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함 위의 작은 손글씨가 남긴 울림
아는 형의 모친상이 있었다.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퇴근 후 곧장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형을 만났다. 평소보다 한층 수척해 보인다. 애써 담담함을 유지하려는 표정이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인께 인사를 드린 뒤 조의금을 내려 부의함으로 향했다. 부의함 위에는 손글씨로 메모가 붙어 있었다.
“조의금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와주신 진심으로 충분합니다.”
장례식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문구였다. 손글씨에는 장례를 치르는 유가족의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유족의 선택은 단순히 예의의 표현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형은 그렇게 부자는 아니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는 있지만, 강남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삶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기에 이 결정을 단순히 재정적 여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사실 조의금을 받지 않겠다는 선택은 진짜 부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체면이나 형식, 관습이라는 이름 앞에서 흔히 망설이게 되는 것이 인간사다. 그럼에도 유족은 과감히 그 길을 택했다.
그 한 문장은 짧았지만 많은 것을 전했다. 겸손과 사려 깊음,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었다. 힘든 시기에도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그 태도에서 유족의 인품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인품은 단지 형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고인의 삶이 자녀의 태도 속에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의 품격은 자녀의 행동으로 드러난다. 그날 나는 그것을 보았다.
이런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긴 세월 동안 쌓여온 삶의 방식, 꾸준히 지켜온 가치관이 쌓이고 묻혀 있다가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부분이며, 외부의 시선을 위해 흉내 낼 수도 없는 부분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본다. 나는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진심, 타인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 힘든 순간에도 품위를 지키려는 자세.
그것은 단순히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해왔는지가 본질이다.
힘든 순간에도 남을 먼저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돈보다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언젠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