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에 대한 소회.
생일날 미역국 대신 나를 위한 떡볶이를 끓였다.
전기매트 전원을 켜고 떡볶이 밀키트를 끓였다. 국물이 후루룩 끓더니 5분 만에 완성. 냄비 째 들고 전기매트에 앉으니 아..... 엉덩이부터 전해오는 온기에 온 몸이 녹을 듯 하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니 속도 뜨끈해진다. 연거푸, 연거푸 떡볶이 국물을 떠먹었다. 이 놈의 감기가 2주가 넘어가는 걸 보니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은가보다. 기침은 또 왜이리 하는지. 어릴 때 이후 처음 앓는 기침가래 감기다. 지난주 아이 열감기로 소아과 간 김에 나도 진료를 받았는데, 아이 약은 순하게 지어 선호하는 의사가 왜 나에겐 스테로이드제, 항생제, 제제제를 다발로 처방해주었는지. 약을 받아다놓고도 안 먹다 어제부터 못이기는 척 먹기 시작했다. 스테로이드제+항생제의 위력은 실로 막강했다. 먹은 다음날인 오늘 아침부터 벌써 내 예전 목소리로 돌아왔다. 기침은 급격히 줄었고 가래도 거의 없어졌다. 그렇게 고생할 줄 알았으면 진작 먹을걸. 약도 받아놓고선 고집을 부리느라 괜히 가슴을 때리는 기침을 길게 한 걸 후회했다.
날이 흐려선지, 감기에 걸려선지, 어제 주말임에도 하루 종일 일을 해선지. 컨디션이 좋지 않고 아침에 몸이 천근만근했다. 요즘 우리 세 식구가 계속 이렇다. 가습기도 틀고, 아직 가을임에도 난방을 돌려 집을 따뜻하게 하고 잠들지만 아침은 매일 똑같다.
이직을 해 새 회사에 출근한 지 이제 3주차다. 그러나 마음은 한 3년, 몸은 한 20년 일한 듯 골골대기 시작한다. 일이.....너무 많다. 대드라인을 정해놓고, 엄청난 일을 떨어뜨린다. 3일동안 글 12개를 쓰라고?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다른 자잘한 일들을 또 또 던진다. 일의 수량도 파악하지 못한 채로 당장 오늘까지 해달라 닦달하는 것부터 급히 처낸다. 처음에 떨어진 메인업무가 계속 뒤로 밀린다. 3일 동안 채 3개밖에 쓰지 못했다. 그러고선 주말에 회사 행사에 동원돼 12시부터 6시까지 행사장에 있었다. 가는 길에는 지하철역 어딘가에 카드지갑을 흘렸는지, 분실해 골치까지 아픈 중이다. 지하철, 유실물 관련 모든 고객센터에 오전 내내 전화를 돌리고 인터넷을 뒤졌지만 내 지갑을 봤다는 이가 없다. 체념하고 신속히 분실신고한 카드 재발급을 신청했다. 은행마다 또 재발급 절차는 다 다르다. 어디선 또 신분증이 필요하다니, 운전면허증과 신분증부터 다시 받아야겠다. 하던 중, 면허증 재발급 비용 만 원을 결제하려다 otp카드!! 재발급에 이르러선 아.... 신분증을 먼저 받아야겠네- 깊은 깨달음이 몰려온다. 이래저래 몸도 마음도 정신도 온전히 않은 하루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신 없을 것 같았다. 나에게 언제 또 이런 제안이 오겠나 싶어 일이 많겠다- 싶었음에도 이직을 감행했다. 그리고 일에 치어 죽어가는 중이다. 1년. 1년을 잡았다. 1년 안에 적응해, 할 만 해지면 계속 다닐 것이요, 그게 아니라면 1년 후 그만 두기로. 내 말을 들은 누군가 "1년이라니, 엄청 기네요!"라고 말했지만, 나는 1년으로 잡은 이유가- 그렇게 그만두고 나면 다른 기회는 없을 거라는 각오에서였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마츠코는 매 번 '이 때,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 다음, 그 다음, 또 그 다음에도 인생은 계속됐다. 불행만 이어진 건 아니다. 마츠코는 다음 다음에 찾아오는 '새로운 인생'에서 이전과 같이 행복을 느끼기도, 사랑을 얻기도, 좌절하며 버림받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있자면 인생은 그저, 행불행이 아닌 그저 매 순간을 경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 역시 그저, 그저 그 일과 저 일, 내가 겪을만 한 여러 일을 겪고 그 안에서 내가 생각하고 움직이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 뿐이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해서 힘들어하거나 버거워할 필욘 없다. 회사도, 그만치 힘들고 못해먹겠으면 그만 두면 된다. 그런다고 내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다만, 벌이는 끝나겠지만 말이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