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기생충

by 상현달

“얘들아 내가 말한 곳이 여기야!”

“우와, 여기 정말 깨끗하다. 아빠, 힘들게 다른데 찾지 말고 여기서 살아요.”


편안하게 살 곳을 찾기 위해 며칠을 돌아다녔다. 백 마리가 넘는 가족들이 살기에는 너무 비좁거나 혹은 집 주인들이 너무 까탈스러웠다. 조금이라도 내 모습이 비추면 ‘착’ 소리 나는 책이 날아오거나 화장지를 둘둘만 손가락이 내 몸을 덮쳤다. 나는 아무 잘못도 안 했다. 사람들이 있을 때는 웬만해선 그들이 있는 곳을 지나다니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어두컴컴한 냉장고 뒤, 먼지 많은 장롱 밑, 더러운 쓰레기가 담긴 봉지에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없는 것처럼 살아왔다.


그런데 이 집은 그동안 살았던 집들과는 조금 다르다. 무척 쾌적하고 공기도 텁텁한게 숨쉬기도 좋다. 우리 몸을 가려줄 먼지와 쓰레기들도 도처에 널려 있어서 가구로 삼기에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따로 있었다. 바로, 사람들이 집에 잘 없다는 것이다. 한 명이 매일 큰 가방 메고 아침에 나가서 밤에 오긴 하는데 집에 돌아오면 곧바로 TV 켜놓고 방으로 들어가니 나와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리고 가끔씩은 집에 들어오지 않는지 콧베기도 본적이 없을 때도 있었다.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다. 우리를 찾기 위해 집 안을 어지럽히는 사람도 없다. 가끔 나도 깜빡 속을 만큼 향기 나는 음식을 내가 지나가는 길에 두는 사람도 없다.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하고 누워서 편하게 잘만한 푹신한 먼지들이 가득하고 메케하게 올라오는 그 향긋한 냄새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 집만큼 평생을 함께해도 될 만큼 최고의 장소는 지금까지 없었고 또한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2년 동안 우리 가족은 200명이 되었다. 예전에 살던 집 같았으면 이미 우리 아이들은 다 죽고 나 역시 지금까지 살아있을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는 손에, 또 누구는 화장지에, 또 다른 애는 실내화에, 또 어떤 애는 향기나는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그렇게 죽어갔을 것이 분명하다. 사랑하는 내 아들, 딸 묻어주지도 못하게 굉음을 뿜어내는 물 속에 내 아이들을 집어 넣거나 우리 힘으로 들어올릴 수도 없을 만큼 화장지를 두껍게 눌러 놓았겠지.


“아빠, 집이 너무 조용한 것 아니예요?”

“그러니까 말이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렴. 무슨 일은 없을거란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엄습해왔다. 자주 보던 그 사람 얼굴을 요즘 도통 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이 집이 다른 누군가에게 팔린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가끔씩이라도 계속해서 집에는 들어왔기에 큰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그 사람 외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니 이사는 가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 확신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여진 오랜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바퀴벌레 약 위를 걷는 것처럼 초초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며칠이 지나고 키가 큰 사람들이 갑자기 내 집에 들이닥쳤다. 초이종을 누르거나 인기척이라도 했으면 미리 준비하고 있었을텐데 문을 왈칵 여는 바람에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다행히 문틈 사이에서 쉬고 있기에망정이지 거실 한 복 판에서 누워 따스한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면 그 이후는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사람이 없더라도 방 가운데에 가지 않는 본능이 나를 살린 것이다.


“이것은 챙겨가고 저것은 버리렴.”

“아이들 모두 있는지 확인하는 것 잊지 말고!”


2년을 편안하게 산 곳이다. 여건만 허락된다면 내 한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 이곳에서 보내고 싶었다. 각 방마다 어떤 가구를 배치할지, 정원은 어떻게 꾸밀지, 아이들의 책상은 어디에 넣을지 다 생각해 놓았는데.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이 집을 두고 이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살던 안락한 곳이 빗자루와 쓰레기봉투, 햇빛으로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이사를 간 다음날 부터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향긋한 먼지 내음은 사라지고 쾌쾌한 꽃잎 냄새가 집 안에 가득해졌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이상한 액체를 쾌적한 우리집의 이방 저방에 뿌리고 다녔다. 도저히 이렇게 이상한 냄새가 나는 곳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편안하고 안락한 집을 앞으로 구하는 것이 거실을 가로질러 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가장이고 우리 아이들을 위험한 곳에서 지켜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구가 멸망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강인한 체력과 정신적으로 어떤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먹을 것이 없는 가뭄에도 꿋꿋하게 생명을 이어갔다. 그 어떤 달콤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으며 죽는 순간까지 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비록 그들이 이 집의 주인이며 세상의 주인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들 눈을 피해 장롱 뒤, 장판 밑, 씽크대 속, 배수관 안에 숨어살지만 언젠가 밝은 세상으로 나올날을 기대하고 있다. 그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으면 된다.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사람이 승리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누가 승자인지는 알 수 없다. 2년의 시간은 나와 가족에게 행복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었다. 가족의 중요함을 느낄 수 있었고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빴다면 우리 아이들 크는 것도 재대로 보지 못하고 빠르게 지난간 시간만 원망했을 것이다. 생존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삶을 설계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내 아버지, 어머니가 그랬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랬다. 생존이 보장되니 꿈을 꿀 수 있었고 아이들은 웃을 수 있었다.


부랴부랴 짐을 싸고 떠나야 하지만 2년이라는 행복한 시간을 내게 준 곳이기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2년 동안 잘 지냈다. 고마웠다. 퉤!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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