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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Apr 18. 2023

드라이기 강풍으로 틀기, 샴푸 린스까지 하기.

보통의 사람들에겐 당연하게 일상적인 일들이지만, 육아에 돌입한 후 나에겐 특별한 일들이 됐다. 드라이기를 쓸 수 있음도 황송하지만, 그 중에서도 강풍으로 틀어 큰 소리로 머리카락을 말릴 수 있는 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후 혼자 있을 때에나 가능한 사치다. 머리를 감으며 샴푸만 후다닥 하고 나오는 게 예사지만, 역시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을 때 하는 샤워는 바디워시에 린스까지. 호화로운 이벤트가 된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에도 맘만 먹으면, 아이 투정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의 무딘 심장이 되면 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아직 내 심장은 그리 무디지 못하고 아이의 칭얼거림을 두 손으로 떠받들 듯 반응한다. "엄마 같이 있어!" 연필로 글씨를 꼭꼭 눌러쓰듯 한 단어씩 띄엄띄엄 내뱉는 '언어 초보자'의 외침을 들으면 나는 비누도 칠하지 못하고 물묻은 손으로 뛰쳐나온다. 알았어 여깄어 엄마! 하면서. 


육아의 고단함은 뭐,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겠지만 나는 그 많은 고단함에 또 하나의 글을 보탤 생각은 없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고단함을 차치하고도 남을 기쁨과 영광, 빛나는 순간으로 가득 찼으니까.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아이를 앞에 두고 있으면 그 수발을 드느라 몸이 부서질 것 같지만 분명 가치있는 일이다. 인간을 키워낸다는 건 말이다. 그리고 그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 경단녀에 체력은 쓰레기가 됐지만 내 인생은 의미가 있다. 그렇게 여겨진다. 


그래서 쓰고 싶은 글이 많이 있다. 아이랑 겪은 일이며, 아이를 보며 느끼는 게 무궁무진하다. 문제는 글을 쓸 시간과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어린이집이 아이를 봐주는 귀한 시간엔 청소와 빨래, 설겆이, 아이 옷의 얼룩 지우기는 물론, 핸드폰 하며 늘어져있기, 예능 유튜브 보며 실없이 웃기, 선잠 들고 후회하기, 이럴 거면 30분이라도 이불에 누워 아예 제대로 잘걸 후회하기 등등 해야할 일이 너무 많아 미처 노트북까지 켜지 못한다. 


그래도 써야 한다. 아이는 언젠가 자랄 거니까. 아이는 지금에 멈춰있지 않을거고 언젠가 (내 바람과 기원대로) 성장해 자기 친구와 사람, 공간을 찾아갈 거다. 그럼 또 비어있는 거푸집같이, 내 인생엔 나만 남을 거다. 그 때의 나도 여전히 변함 없이, 출산 전의 나와 동일하게 살아가야 한다. 떠나간 아이를 그리워하고 그 아이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시시콜콜 잔소리하며 살 순 없다. 내 인생을 살려면 나도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놀고, 먹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지금도 글을 쓰고 있어야 한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들을 스스로 경험하고나서야 알게 된 것들이 많다. 인간은 직접 경험하고 느껴야만 '제대로', '진정성 있게' 알게 되는 것 같다. 아줌마들이 만나면 왜 그리 깔깔거리며 크게 웃고 떠드는지. 봄꽃을 보며 왜 그리 요란을 떠는지, 다같이 있으면 옆 사람 의식하지 않고 소란스러워지는지. 이제는 알 수 있다. 육아라는 긴 터널 속에서 자기의 에너지를 모두 아이(들)에게만 쏟아붓다 밖에 나와 친구들을 만났을 때의 그 해방감. 희열. 비로소 출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일상의 소중함. 아이에 대한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너질 것 같아도 버릴 수 없는 과업들을 집에 내려놓고 밖에 나와 봄꽃을 보며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즐거움. 이걸 다 어찌 말로 표현할까. 


그냥 그렇다는 걸 다른 사람도 이해해주면 좋겠다. 출산이나 육아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그저 '그럴 수 있겠네'라고 봐주면 좋겠다. 다 떠나서 이 다음에 좀 더 나이 먹은 내가 지금의 글을 보며 그랬었구나 내가 라고 잠시 오늘을 떠올리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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