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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Sep 05. 2024

이직을 앞둔 '전직 경단녀'의 두려움

이직 제안이 왔습니다. 덜컥 손을 잡았죠. 그리고 울었습니다, 아주 많이

결국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어제 오후, 정확히는 이직할 회사 인사담당자와 미팅을 끝낸 5시 15분부터 참아온 눈물이다. 남편과의 통화에서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그러다, 다시 회사에 못 들어가면 어떡해요.” 이 말을 뱉으며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비로소 처음 들었다. 그렇구나. 나는 지금 회사가 아쉬운 것도, 옮겨갈 회사의 사람들과 업무가 두려운 것만도 아니다. 잘못한 선택으로 취업전선에서 이도저도 다 놓쳐버린 후 ‘아무도 뽑아주지 않는, 함께 일하자고 말해주지 않아 집에서 덩그마니 앉아 빨래를 개고 있는 경단녀’로 영원히 남을까봐 무서운 거다. 가정에는 내가 필요하지만, 가정을 제외한 여집합 '이 사회'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을 거란 두려움. 사회로부터 격리돼 그저 집안일에만 몰두할 수 밖에 없는 처지. 한 번 겪어봤기에 그 초조함을 너무 잘 아는지라, 나는 이직을 앞두고 그 다음, 다음을, 어쩌면 그 다음에조차 오지 않을 미래를 미리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겁이 많이졌구나. 한참 울고 나니 비로소 잔뜩 움츠러들어 좁아져있던 시야가 확 넓어지며 이성이 돌아왔다.

  

내 몸 혼자 건사하며 살 땐, 거칠 게 없었다. 이직을 고민할 때 심플했다. 내가 하고싶은-할 수 있는 일인지, 연봉은 얼마인지, 미래 성장 가능성이 있는 일(직장)인지, 같이 일할 사람들은 어떤지, 일할 회사가 대외적으로 어떤 이미지를 가졌는지. 순위로 따지면 이러했고 이 중에서도 내 고민은 3번을 넘어가지 전에 쉽게 결론을 만들었다. 그래서 때론 남았고, 때론 옮겨갔다. 가서도 하던대로 하면 웬만해선 적응했고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 이직을 고려할 때 전에 없던 변수가 생겼다. 육아환경이다. 아이를 (내가 무리하지 않고) 등하원시키며 출퇴근할 수 있는지, 집에 와서 아이를 잘 케어하며 지속할 수 있는 일인지-가 모든 조건을 뒤로 물려두었다. 그래서 고민하다 글로 적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이제 가장 큰 변수는 우리 아이가 되었다’고. 계약서까지 썼고 당장 10월부터 출근하기로 한 회사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재택근무와 자율출퇴근제였다. 그러면서 내 아이디어를 짜내 ‘내가 기획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단순반복업무와 나를 본인 개인비서&감정쓰레기통으로 쓰는 상사에 지쳐가던 나는 이 두가지 조건만으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당장 가겠다고 말했고, 이쪽에는 당장 그만두겠다 말했다. 그런데, 계약서를 쓰러 간 어제 미팅에서 인사담당자는 출퇴근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실적’만 나오면 된다-는 말을 열 번 정도 했다-실적. 실적이란 말을 기실 오랜만에 들었고, 비로소 내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을 떠나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에 발을 들였다는 실감이 났다. 재택을 하되, 몸은 아이 옆에 있지만 모든 정신과 신경이 일에 매달려 아이를 재우고 난 후 거실에 혼자 앉아 일로 밤 새울 내 모습이 그려졌다.      

설상가상, 그러고 난 후 이직할 회사 내 직속상사가 될 이와의 대화에서 쎄함을 느꼈다. 이 쎄함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어제부터 오늘까지 혼란스럽다, 사무실에 친한 후배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니 후배는 나를 만류했다. “선배, 나도 연봉 6천 준다는 데에서 제안이 왔는데 고민하다 포기했어요. 애 키우면서 다닐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쎄한 거, 그거 무시하면 안되는 거 알죠?”      


(이 회사) 퇴사와 (저 회사) 입사를 번복할 생각까지 치달았다. 아...이거 완전, 청첩장까지 뿌리고 파혼하는 셈인데. 뒷감당을 어떻게 하지. 그냥 다 없던 일로 하는 가장 쉬운 방법 없을까. 없지. 그런 건 없지. 정말, 이직을 포기하는 게 맞는 건가.


고민이 극에 달했고 하소연할 데 없어 ‘그저 내 선택을 믿어준다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니 전화가 왔다. 그리고 그 통화에서 나는 왕 울어버렸다. 나는, ‘아이’를 핑계로 대고 있었을 뿐. 무서웠던 거다. 결혼 전 열정적으로 일하던 내 모습을 기억하고 그런 성과를 기대하고 나를 스카웃하려는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줄까봐? 내가 그만큼 못해서 스스로에게 실망할까봐? 내가 힘들어 내 가족들 모두가 같이 힘들어질까봐? 모두 다 부차적인 걱정일 뿐. 핵심은 간단했다. 나는 그저 다른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고, 그 일을 제대로 못해 그만두면 다시 경단녀가 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아이가 있든 없든, 내 공포는 언제나 같은 원인에서 피어올랐다. 핑계삼으려던 아이에게 순간 엄청나게 미안해졌다.   


남편의 조언으로 나는 마음을 다스렸다. 눈물을 닦고 사무실에 들어와 조언해준 후배와, 이 일을 상의했던 친한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가기로 했어. 해보고 안되면 얼른 그만 두려고.’ 선택은 끝났다. 어떤 선택을 하는지보다 중요한 건 선택 후 어떻게 하느냐다. 새로운 걸 경험하며 적응하고 잘 해내려 노력하며 나는 또 성장할 것이다. 그 모습을 우리 아이도 봐주겠지. 다시 경단녀가 될지 몰라도, 나는 내 인생이 그저 편한 곳에 안주하다 끝나진 않도록 노력했다. 이번 기회를 그냥 보내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지 모른다. ‘그 때 좀 힘들어도 옮겼어야 했어. 그럼 내 인생이 달라졌을텐데.’ 이직 성공과 내 인생의 변화가 생각보다 큰 연관이 없다는 걸 이제는 알지만, 그래도 후회하는 짓 만큼은 그만하고 싶었다.     

내 결정과 함께 다짐을 적어 핸드폰 바탕화면에 띄웠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하다 안 되면 포기해도 된다. 그런다고 세상이 무너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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