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난다고 다 자라는 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선호라는 친구가 있었다.
덩치가 크고 뚱뚱한 아이였다. 여름만 되면 몸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잘 씻지 않아서 그런 건지, 빨래를 자주 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 냄새 때문인지 여자 친구들은 유독 선호를 싫어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짝꿍을 정하라고 하신다. 원하는 친구와 짝이 될 수 있는 기회다. 아이들은 다들 좋아하는 친구를 빠르게 찾는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선호와 함께 앉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해 일 년 동안 여러 번 선호와 짝이 되었다. 그렇다고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적당히 잘 지냈다. 선호 집에 놀러 간 적도 있었다. 아마 선생님은 내가 선호를 색안경 없이 바라보는 몇 안 되는 아이 중 하나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참 순수했다.
냄새가 나든, 인기가 없든,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선호는 선호였고, 나는 나였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편 가르기를 잘하지만, 나는 그런 경계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함께 있으면 웃고, 같이 놀면 즐거운 게 전부였다.
어른이 된 지금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그렇게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세월이 흐르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도 복잡해졌다. 조건을 따지고, 상황을 고려하고, 때로는 손익을 계산하기도 한다.
물론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쉽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런 계산 따위 없이 사람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선호와 함께했던 그 시절은 나라는 사람이 가장 가볍고, 가장 따뜻했던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덜 알았고, 덜 따졌고, 덜 의심했다. 대신 조금 더 솔직했고, 조금 더 단순했다. 그 시절의 나는 조건 없이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는 더 많은 걸 알게 되고, 더 많은 걸 따진다. 그렇다고 해서 나빠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살이에서 필요한 눈치와 분별력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건 없이 누군가를 대했던 그때의 마음이 그리울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난다고 다 자라는 건 아닌가 보다. 키만 크고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마음까지 자라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진짜 성장은, 어릴 적의 순수함을 다시 꺼내올 줄 아는 능력일지 모른다.
나는 여전히 그걸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