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죽고 나서 우리 집에서 겨울을 나신 친정엄마는 1년 동안 언니네 집에 계시겠다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인 조카에게 따뜻한 아침밥을 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나와 동생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언니가 도시락을 두 개씩 싸주며 뒷바라지를 해주었기에 친정엄마는 직장 생활하는 언니 대신 조카에게 밥을 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나와 남편은 아침저녁으로 아이 등하원을 시키며 직장생활을 하느라 늘 분주했다. 친정엄마가 없는 생활이 우리 가족에겐 처음 육아를 시작하는 가정과 다를 바 없었다.
처음 아이에게 매를 들던 날
그날도 아이의 하원은 내 몫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버스를 타고 다니며 회사 근처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냈기에 조잘대는 아이의 손을 잡고 등하원 길은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일곱 살이 된 아이는 여전히 기차, 지하철, 버스를 가리지 않고 타는 것은 무조건 좋아했다. 퇴근 시간에는 그래도 버스 좌석이 여유가 있어서 아이는 버스를 타자마자 휠 박스가 있는 자리에 앉아 신이 났다. 아이는 매일 보는 바깥 풍경 구경이 늘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버스가 출발한지 몇 정거장 지나 뒷자리에 두 개의 좌석이 비었고, 나는 아이의 손을 끌어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서 갑자기 우는 아이를 보며 나는 당황했다. 왜 우는지 물어도 대답은 하지 않고 짜증만 내며 울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아이는 울며 계속 짜증을 내며 떼를 썼다.
저녁도 차려야 하고 집안 일만 머릿속에 가득했던 나는 아이의 짜증과 울음이 이해되지 않았다. 계속 떼를 쓰는 아이에게 극약 처방으로 매를 들어 아이를 위협하며 “왜 자꾸 짜증을 부리냐?”고 물었다. 버스 안에서는 대답을 하지 않던 아이는 그때서야 “엄마가 마음대로 버스에서 자리를 바꾸었잖아?”라며 훌쩍거렸다. 나는 발밑에 불쑥 올라와 있는 휠 박스 때문에 불편할 거라 생각해서 좀 더 편하게 앉으라고 자리를 옮겼다고 설명을 해도 아이는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 아이의 떼를 감당하기 힘겨웠던 나는 매로 아이의 떼를 잠재웠다.
아이는 저녁도 먹지 않고 울다 잠이 들었고, 잠든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복잡했다. 생각해보니 버스의 그 자리는 아이에게 더 없이 좋은 자리였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왔다. 어른들에게는 불편한 자리지만 다리가 짧은 아이에게는 그 자리가 적당했고, 바깥 풍경을 구경하기에 안성맞춤인 자리였던 거였다. 한창 신이 나서 바깥 풍경을 구경하고 있는 아이에게 자리를 옮겨도 좋은지 물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자리를 옮기게 해 놓고 떼를 쓴다고 매를 든 참으로 어이없는 행동이었다. 다시는 아이에게 매를 들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며 잠자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당위성은 좁은 시야를 만들고, 화를 부른다
그리고 2년 뒤 나는 또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말았다. 그날은 아이와 게임을 하다가 일이 벌어졌다. 주사위를 던져 칸에 적혀 있는 숫자를 더해 점수가 큰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게임은 내가 점수가 많은 상황이었고 아이는 자기가 지고 있다는 거에 조금 짜증이 나 있었다. 거실에서 게임을 하다가 아이에게 지우개가 필요했다. 갑자기 아이는 나에게 지우개를 가져오라고 했다. 나는 “너에게 필요한 거니 네가 가져오라”고 말했고, 아이는 “엄마가 가져다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내가 아이와 게임을 하는 건 함께 즐기기 위한 놀이의 목적도 있고, 게임 규칙을 지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분명히 자기에게 지우개가 필요한 상황이고 자기 방에서 지우개를 가져와야 하는데 가져오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말이 통하지 않자 화를 참지 못한 나는 아이에게 손을 댔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더 아이에게 화를 내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 나에게는 아이와 게임을 즐기는 거보다 게임 규칙을 지켜야 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지우개는 아이가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나는 사건 중심의 사실에 집중하여 옳고 그름만 아는 성향으로 아이의 마음을 전혀 살피지 못했다. 아이는 게임에 이기고 싶었고, 게임에 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우개를 가지러 가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그 또한 아이가 받아들이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당위성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 아이에게 화를 내며 아이의 고집을 꺾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아이와 잘 놀겠다는 즐거움도 사라지고 참담한 마음만 남았다. 언니가 조카에게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보며 “왜 아이를 그렇게 키우냐”고 했던 나. 나는 한 술 더 떠 아이를 때리는 엄마였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거늘 나는 매나 신체를 이용해 나의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해 폭력을 행사하는 엄마였다. 아이의 마음에 한 번만 관심을 기울이면 될 일인데 그걸 하지 못해 화를 키우고 때리는 엄마였다.
