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장은 웨이터를, 웨이터는 손님을 증오한다"
는 프랑스(?)속담이 있다고 한다. 어디 책에선가 얼핏 읽고 의미를 알게된 후 오래토록 기억에 남았다. 자유를 빼앗긴 이는 그 빼앗은 이를 원망하다 못해 증오하게 된다는 뜻인데, 지금 딱 우리에게 맞는 말이 아닐까.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를 빼앗겼다' 느끼고, 그 자유를 빼앗은 누군가를 찾으려 언제나 혈안이 된 듯 하다. 그러다 누구 하나라도 잘못 걸리면 그는 모두에게 시쳇말로 '가루가 될 때까지 까인다'. 가루가 되어서도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모두의 분노가 한 사람, 한 단체에게 쏠려 엄청난 비난이 폭발한다. 난 그런 걸 볼 때마다 나 역시 화를 내면서도 '저 한 사람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한다.
속담에 대한 조금은 다른 얘길 해볼까. 나는 한 직종에서 10년 넘게 일하다 뒤늦게 결혼하고 임신하면서 퇴직했다. 더 다닐 수 있었지만 때마침 바뀐 팀장이 나를 '가루가 되도록 깠다'. 매일매일, 후배들 앞에서. 여러 사람 앞에서 경력 10년 된 나의 업무가, 그 팀장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여자후배의 것보다 훨씬 못하다며 면박을 주었다. 10년 간 업무에 대한 어떤 어려움도 없던 나였다. 우수기자, 혹은 특종상도 심심치 않게 받아왔다. 그런데 이 팀장은 주말에도 전화를 걸어 내가 해놓은 일이 얼마나 하찮고 미흡한지를 한시간여에 걸쳐 지적했다. 이혼남이라 주말에 할 일이 없어설까. 참다못한 나는 다른 대안은 생각지도 못한 채 급히 사표를 내밀었다.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탐탁지않아 하는 대표는 얼씨구나 하고는 얼른 들어가 쉬라며 사표를 수리했다. 부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도 전에 단톡방에 'ㅇㅇㅇ가 퇴사한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본부장 메시지가 떴고, 나는 등 떠밀리듯 회사를 나왔다.
늦은 나이임에도 무사히 출산하고 아이를 키우며 시간이 갔다. 아이를 여유있게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나는 자연스레 경단녀 4년차가 되었다. 그러다 또 좋은 기회가 생겨 3년 만에 출근을 했다. 쉬면서, 아이를 등하원시키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으나 쉽지 않았다. 시급 5천원도 안되는 프리랜서를 1년 동안 하다가, 다이소에서 하루 3시간만 일하면 되는 재고정리 아르바이트를 할까 하던 참이었다. 출산 전 일할 때 받던 연봉에서 1500만원을 깎고나서야 정직원으로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았다. 그것도 나는 '감지덕지'라며 허리를 굽혀 절이라도 하듯 면접을 보았다.
출근이 시작되자 33개월 아이(아기라 하는 게 맞겠다)는 평일 아침이면 이전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야 했고, 나는 2시간을 일찍 잠에서 깼다. 출근준비를 하고 아침 먹을 걸 대강 꺼내놓은 후 저녁 먹일 것까지 대충이라도 준비해야 했다. 고되다?는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땀나도록 뛰어 지하철역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정신없이 하루가 갔다. 하원을 시켜주는 친정집 식구들에게 언제나 죄인이었다. 관절염에 뼈마디가 아프시다는 엄마, 자기 일 하기에도 벅찬 언니에게 송구스럽게 부탁을 해야 했다.
전만큼 일할 수 없고,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도 않았다. 전업주부일 땐 그나마 등원시키고 난 후엔 짬이 났는데 이젠 내 시간은 하루에 단 1분도 없었다. 퇴근길은 그야말로 피를 말린다. 6시 정각, 그룹웨어에 퇴근 팝업이 뜨는 즉시 클릭을 하고 국장님께 인사하자마자 경보하듯 지하철역을 향했다. 환승역이 다가도면 2호선을 탈지, 5호선을 타야할지 매일 고민했다. 단 1분이라도 더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찾아 언제나 핸드폰을 쥔 손에서 땀이 났다. 가끔씩 '언제까지 이렇게 다녀야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요는, 나는 자유를 빼았긴 셈이다. 그렇다고 내 자유를 빼앗아 간 사람이 내 사랑하는 아이일까, 가족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저 내가 선택한 것이고, 다만 나는 이렇게 되기 전에는 설마 이정도일 줄은 몰랐을 뿐이다. 내가 선택했지만, 그 선택 안에서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길. 결혼하고 출산해 육아하는 가정은 다 이렇지 않을까.
육아 뿐 아니다. 점점 자라 아이가 공부할 나이가 되면 또 나는 또 한번 자유를 빼앗길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아이를 '학원을 보낼 지, 안 보낼 지'를 선택할 수 없는 사회. 모든 학생이 치열하게 공부해야만 그나마 먹고살, 인간답게 살 길이 열리는 사회. 열심히 해도 보장될 수 없으니 불안에 떨며 학원을 빼곡히 다녀야 하는 분위기. 그쯤되면 나는 물론 우리 아이도 선택의 자유 없이 다른 친구들처럼 편의점 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학원가는 버스에 탈지 모른다.
다른 나라도 치열한 학습시스템이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 한다. 아이비리그에 가고싶은 아이들은 죽어라 공부하지만, 그 길만이 전부가 아니기에 공부를 선택하지 않은 아이들은 학업 부담에서 그마나 놓여나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다고 하던데. 우리나라는 일단 선택의 여지가 없다. 부모도, 아이도. 그러니 모두가 너나할 것 없이 분노에 차있다.
주방장은 자유를 빼앗은 웨이터를, 웨이터는 자유를 속박한 손님을 증오하듯 우리는 모두를 증오한다. 사회를, 학교를, 교육시스템을, 학벌주의를, 서울대출신들을, 의사와 변호사를. 모두를 말이다.
그러다 이제 우리나라의 젊은 '웨이터'들은 식당에서 일하지 않는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가임기 부부들은 '주방장'이 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의 #저출산은 이렇게 나타났다. 자유를 속박당하리란 게 뻔히 보이니 누구도 손님을 응대하지 않고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음식 만드는 사람이 없는 식당, 그게 우리나라 저출산 현상의 핵심이자 현실이다. 정치인들은 그럼에도 문제의 핵심을 비껴나 '저녁식사를 제공하는 어린이집'을 시범사업으로 시작한다고 자랑한다. 무엇이 중요한지, 기저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고 해결책이 무엇인지 생각할 머리가 없는걸까.
보육자와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결혼해 아이를 낳으며 가정주부가 될지, 직장을 병행할 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월급을 적게 받더라도 직장을 유지할 수 있는 선택권 말이다. 학생들에겐 혹독한 입시를 치를지 다른 전공을 살려 사회에 나갈 지 선택할 자유를 주어야 한다. 4년제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는 겁박이 가득한 사회가 아니라, 누구라도 인간답게 선택하고 누리며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사회 말이다. 그래야 누군가는 요리를 만들기 시작할 테고, 누군가는 서빙을 할 것이다. 경험해본 바로, 그것이 저출산 문제의 핵심 중에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