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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Dec 20. 2023

상복이 터진 해

지역협력을 했던가, 내가....

10년 째 어느 시민단체가 발행하는 잡지에 그림을 보내고 있다. 정확히는 '그림+글'인데, 짧막한 손글씨로 메시지를 쓰고 그에 걸맞은 간단한 일러스트를 곁들인 아주 심플한 작업이다. 사실, 컬러링까진 하지 않고 드로잉 정도로 마무리하기에, 아이디어만 떠오르면 작업하는 데에는 1시간이 채 걸리진 않는다. 예전에 한창 열 올릴 땐 세월호사건이 일어난 직후 노란색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정성들여 정밀한 드로잉을 한 후 면마다 노란색을 입혔던 작업이다. 그 땐 몇 시간 걸렸던가. 쨋든 애 낳고 키우며 출산휴가? 명목으로 2년 정도를 쉰 후 시민단체 국장님이 친히 전화를 주셔서 '작가님 그림 왜 안 나오냐며 찾는 분들이 많다. 꼭 좀 다시 그려달라'고 해주셔서 다시 올리기 시작한 지 또 1년이 됐다. 나이 먹으니 시간이 이렇게 잘 간다. 몇 개 안 그린 것 같은데 벌써 1년이라니.


임신하며 퇴사를 했기에 실질적인 수입이 없었지만, 간간이 아르바이트는 했었다. 또 다른 봉사(시민)단체의 지역혁신가 녹취록을 받아 인터뷰 글로 쓰는 일도 그중 하나였다. 친한 친구 통해 의뢰가 왔는데, 얘길 들어보니, 10년 넘게 내가 매주 해오던.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겠다 싶어 수락했다. 30명의 녹취록을 받아 AI 도움을 받아 한글파일로 전환한 후 문맥을 파악하고, 주제를 잡아 그에 맞게 혁신가의 말을 정리하면 되었다. 애를 재우고 하루에 한 편을 썼다. 남편이 없는 날은 자는 아이 옆에서 호롱불(은 거짓말이고, 수면등을 약하게 틀고) 앉아 썼다. 아이가 아직 자주 깨던 시기라, 혼자 자다 깨서 울면 낭패이기에, 옆에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다 뒤척인다 싶으면 얼른 토닥토닥하며 애가 다시 깊이 잠들길 기다렸다. 그러던 중 이 단체는 다른 프로젝트의 작가를 구하지 못하고 또 나에게 일 하나를 던졌다. 국가 기관 중 한 곳에서 청년들을 모집해 서포터즈 활동을 시켰는데, 이들의 1년 간의 활동을 책 한권으로 정리해달란 의뢰였다. 나는 그들이 낸 피피티, 현장 사진, 회의록 정도만 가지고 글을 써야 했다. 팀 20개를 분류해 3개의 주제를 잡고, 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그 주제에 욱여넣었다. 목차를 정하고 그에 맞는 자료조사와 배경지식 습득 등. 처음 해본 '책 한권을 쓰는 일'이라 무던히도 애를 먹었다. 그러나 갑절로 공을 들였음에도 이 책은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이 기관장이 윤통의 눈치를 보다 결국 발간하지 못하고 퇴임했기 때문이다. 나는 인터뷰 책자의 원고료는 받았지만, 배로 공들인 두번째 책의 원고료는 1도 받지 못했다. 시민단체는 몇 달이 지난 후 미안하다며 자체 예산에서 얼마를 만들어 성의를 표시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일이 계속 있을거라 장담했지만, 같은 일을 다시 주진 않았고 이 단체 사람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락을 해와 미안함과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냥, 그걸로 됐다 싶었다.


지금까지 10년 간 없던 일이 두달 상간으로 두 번이나 연달아 일어났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두개 단체에게 감사장을 받았다. 10년 간 두달에 한 번 빠짐없이 원고를 보낸 시민단체는 재정상황이 열악해 아예 처음부터 원고료를 기대하지 않았고, 나도 재능기부라는 기만적인 이름에 동의했다. 이 단체는 10월 말에 후원의밤을 열어 나에게 꼭 와달라 하더니 즉석에서 감사장과 꽃다발을 주었다. 소감까지 밝히라 하기에 "이렇게 상까지 주시니, 이젠 그만두지도 못하겠네요."라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어제는 돈 떼먹힌(?) 봉사단체에서 연말행사인데 저녁을 대접할테니 와달라기에 갔다가 또 감사장을 급작스레 받아왔다. 행사장소가 호텔이기에 '이 사람들 돈이 어디서 났지' 걱정이 될 정도였는데, 상장에 내 이름을 적어 그동안 함께 일하며 애써주고 봉사해주어 감사하다는 내용도 넣었더라.


초등학교 때 받았던 A5크기의 작은 상장들, 피아노학원을 다니며 참가비를 내고 받은 피아노 콩쿨 트로피, 고등학교 때 미술대회에서 받은 상장과 트로피, 기자로 일하며 형식상 받는 감사패. 생각해보면 참 많은 상이 있었는데 왜인지 이 두개는 부상도 없고 상금이 없어도 마음이 느껴져 참 고마웠다. "제가 뭘 한 게 있다고..."라는 진심에서 우러난 말이 절로 나왔다. 내가 해주고도 대가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일들, 다 어디엔가 쌓여서 나에게 돌아올 상장이 되는 건 아닐까. 대학생 때 그렇게 열심히 일했던 공연예술축제에서, 돈 한푼 받지 못했음에도 내가 신이나고 재미있어 한 달을 꼬박 몸바쳐 일한 적이 있다. 마지막 뒤풀이에서 나는 소감 한마디 말할 기회가 돌아오자 '꼭 돈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내가 들인 정성만큼, 일한 만큼 뭔가를 얻는 것 같다'는 어른스러운 말을 했던 기억이 문득 났다. 대가 없이 해온 일들이 언젠가는 나에게 상이 되어 돌아오겠지. 나에게 오지 않으면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내 아이에게 돌아오진 않을까. 이래서 사람은 바르게, 착하게 살아야 하나보다.

북극추위가 내려오는 겨울일수록, 막 쪄서 촉촉하고 따뜻한 고구마같은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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