체벌이 부르는 참사, 아이의 마음이 자라지 못한다
아이에게 체벌이 좋지 않은 이유는 수백 가지를 들어 설명할 수 있다. 무엇보다 체벌은 아이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힌다.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은 무력감과 함께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을 주어 자존감 형성에 치명적이다.
두 번째는 아이에게 공포심을 심어준다. 어린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분명히 표현할 수 없어 떼를 쓸 수 있다. 그 상황에 매를 들면 아이들이 몸이 움츠러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공포심에서 오는 자동적인 신체적 표현이다. 체벌을 행사하는 사람은 고압적 태도로 아이를 위협하게 되는데 이것이 아이에게는 극도의 두려움, 공포심을 일으켜 일단 항복하게 되는 거다.
세 번째는 아이가 폭력성을 배우게 된다. 어떤 갈등의 상황이 아이에게 닥쳤을 때 아이는 자신이 경험한 방식으로 대처하게 된다. 어릴 때 각인된 방식이 무의식적으로 나오게 되기에 그렇다. 특히 성장기가 되어서는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골라 가해자가 되어 자신이 당했던 것을 복수하는 폭력 행사가 될 수 있다.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격이다.
네 번째는 체벌로는 목적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체벌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미 화가 났거나 습관화된 상태로 화의 감정만 있을 뿐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반항심과 복수심 등을 키울 수 있다. 그러니 어떤 형태든 폭력은 폭력을 낳을 뿐이다.
그 후에도 나는 한 차례 더 아이를 때리는 일이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상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아이 방에 있던 브로마이드가 말아진 걸로 아이를 때렸다. 그 때 알았다. 나는 내 안에 나도 모르는 화가 있고, 그 화를 다스릴 수없는 사람임을.
화의 정체를 알 수 없어 화를 낸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가’ 정체성에 의심이 생겼고, ‘내가 과연 엄마의 자격이 있나’ 괴로웠다. 나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 지 몰라 무서워졌다. 더 이상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는 엄마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아이가 존경하는 엄마는 되지 못해도 아이에게 어려움이 생겼을 때 엄마에게 말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그 꿈이 사라지고 있었다. 분명 나에게 어떤 ‘화’의 근원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거나 대면을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엄마의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엄마가 언제 오는지 물어오는 데 일만 앞세우고, 아이에게 화를 내며 때리기도 하는 나는 문제가 많은 엄마였다. 나는 어릴 때 부모님에게 단 한 번도 맞아 보지 않았고, 호되게 야단을 맞은 경험도 없는 데 어째서 나는 아이를 이렇게 대하고 있는지.
‘훌륭한 엄마는 아니어도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엄마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아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내가 상담심리를 공부하게 된 계기다. 엄마의 역할을 배워서 익혀야 하는 사람. 상담심리를 공부하며 나는 나도 몰랐던 나, 들여다보기 싫어 외면했던 나를 만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