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bulddae Mar 26. 2024

6개월 만의 미용실, 두피 지압하는 인턴과 과도한 친절

그리고 다음 날, 이렇게 엄청 많은 눈이 내렸다.

벌써 한달 하고도 보름이 더 지난 일이다. 6개월 만에 미용실에를 갔다. 이제 흰머리가 검은 머리를 앞지르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집에서 셀프로 염색만 간신히 하던 차, 머리를 자르고 다듬고 싶어 벼르다 동생 결혼식을 앞두고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간신히 꾸역꾸역 시간을 냈다. 주맒 아침, 과거 5년 전 단골이었던 미용실을 향했다. 5년 사이 미용실은 내부 인테리어며, 디자이너가 싹 바뀌어있었다. 내 담당 선생님은 퇴사한 지 오래라 , 시간이 맞는 선생님에게 머리를 맡겼다. 단지 커트를 하러 왔는데도 선생님은 인턴 선생님을 불러 샴푸를 해주었는데 젊다 못해 어린 인턴 선생님은 손목과 손가락이 바스러지게 두피를 마사지해주었다.


쉬고 싶어, 수건에 표정을 감춘 채 세면대에 누워있던 나는 선잠이 들 뻔한 달고단 마사지를 받았다. 일어나라는 신호에 몸을 일으키니, 정말 단 3분간 잠이 들었던 것처럼 개운했다. 어리디 어린 선생님에게 '샴푸랑 마사지가 너무 시원해요'하고 감탄하자, 손님들이 좋아하신다며 베시시 웃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런 서비스에 그저 만족하고 말 나이가 아닌가보다. 내 두피의 개운함보다, 인턴 선생님의 손가락 마디마디 관절이 걱정됐다. 아줌마 오지랖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선생님, 너무 시원한데. 선생님 손 아껴요. 그러다 나이 조금만 들어도 관절염 와요...ㅠㅜ"


말에 정말 눈물을 머금은 안타까움이 들어있어서였는지, 인턴 선생님이 고맙다고 하면서도 "에이, 괜찮아요" 웃으며 응대했다. "아니, 저.. 지금은 아프단 게 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진짜진짜 아파져요. 손님들 덜 시원해도 되니, 손가락 너무 쓰지 마세요."


이것도 꼰대라면 꼰대겠지. 하지만 이제 그 젊음을 통과해온 나는 이런 젊은이들을 그냥 보고 지나치질 못하는 오지라퍼가 됐다. 내 말처럼, 이들은 아직 '아픈 게' 뭔지 모르는 나이니까. 태어나면서도 쌩쌩한 몸을 마음껏, 제약없이 쓰기만 해도 되는 나이니까. 이제 나이가 들고 '내 몸도 아플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엄마나 아줌마들이 '아이고 허리야' 하는 그 허리통증이 뭔지를 알게 됐을 땐 이미 늦은 거다. 그때서야 내 몸이 한정된 자원이며, 쓰면쓸수록 닳고 소모되는 소모품이란 걸 비로소 알게 된다. 모든 인간은 이렇게 때늦은 후회를 하며 늙고, 병들고 쇠잔해진다. 내가 그러했기에 자신할 수 있는 진실이다.


젊은 인턴 선생님의 샴푸와 마사지를 거쳐 의자에 앉으니, 이제는 그 보다 몇년 더 나이를 먹었음직 하지만 내 눈에는 아직도 젊고 어린 디자이너 선생님이 가위를 든다. 머리를 자르고 다듬은 20분 남짓, 이 선생님은 끊임없이 말을 걸고, 내 기분을 살피고, 재밌는 얘기를 늘어놓는다.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20분 동안 오디오가 비지 않을 만큼 선생님은 열심히 자르고, 열심히 말한다. 20분이 지난 후 건조가 끝난 후 에센스까지. 완성된 머리 스타일도 맘에 들었지만 이 선생님의 깎듯하고 친절한 태도도 맘에 들었다. 그러나 기분좋은 한편 마음 한쪽이 쓸쓸해졌다. 이렇게까지 친절해야 할까. 이 선생님의 친절은 어디까지가 성격이고, 어디부터가 서비스일까.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지하철이 아닌 버스를 탔다. 아이가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는 남편의 문자에 마음이 놓여 오래 걸리지만 넋놓고 풍경을 볼 수 있는 버스를 택했다. 다들, 이렇게 먹고 산다-생각하니 참.. 힘든 사회에 내가 살고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또 인턴과 디자이너를 '그렇게까지 하게 만든' 손님이 있을 것이다. 그도저도 아니면 그저, 많은 디자이너들 중에 선택받기 위해 혹은 미용시장의 경쟁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는 손가락 관절을 과하게 쓰고, 누군가는 감정노동을 지나치게 해낸다. 하루 종일, 일주일에 6일을, 일년 내내 말이다.


우리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순 없는 걸까. 아등바등하지 않고. 쉬엄쉬엄해도 그저 기본만큼 살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일 순 없을까. 어쩌면 지금까지 나도 그렇게까지 하며 살아왔으니 하는 말이다. 내 아이가 커서 그렇게까지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에 살지 않길 바란다. 오랜만에 머리 하고 와서 쓸데 없는 생각이 길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의사와 정부 다툼, '바른 훈육법'이 떠오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