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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May 03. 2023

아이를 키우니 (내가) 아이가 된다.

어딘가, 무언가에 재미를 붙이면 떠나기 싫은 건 어른도 마찬가지지만 아이에겐 더할 수 없는 고충이고 괴로움인가 보다. 특히 놀이터, 공원, 외갓집은 아이를 붙잡아두는 본드 3인?방이다. 집에 갈 시간이 되어 아무리 어르고, 달래고, 설득하고, 애원해도 집에 안 가겠다 버티니 결국엔 강제집행으로 아이를 끌어안아 차에, 유모차에 태워야 한다. 그러면서 늘 생각한다. '지금은 내가 얘를 강제로 안아 일으킬 수라도 있지만, 아이가 더 커지고 내가 작아지면 그땐 어떡해야 할까' 막연함 두려움 속에 오늘도 아이는 크고 있고 나는 조금씩 늙어간다. 


어제도 외갓집을 떠나오는 저녁엔 대단했다. 아이아빠 없이 나 혼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벨트를 잠그고 이런저런 말로 아이 정신을 빼놓으려 해도 아이는 '외앗집! 외앗집에 있을꺼야~!!!' 하면서 몸에 힘을 주었다. 나보다 아이에게 전폭적인 큰이모가 결국 아이를 안아 집으로 향했다. 걸어서 10분 남짓한 거리인데, 아들을 안고 걸으면 30,40분은 족히 걷는 듯 땀이 난다. 나야 엄마라지만, 아이도 낳지 않은 언니가 아이를 안고 걸어가는 걸 보는 건 내 맘이 편치 않다. 그런데 어제는 정말 '대단했다'. 아이는 이모에게 안겨서도 집에 가지 않겠다며 급기야 길 위에 몸을 뉘였다. 그 순간 눈이 뒤집힌 나는 누워있는 아이를 통째로 들어 널판지를 나르듯 어깨에 실었다. 언니는 떼쓰는 조카가 안쓰러워 어쩔 줄 모르며 내가 밀던 유모차를 밀었고 나는 이렇게라도 해야 해가 지기 전에 집에 가서 밥 먹이고 목욕시켜 재울 수 있다는 신념밖에 없었다. 


그런데 몸에 힘을 주며 저항하던 아이의 신발 신은 발이 순간 내 눈에 날라들었고 나는 큰 굉음과 함께 한쪽 눈을 맞았다. 안경은 얼굴 옆으로 돌아갔고 나는 한 번 더 '꼭지가 돌았다'. 참을 수 없이 화가 난 나도 '그만해!' 라고 소리 질렀고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보고 있던 언니가 달려와 아이를 받아 안고 한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분이 풀리지 않은 나는 유모차를 밀며 이모 옆에서 걷는 아이에게 '이번 어린이날에는 산타가 안 올거다. ㅇㅇ는 착한 어린이가 아니니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줄거다. 엄마가 전화해서 선물 주지 마시라고 했다. 다시한번만 엄마 때리면 그땐 집에 있는 킥보드도 다시 가져가시라고 할 거다.' 라며 악다구니를 질렀다. 


징징대며 가짜울음을 울던 아이는 선물이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엄마!"라고 불렀고, 나느 "왜ㅣㅐㅐㅐ!"라고 응수했다. 내 고함에 아이는 진짜 울음을 터트렸다. 나도, 아이도 잔뜩 화가 났고 슬펐다. 


집에 도착할 즈음이 되자 둘 다 화가 그럭저럭 가라앉았다. 아이는 함께 집에 와준 이모와 신나게 놀고 자기의 새 킥보드를 자랑하며 한껏 신이 났다. 나는 밀린 설겆이와 청소를 대강 해치우고 목욕물을 받으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에게 화를 내서가 아니라, 발에 맞은 눈이 아프고 화가 나서였다. 다 참겠는데, 때리고 물고 할퀴고 꼬집는 건, 정말. 참을 수 없다. 어릴 때 부모님께 맞고 자라서일까. 나는 타인이 폭력을 쓰는 걸 못참을 정도로 싫어한다. 그게 내 자식이어도 싫은 건 매한가지고 아이가 그럴 때마다 진심으로 화가 났다. 


아이는 다행히 일찍 잠이 들었고,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준 언니는 내가 너무 어른스럽지 못했다며 아이 편을 들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서러움이 밀려왔다. 노력하는 것도 나, 참는 것도 나, 끝까지 참다 화를 내고 소리를 친 것도 나다. 참지 않(았을 거라 짐작되는) 아이는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나를 가장 많이 도와주는 언니도 결국엔 조카 편을 들고 마니, 내 서러움은 누구한테 말하나. 괜히 야간근무 중인 남편에게 언니가 야속하다 타박하고는 남은 일을 하러 보조등을 켜고 거실에 앉았다. 


새벽 2시가 되어서야 기사가 마무리됐다. 송고 버튼을 누르고 안방에 들어가니 아이는 깊이 자고 있고 모기장 안에서 모기 한 마리가 보인다. 이게 웬일이니....저 새끼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들어오는거야! 내적 비명을 지르며 모기채로 살포한 후 아이를 살펴보니 아니나다를까. 발바닥을 벅벅 긁는다. 긁는 손에도 모기물린 자국이 있다. 모기한테 화가 나고 모기장 안을 살피지 않은 나에게 또 화가 나고 미안함을 어쩔 줄 몰라 그 손과 발을 매만지는데 아이가 깼다. "엄마, 쉬"


거실에 나와 유아변기에서 쉬를 한 아이를 데리고 안방에 들어와 모기약을 발라주었다. 아이는 '엄마, 모기 물렸어'라고 말한다. 응. 엄마가 모기 잡았어. 많이 가렵지 하고 다시 같이 누웠다. 아이는 졸린 눈을 감았다 떴다 나를 바라본다. "ㅇㅇ아, 아까 엄마가 소리지르고 화내서 미안해. 맨날 안 그러겠다 하고 또 화내고 또 미안하다고 해서 미안해."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과에 아이는 "엄마, 나도 미아안~"하고는 배시시 웃는다. 아이의 미소는 바로 잠으로 이어졌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고 잠이 오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아이 손바닥으로 물감찍기를 해서 보낸 종이에 어린이날 축하 메시지를 써달라했다. 글자를 모르는 우리 아이가, 무수히 많은 손바닥 중에서 자기 얼굴을 알아보면 좋겠다 싶어 '경축 어린이날, ㅇㅇ이 건강하고 멋진 어린이가 될거야!' 라는 글에 얼굴을 그려 보냈는데, 이걸 볼 때마다 죄책감이 느껴진다. 그림 그리던 엄마인데 아이가 생기고도 그 얼굴 한 번 그리는 일이 없다가 어린이집에서 시켜야 한번 그렸구나 싶어서다.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해놓고 볼 때마다 죄책감을 되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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