고, 경제적 목표가 생겼다. 자연스레 새로운 것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뛰어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나를 찾았다.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것을 하면서 말이다.
모든 사람과 친해질 수는 없다.
이제는 그 사실을 인정한다. 남들에게 맞추려는 노력을 줄이니 에너지가 덜 새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
좋은 선순환이다.
그렇다고 왕따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적당히 관계를 맺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싶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