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bulddae Jan 10. 2024

오늘도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거절했다

아이를 키우는 건 축복이고 영광이다. 그것만은 분명하며, 진실이다.

제목 그대로다. 예전에 내가 모셨던 편집국장님이고, 지금은 신생 매체의 대표님으로 계신 분이 오후에 카톡을 주셨다. 전부터 좋은 기자 없느냐, 추천 좀 해달라, 이런 사람이 지원서를 보냈는데 평판이 어떠냐고 최근 냄새?를 풍기던 차였다. 기자를 새로 뽑으려는 출입처는 내가 오래토록 맡아 활동했던 영역이고, 나도 재미를 붙여 꽤 재밌는 기사와 성과를 냈던 곳이다. 그러니 이 분야 좋은 기자를 찾다찾다, 이제는 생계형 기자직으로 일하는 나에게 결국 의중을 물으셨다.


 지금 상황이 어떤가요. 취재하는 기자를 할 수 있나요.


나는 그 메시지를 보고 한참 말이 없었다. 욕심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허덕이는데, 내가 기획하고 취재하고 기사쓰고 취재원도 계속 만나야 유지할 수 있는 취재기자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 하는 (이름만) 기자인 일은 취재와 기사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 가능한 일이고, 이미 나는 다음달부터 육아기단축근무를 신청해놓은 터라, 선뜻 하겠노라고 말씀을 못드리겠다 했다. 매일 아침부터 종일 좋은 기사, 나쁜 기사, 베껴온 기사, 잘 취재한 기사를 두루 보며 욕심이 안 나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내 욕심만으로 지옥문을 열면 그 지옥은 나만의 지옥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 친정 식구들까지 같이 짊어져야 할 지옥이었다.


지금 하루 일과를 대충 고하니, 대표님은 '4시에 퇴근시켜주면 되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4시면 일과가 끝나는데, 단축근무를 하면 그 시간을 얼추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신청한 거다. 이미 친정에선 내달부터 내 단축근무가 시작되는 걸 알고 있고, 6개월 만 도와달란 제안에 나도 맘편히 취직을 결심한 터였다. 4시에 퇴근해 아이를 데려와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면 10시반이니, 내가 만약 취재기자로 일한다면 진짜 일은 밤 10시반에 시작될 것이다. 그때부터 하루 취재한 내용을 펼쳐놓고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해 아마도 새벽 1~2시 쯤 마무리할 거란 게 어렵지 않게 눈에 그려졌다.


그 말에 대표님도 쉬이 제안을 거두었다. 그렇게는 살 수 없다. 하루이틀 아니고 그런 생활을 오래 유지해선 버틸 수 없을 거다. 정말 아쉽지만, 지금 그 자리가 나에게는 Right Fit인 듯 하니 힘내라. 언젠가 또 같이 일할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


먼저 제안을 거두어준 대표님이 고마웠다. 그리고 커지려는 내 욕심도 얼른 거두었다.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걸 구분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자. 다짐하면서 빌었다. 내 직업적 쓸모가, 내 아이가 어느정도 혼자 있을 수 있는 때까지 유지되길. 아이가 혼자 등하교를 하고, 집에 와서 혼자 간식을 챙겨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랄 때까지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길 말이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 빌어먹을 나라는, 결국 소멸하고 말겠구나.

지금 '저출산'이 문제라고 모두 말하지만, 진짜 해결방안은 모두가 알면서도 손을 대지 않는다. 아이가 어린 집 부모를 일찍 퇴근시켜주면 상당부분의 육아 문제가 해결되는데, 정책입안자들은 기업의 반발을 미리 걱정하며 이런 정책을 만들지 않고 어린 아이를 더 늦게까지 부모가 없는 어린이집에, 보육시설에 잡아둘 생각만 한다. 뭐든지 '해볼 만 해야' 한다. 애낳고 키우는 게 그럭저럭 해볼만 해야, 아니. 애낳고 키우는 사람이 부럽고 좋아보여야 나도 애를 낳을 생각을 한다. 비트코인 광풍이 불 때, 주식은커녕 펀드조차 일주일만에 해제한 나도 계좌를 뚫어 비트코인을 샀다. 좋아보였고, '나도 해볼만 해' 보여서였다. 결혼, 출산을 놓고 봤을 때. 나같은 금융무지랭이까지 코인 매수자로 만들 만큼의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애가 있어 일찍 퇴근하는 옆자리 동료가 부러워야 나도 애 낳을까 생각한다. 다만, 일찍 퇴근할 수 있는 회사의 분위기, 전혀 눈치 보지 않고 당연한 듯 단축근무를 할 수 있는 분위기 말이다. 이 내용은 나중에 시간이 있을 때 더 자세히 기록해놓아야 겠다. 요즘 저출산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이 들고 있어서다.

매거진의 이전글 금요일 오후 5시55분, 퇴근 5분 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