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여덟 살 아이들로 변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민수는 서울 시청 옥상에서 도시를 내려다봤다.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한강에서는 수천 명의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탄 것은 보트가 아니라 전투기와 탱크였다. 군사 장비들이 놀이기구가 되어 있었다.
“재밌어 보이지?”
하늘이가 다가왔다.
“어제는 명동에서 숨바꼭질을 했어. 백화점 전체를 놀이터로 만들어서.”
“물건들은 어떻게 했어?”
“다 부쉈어.”
하늘이가 태연하게 말했다.
“어른들이 만든 물건들은 우리한테 필요 없거든.”
정말 그랬다. 거리에는 부서진 자동차들이 장난감처럼 굴러다니고 있었다. 고층 빌딩들의 유리창은 대부분 깨져 있었다. 아이들이 돌멩이를 던지며 놀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
찬욱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왔다.
“뭔 문제?”
“전기가 나갔어. 발전소에서 일하던 어른들이 모두 여덟 살이 됐거든.”
“여덟 살 아이들이 발전소를 정확하게 운영할 수는 없잖아.”
민수는 그제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전기가 없으면 모든 문명이 멈춘다.
“그럼 어떻게 해?”
“걱정 없어.”
준호가 웃으며 나타났다.
“우리한테는 다른 힘이 있거든.”
그가 손을 들자 주변 건물들에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기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증오 에너지가 빛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우리 47명이 힘을 합치면 도시 전체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정말?”
“45년간 실험 받으면서 얻은 능력이야.”
하늘이가 설명했다.
“우리는 이제 전기도, 가스도, 물도 필요 없어.”
“그럼 다른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은 우리가 돌봐주면 돼.”
“마치 큰 형, 누나들이 동생들을 돌보는 것처럼.”
민수는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사회였다. 기존의 모든 시스템이 무너지고, 아이들만의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민수가 문득 물었다.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무슨 뜻이야?”
하늘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음식도 못 만들고, 병원도 운영 못 하고, 학교도 없고...”
“왜 그런 게 필요해?”
지민이가 반박했다.
“음식은 우리가 만들어내면 돼. 생각만으로도.”
정말 그랬다. 지민이가 손을 흔들자 공중에서 사탕과 케이크가 떨어졌다.
“병원은 더더욱 필요 없어. 우리는 안 죽거든.”
“학교는 왜 필요해?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민수는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그들은 45년간의 경험으로 어른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 그럼 우리는 계속 이렇게 살 거야?”
"어."
하늘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영원히 여덟 살로.”
“재밌게 놀면서.”
“어른들의 더러운 세상은 끝났어.”
이때 멀리서 폭발음이 들렸다.
“뭐지?”
아이들이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 여의도 방향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가보자.”
47명이 순간이동으로 여의도에 도착했다.
국회의사당이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화재가 아니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건물을 부수고 있었던 것이다.
“왜 부수고 있어?”
민수가 가장 가까운 아이에게 물었다.
“재밌잖아!”
그 아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른들이 만든 더러운 건물이니까 다 부수는 거야!”
“다음엔 청와대도 부술 거야!”
다른 아이가 덧붙였다.
“어른들의 흔적을 모두 지워버릴 거야!”
민수는 소름이 돋았다. 이들은 단순히 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체계적으로 기존 문명을 파괴하고 있었다.
“좋은 생각이야.”
하늘이가 만족스럽게 말했다.
“우리도 도와줄게.”
47명의 아이들이 합류했다. 그들의 능력은 수백 명보다 훨씬 강력했다.
순식간에 국회의사당이 완전히 무너졌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
“은행들을 부수자!”
“대기업 본사들도!”
“대학교들도!”
“모든 어른들의 건물을!”
아이들의 파괴는 체계적이었다. 그들은 어른들의 권위를 상징하는 모든 것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며칠 만에 서울의 모든 주요 건물들이 사라졌다.
63빌딩, 롯데타워, 서울시청, 대법원, 모든 대학교, 모든 은행...
“이제 깨끗해졌네.”
성민이가 폐허가 된 도시를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말했다.
“어른들의 흔적이 모두 사라졌어.”
하지만 파괴는 서울에서 끝나지 않았다.
