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집에서 배운 뜻밖의 온기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친한 친구의 어머님께서 동네에 작은 호프집을 오픈하셨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친구였다. 친구는 재수를 준비 중이었다. 친구의 형은 군 복무 중이었다. 사실상 어머님 혼자 운영하셔야 했지만 경험도, 여유도 부족했다.
내가 돕기로 했다. 나도 처음이고, 어머님도 처음이다. 주방 옆 좁은 공간에서 주문을 받고 서빙을 했다. 치킨을 튀기고 맥주를 내주며 손님들의 눈치를 배웠다. 서투른 손길로 잔을 나르고, 손님들의 표정을 살피며 한 마디씩 대꾸했다. 낯선 상황이었지만 금세 몸에 익었다.
배달도 해야 했다. 오토바이를 탈 줄 몰랐던 나는 자전거를 이용했다. 치킨 봉지를 핸들에 걸고 골목을 비틀거리며 달렸다. 균형을 잃을까 두려웠지만, 한 집 한 집 무사히 배달을 마쳤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이게 진짜 노동이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어머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안주를 조금 내주시면 나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사는 이야기, 자식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시간은 단순히 아르바이트를 넘어 삶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가끔은 손님이 없는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기도 했다. 치열한 대학 생활 속 작은 쉼표 같은 공간이었다.
두 달 정도 함께한 시간 끝에 마지막 날이 왔다. 어머님께서 내 손에 용돈을 쥐여주셨다.
원래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힘든 형편의 친구를 돕고 싶었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 여겼다. 거절했지만 끝내 떠밀리듯 받아야 했다. 어머님의 따뜻한 마음이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문을 나서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겐 참 진한 기억으로 남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 예감은 맞았다.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난다.
이후 시간이 흘러 어머님을 가끔 뵐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어머님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웃으며 고맙다고, 늘 마음에 남아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인사 속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가끔은 생각한다.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시간은 의도치 않게 오래 남는다. 계획하지 않았고, 길지도 않았는데도 묘하게 오래 기억된다.
호프집에서의 두 달이 내게는 그런 시간이다. 그때의 수고가 내 삶에 어떤 보상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지만, 뜻밖의 온기를 남겨주었다.
가끔 지나간 시간들이 이런 식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무심히 떠올렸을 뿐인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
이 기억은 아마도 그런 종류의 추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