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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May 15. 2023

자식은 바람둥이 연인같구나.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기쁨보단 불안이, 충만한 감사함보단 부담감이 컸다. 인간은 모르는 대상에 대해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던데, 나는 육아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신생아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 채 아이를 만났다. 더군다나, '이 아이'의 개별성이 어떤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눈도 못뜨고 울기만 하는데, 우는 걸 좋아해서 우는지 배가 고파 우는지조차 알 수 없었으니까. 


지금은 아이가 태어난지 30개월이 되었고, 조금, 아주 조금은 아이를 알게 됐다. 아이가 보이는 많은 특성은 30개월 즈음의 그 또래 아이들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임을 알고난 후 조금은 안심하고 있다. 아울러 개별성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상당히 예민하고, 낯선 환경과 사람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입이 짧아 끼니를 챙겨 먹이기 힘든 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있는 시간 동안은 '무조건' 내가 자신 옆에 콕 붙어 있길 원한다. 놀이를 할 때는 물론, 밥을 먹고 TV를 볼 때도 내가 꼭 안고 옆에 끼고 있어야 눈 앞에 다른 대상에 집중한다. 이따금 내가 슬쩍 떨어져 나와 설겆이라도 할라치면 바로 나를 불러제낀다. '엄마! 엄마! 이리와!' 라고.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설겆이를 포기한다. 아이 옆에 앉아 또 둘이 꼭 끼고 있으면 아이도 맘이 편해지겠지만 나도 편해진다. 이렇게 작고 예쁜 때 더 많이 안아줘야지. 라면서.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불안감과 공포를 극복하고 내 시간의 절대 다수를 아이에게 투자하는 데 자연스러워지기까지 2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지금은 내 시간 뿐 아니라 영혼과 마음, 육체까지 모든 것을 아이에게 집중하고 있고 이러고 있는 내 자신이 어색하지 않지만 처음엔 그렇지 않았다. 힘들었다. 내가 살던 방식을 완전히 뒤바꿔야 하는 상황이 말이다. 나는 출산 후에도 직장에 나가지 못했고 지금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몇 시간만이 그저 나로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금요일이 되면 '주말이다!'하고 쾌재를 불렀던 과거의 나는, 이제 '주말이구나'라며 이틀 내내 집에서 먹이고 재우고 놀아줘야 할 아이 생각을 하며 빡세게 청소를 하고 반찬거리를 하고 뭘 만들어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먹을까 고민한다. 내 24시간, 일주일과 한달, 일년 내내 아이만을 위해 살아야 하는 지금의 나를 보면 과거의 나는 얼마나 낯설까. 


아이는 마흔이 되도록 나 혼자, 내 몸만 살피며 나만 알고 살던 나를 순식간에 바꾸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시나브로 아이에게 젖어들며 나는 이렇게 변했다. 아이 엄마가 된 거다. 왜냐면, 내가 없으면 아이는 살 수 없으니까. 직장은 다른 사람을 뽑으면 되지만 이 아이는 내가 없으면 안되니까 나는 고민도 없이 퇴사를 결정했다. 그로부터 한동안 몹시 우울해 항우울제를 먹고 발버둥치며 오열하기도 했지만 쨋든 나는 지금 아이만 아는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크면 어떨까....생각하며 세상 모든 자식은 바람둥이 남자친구같구나 중얼거렸다. 처음엔 나에게 꼭 붙어 내가 없으면 죽겠다며 24시간을 울어대 내 삶과 일상을 포기하고 너에게 올인.했는데, 저도 이제 차차 자라서 혼자 살아갈 수 있게 되면 엄마아빠는 뒷전이 되겠지. 여덟살이 되면 두 발로 걸어 학교에 가고 그곳에서 너와 찰떡같이 잘 맞는 친구도 만들겠지. 점점 자랄수록 엄마아빠가 귀찮아질거다. 너의 관심사는 오로지 친구와 놀이, 게임이 될텐데 엄마아빠는 그 때가 되어서도 우리 아이가 어린이대공원에 데려가면 코끼리를 보고 환호하는 30개월 아기인 줄 알고 주말 아침마다 공원에 같이 가자고 조를 지 모른다. 


처음엔 너와 24시간 완벽히 밀착'돼야 하는' 상황을 거부하고싶어 몸부림쳤지만, 너의 사랑스러움에 반해 나는 내 인생의 전부를 너에게 올인해도 좋다는 마음까지 먹게 됐다. 그렇게 아이와 밀착된 걸 당연시하는 나로 완전히 변하면 너는 이제 부모와 떨어진 삶을 쫓아가겠지. 바람둥이 남친처럼 말이다. 내 마음을 홀딱 다 빼앗아서 너 없이 못 살게 만들어놓고 친구 찾아 연인 찾아 너의 가족 찾아 훌쩍 떠나는 그 모습이 영락없는 바람둥이 아닌가. 엄마아빠에게 내가 그랬듯 말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밀착해서 키워낸 네가 없는 일상이 어색해 또 우울해하고 발버둥칠 지 모른다. 그 때도 항우울제를 먹어야할까. 괜히 너희 아빠에게 화풀이를 할 지도. 나의 출산 후 오늘날까지 거의 항상 고통받고 있는 이경위님, 미래에도 그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것 같네요. ㅋㅋㅋ

"애들이 조용할 땐 사고치는 거야." 어른들 말씀이 하나 틀린 게 없다. 오늘도 아이는 내가 어린이집 가방을 챙기는 동안 립밤 한 통을 다 후벼놨다. (세일할 때 샀지만) 비싼 건데...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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