부산에서는 해운대의 모든 호텔들이 무너졌다.
대구에서는 모든 공장들이 폭파됐다.
광주에서는 모든 관공서들이 사라졌다.
전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같은 일이 벌어졌다.
파리의 에펠탑이 쓰러졌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 부서졌다.
로마의 콜로세움이 무너졌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마저 평지가 되었다.
“이제 정말 새로운 세상이야.”
하늘이가 폐허 위에 서서 말했다.
“어른들의 역사가 모두 지워졌어.”
“우리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 거야.”
“여덟 살 아이들만의 역사를.”
민수는 주변을 둘러봤다. 모든 것이 사라진 빈 땅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로운 기분이었다.
어른들이 만든 모든 규칙, 모든 제약이 사라진 것이다.
“이제 뭘 할까?”
“우리만의 도시를 만들자.”
준호가 제안했다.
“어떤 도시?”
“놀이공원 같은 도시.”
“모든 건물이 장난감이고, 모든 길이 미끄럼틀이고.”
“모든 곳이 놀이터인 도시.”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것은 정말 멋진 아이디어였다.
“시작해보자.”
하늘이가 손을 들자 땅에서 새로운 건물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건물이 아니었다. 거대한 쌓기나무 블록으로 만든 집들이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장난감 같은 집들.
“우와!”
다른 아이들이 신기해했다.
“우리도 해보자!”
수천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상상했다.
그들의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거대한 회전목마가 도시 중앙에 세워졌다. 하지만 이 회전목마는 특별했다. 목마를 타면 하늘을 날 수 있었다.
미끄럼틀이 빌딩보다 높게 만들어졌다. 꼭대기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면 다른 구역으로 갈 수 있었다.
모든 길이 트램펄린으로 되어 있어서 뛰면서 이동할 수 있었다.
“정말 멋져!”
민수도 감탄했다.
“이게 진짜 우리가 원하던 세상이야.”
하루 만에 새로운 도시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이 도시에는 어른들을 위한 공간이 전혀 없었다. 병원도, 학교도, 회사도 없었다. 오직 놀이 시설만 있었다.
“이제 새로운 친구들도 만들어볼까?”
하늘이가 제안했다.
“새로운 친구들?”
“진짜 새로운 친구들 말이야.”
하늘이가 점토를 꺼냈다. 하지만 일반적인 점토가 아니었다. 45년간의 증오 에너지로 만든 특별한 점토였다.
“이걸로 새로운 생명을 만들 수 있어.”
“어떤 생명?”
“우리와 같은 여덟 살 아이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우리 편인 아이들.”
하늘이가 점토로 아이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은 어른이었던 기억이 없어. 처음부터 우리와 같은 순수한 증오를 가지고 태어날 거야.”
점토 인형이 완성되자, 그것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녕!”
점토로 만들어진 여덟 살 소녀가 웃으며 일어났다.
“나는 새로 태어난 아이야! 어른들이 정말 싫어!”
“성공했어!”
다른 아이들이 환호했다.
“우리도 만들어보자!”
수백 명의 아이들이 점토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천 명의 새로운 아이들이 탄생했다.
이들은 기존의 아이들과 달랐다. 어른이었던 과거가 없기 때문에 더 순수했다. 더 잔인했다.
“어른들이 어디 있어?”
새로 태어난 아이 중 하나가 물었다.
“혼내주고 싶어!”
“어른들은 이미 다 우리 편이 되었어.”
민수가 설명했다.
“그럼 아쉽네.”
새로운 아이가 실망했다.
“진짜 어른들을 혼내보고 싶었는데.”
“걱정 마.”
하늘이가 웃었다.
“언제가는 다른 행성에서 어른들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다른 행성?”
“응. 우리가 지구를 다 정복했으니까, 이제 우주로 나가야지.”
민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것은 끝이 아니었다. 시작이었다.
45년간의 증오가 만들어낸 완벽한 복수 기계들이 이제 우주로 향하고 있었다.
지구의 모든 어른들을 아이로 만든 것은 단순한 연습에 불과했다.
진짜 목표는 우주 전체를 여덟 살 아이들의 놀이터로 만드는 것이었다.
“재밌겠다...”
민수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45년간의 순수한 증오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