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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Dec 21. 2023

사람들의 불안감을 볼모로 돈을 버는 것들

내 모든 불안감을 한순간 '올킬'하는 우리 아이.

귀하디 귀한 반차를 냈다. 재취업 후 반반차가 아닌, 반차를 낸 건 처음이다. 아직 연차를 낸 적은 없다. 입사 1년이 되지 않은 신입에게 연차는 사치다. 근무일수 1년을 꼬박 채워야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연차 10여일이 나온다. 그 전까지는 한달을 개근해야 다음달에 연차 1일이 생성된다. 지금까지 친정에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아이에게서 감기가 감지됐을 때 모두 그 연차 1일을 네번으로 나눈 '반반차'로 메울 수 있었다. 그런 신입에게 오늘 반차는 아주 뜻깊다. 아이 어린이집에서 부모참관수업을 한다고 해서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바자회도 하고 간식도 먹고 부모아이가 같이 활동도 한다니, 이건 빠질 수 없다. 남편도 반차를 내라 하고선 우리 셋이 오늘 아침 어린이집으로 갔다. 몹시도 추운날 아침, 숨쉴 때마다 코로 들어오는 한기에 콧구멍 습기가 얼어붙는 게 느껴졌다. 정말, 오지게도 추운 날이구나.


아이를 들여보내고 새삼, 우리아이와 같은 반 아이들, 그리고 그 부모님들을 거의 5개월 만에 다시 본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아이들은 눈을 의심할 정도로 (5개월 사이에) 훌쩍 커있었고, 부모들과도 안면을 튼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이제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낯이 익은 부모님들과 인사를 했다. 다시 또 그 주제가 시작됐다. "내년에 유치원 보내세요? 여기 더 다니세요?"


나는 일찌감치 유치원에 대한 고민을 접었던 지라 단순히 대답했다. 지금은 12월 말. 대부분 결정을 끝냈을 시점이다. 만 3세를 이제 막 넘어선 아이들 대부분 내년에도 어린이집을 다닌다 하는데, 그 중 두 명의 부모가 영어유치원을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길게 고민한 한 엄마도 집에서 가까운 어린이집에서 순번이 돌아와 그곳으로 옮긴다 한다. 영유를 결정한 두 부모는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어디어디 알아보셨냐, 거긴 셔틀이 있냐, 어디로 가실 예정이냐 하면서.


아이들과의 시간을 앞두고 엄마아빠들이 대기하고 있는 시간이 영어유치원과 유치원 얘기로 빼곡해졌다. 한 달 전 지금은 중학생이 된 아들을 가진 한 언니가 '지금 어린이집 핫이슈가 유치원이에요'라는 내 말에 그랬다. "불안해서 그래요. 불안하니까, 서로 물어보고. 안심하고. 또 같이 옮기면 서로 낯익은 친구가 있으니 덜 걱정되고."

그 말이 생각났다. 열 명 가까운 엄마아빠들이, 아이를 영유를 보낼 예정인 두 부모의 대화에 귀가 쫑긋해져 열심히 엿듣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모두가 다시금 불안해졌다. 영어.... 지금부터 뭐라도 해야할까. 영유 안 보내는데, 괜찮을까? 끝날 것 같지 않은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적당한 불안은 사람의 일상에 긴장감을 주고 에너지를 내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참. 많이. 너무 많이 불안하다. 아이를 가진 사람은 사람대로. 아이가 없는 사람은 또 그 사람대로 불안하다. 아이를 가진 사람은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사회에서 인정받고 모나지 않은 사람이 될까' 불안하고, 아이가 없거나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걸까' 불안하다. 모두가 과잉 불안이다. 나도 그중 하나고, 우리 가족 모두가 불안 위에 일군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밤이 되면 불안한 걱정을 하다 잠이 든다. 내가 보기에 미래에 대해 불안하지 않은 건, 36개월을 막 넘기고 있는 우리 아이 뿐이다.


사람들의 불안이 높아지면서 이걸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도 많아졌다. 나는 두 부모의 대화에서, 우리 동네에 영어유치원이 그렇게 많다는 점에 적지않게 놀랐다. 두 사람의 1분 남짓 대화에 오고간 영어유치원 이름만 8개. 도보든 차든, 만 3세 아이가 통학할 수 있는 거리에 있을텐데, 한 동네에 그렇게 많은 유아 대상 영어학원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 학원들 대부분, 우리 아이가 영어때문에 낙오자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부모의 바람과 불안을 부추기는 상담을 한다. 이렇게 싸잡아 비난하는 건 '여우가 먹지 못하는 신포도'일지 몰라도.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어머니, 내년에 보내셔도 돼요. 그런데 6세에 입학하면, 5세에 들어온 아이들과 섞이잖아요? 아이들 사이에서 우리 ㅇㅇ이 자존감이 떨어질 수 있어요." 내 친구는 실제 영유 상담에서 이런 말을 듣고 왔다. 세상에. 만 3세에 영어유치원에 입학하지 않으면 자존감이 떨어진다니, 이게 상식 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말인가. 


남자친구와 싸우고 나서 인터넷에 글을 올려 '누가 잘못한 거냐' 묻는 사람들, 회사에서 혼난 부하직원이 인터넷에 '내가 왜 혼난 지 모르겠다'고 묻는 시대.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찾아 인터넷을 뒤져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 한다. 나의 일이고, 내 연애인데 내가 화낸 게 잘못이냐고 왜 남에게 물을까. 혼나서 기분이 나쁘면 혼낸 사람에게 따져야지, 왜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썰을 풀어 그들의 동의를 얻으려 할까. 확신없는 마음이 모여 더 불안한 사회가 된다. 그 불안 자체를 피하고 싶어 이젠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는다. 변수를 최소화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안은 종식되지 않는다. 여전히. 어쩌면 더. 불안해질 뿐이다. 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모여 빨간망토를 입고 단체 율동 대열로 서있는 교실에 들어서자, 눈 앞이 환해진다. 아.. 이 순간 우리 아이의 얼굴을 보니 세상모든 불안이 사라진다. 너를 믿고, 나를 믿고, 우리 가족의 힘을 믿는다. 그럼 어떻게든 되겠지. 음악이 시작되기 무섭게 핸드폰 동영상 버튼을 눌렀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못 볼, 태어난지 1154일이 된 우리 아이의 모습에 모든 걱정과 불안이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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