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5시55분, 퇴근 5분 전.
그러니, 작년 연말 나흘연휴를 앞두고 사무실을 떠난 내 심정은 어땠겠는가
월드컵 결승전, 무승부 상태에서 우리팀 선수가 페널티킥을 차기 직전같다. 가슴이 저릿하고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하아....이제 5분, 4분 후면 퇴근이다. 그리고. 주말이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은 신의 만찬과도 바꾸지 않을테다. 그 홀가분함. 일주일-정확히는 5일-을 꽉 채워 출근해 일을 했다는 뿌듯함. 그리고 내일과 모레는 긴장감 없이 가족들과 집에서 뒹굴뒹굴할 수 있다는 즐거움. 실제로는 지루해하는 아이 때문에 집에 누워 뒹굴거릴 수 없지만서도. 이미 금요일 저녁 내 마음은 뜨끈한 바닥의 열기가 매트를 뚫고 올라오는 우리집 거실에 마냥 풀어져 누워있다.
매일, 퇴근은 매일 하는 것이지만 금요일의 퇴근은 또 다르다. 눈으로 책상을 훑으면서 혹시 마시다 남은 물이나 커피가 있는지, 뜯어놓고 먹지 않은 과자 부스러기가 있는지, 뚜껑을 닫지 않은 볼펜이 있는지, 내 사생활의 짜투리가 담긴 메모가 남들 눈에 띄게 방치되진 않았는지 확인한다. 책상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가방을 들고, 콘센트 스위치까지 눌러 끄면 이제 모든 미련과 걱정도 꺼진다.
그리곤 다시는 이 책상에, 이 사무실에 안 돌아올 것처럼 책상을 버려두고 퇴근한다. 이 때 마음은 정말 그렇다. 주말이라 해야 고작 이틀인데, 다신 안 올 것처럼. 안 오고싶은 마음으로 매몰차게 떠난다. 남겨진 책상에 대한 걱정은 없다. 수고하셨습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라는 마음에도 없는 인사들을 하며 잽싸게 빌딩을 나서 바깥공기를 만나면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자유로움을 느낀다. 월급은 받지만 자유로운 시간. 급여는 들어오지만 일하지 않는 시간. 주말은 황금이다.
그러나.
월요일 아침 8시 40분이 되면, 나는 그 버려두고 갔던 책상 앞에 돌아와 서있다. 어김없이. 안녕하세요~ 여전히 마음에도 없는, 안녕 여부가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 앉아 일을 시작한다. 신이 나서 책상을 버려두고 떠났던 사흘 전 저녁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땐 그렇게 호기롭게, 다신 안 올것 처럼 떠나더니'. 고작 사흘 앞 아침을 내다보지 못한 이틀 전의 내가 어리석게 느껴진다. 그럼 이제 버려두고 간 책상을 다시 돌볼 차례다. 컵을 헹궈 깨끗하고 따뜻한 물을 떠서 올려놓고, 끼적일 볼펜들도 꺼내어 옆에 놓는다. 메모할 종이는 저번 주에 쓰던 면을 넘기고 새 면을 펴 놓는다. 요즘은 특히나 건조하니 가습기도 필수다. 이 사무실 습도에 전혀 일조하지 않는 가습기가 귀여운 증기를 뿜는 걸 보며 출근체크를 한다. 회사 다닌 지 이제 15년. 15년 째 나는 금요일 주말과 월요일 아침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극복하지 못할 것 같다.
(그림은 존 사전트 싱어, '안락',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