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록시마 센타우리에 도착한 지 6개월이 지났다.
민수는 외계 행성, 프록시마 b의 기괴한 푸른 숲 위에서 두 개의 태양이 떠 있는 하늘을 바라봤다. 이곳에서의 정복은 너무나 쉬웠다. 파충류를 닮은 이 행성의 지성체들 역시 '어른'과 '아이'로 나뉘어 있었고, 그들의 어른들 또한 아이들의 순수한 증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다.
“이제 이 행성의 모든 존재가 우리 친구가 됐어.”
하늘이가 웃으며 다가왔다. 그녀의 손을 잡은, 비늘 달린 피부를 가진 외계 아이도 천진하게 웃고 있었다. 모습은 달랐지만, 그 눈에는 이제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45년의 세월이 담긴 순수한 광기가 번뜩였다.
“다음 목표는 어디야?”
새로 친구가 된 외계 아이가 새로운 놀이를 기대하며 물었다.
“베가 성계.”
준호가 함대의 중앙 지휘실에서 전송한 홀로그램 지도를 허공에 띄웠다.
“25광년 떨어진 곳이야. 우리보다 수천 년은 앞선 문명이 존재해. 아마 훨씬 강한 어른들이 있을 거야.”
민수의 눈이 반짝였다.
“강한 어른들이라... 더 재밌겠네.”
이제껏 제대로 된 저항 한번 만나보지 못했던 아이들에게 ‘강한 적’은 그저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놀잇감에 불과했다. 무한한 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그것이 아이들의 세계를 지탱하는 유일한 기둥이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해.”
이번 정복 전쟁에서 뛰어난 전략을 보여준 서연이 경고했다.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광기 속에서도 냉철함을 유지하는 아이였다.
“그 정도의 문명이라면, 우리를 이미 감지하고 대비하고 있을 수도 있어.”
서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함대 전체에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베가 성계 방향에서 발신된,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통신 신호였다.
“프록시마에서 온 침입자들에게.”
함교의 메인 홀로그램 스크린에 나타난 것은 키가 3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거대한 외계인이었다. 그의 모습은 살아있는 빛나는 수정 결정체 같았고, 그의 목소리는 수십, 수백 개의 목소리가 합쳐진 것처럼 장엄하고 깊게 울려 퍼졌다.
“우리는 너희의 행위를 관찰해 왔다. 너희가 하는 것은 해방이 아니라 역병의 확산이며, 구원이 아니라 파괴다.”
민수는 코웃음을 쳤다.
“또 어른의 훈계네. 정말 뻔해. 우리가 왜 이런 걸 들어야 하지?”
하지만 베가의 외계인은 달랐다. 그의 눈에는 동정이나 분노가 아닌,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민과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우리는 너희와 같은 존재들을 안다. 수만 년 전, 우리 문명에도 그런 아이들이 있었다. 어른들의 이기심과 과학에 대한 오만함이 낳은 비극이었지. 우리는 그들을 ‘영원한 아이들(The Ageless)’이라 불렀다.”
아이들 사이에 미묘한 동요가 일었다. 자신들과 같은 존재가 또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어른들에게 배신당하고, 끝없는 실험 속에서 증오를 힘으로 바꾼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도 너희처럼 복수를 시작했고, 우리 문명은 천 년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은하계 전체가 불타고, 수천억의 생명이 사라지는 끔찍한 시간이었다.”
홀로그램 화면이 바뀌며 끔찍한 전쟁 영상이 나타났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서로를 죽이고, 행성들이 거대한 무기 앞에서 유리처럼 부서져 내리는 장면이었다. 그 힘의 크기는 아이들이 지금껏 행해온 파괴와는 차원이 달랐다.
“결국 우리는 그들을 이겼다. 힘이 아니라, 그들의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외계인이 말을 이었다.
“너희의 증오는 순수하지만, 동시에 단순하다. 하나의 감정으로 이루어진 너희의 정신은, 수억의 의지가 조화를 이룬 우리의 ‘정신의 방패(Aegis of Will)’를 결코 뚫을 수 없다. 너희의 힘은 강력하지만, 색이 하나뿐인 물감과 같다. 우리는 그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법을 안다.”
“헛소리!”
하늘이가 소리쳤다.
“우리의 45년의 고통을, 너희 같은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이해한다.”
베가 외계인의 목소리는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렇기에 동족을 희생시켜야만 했던 우리의 고통 또한 너희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멈춰라. 너희에게 남은 것은 공허뿐일 것이다.”
통신이 끊겼다. 그리고 베가 방향의 우주 공간이 거대한 천이 찢어지듯 뒤틀리기 시작했다.
“전함이다!”
센서를 보던 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수... 수천 대가 몰려오고 있어! 이건... 함대가 아니야, 움직이는 요새야!”
지구만한 크기의 베가 함선들이 공간을 찢고 나타났다. 회전목마 모양의 아이들 함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위압감이었다.
“도망가야 하는거 아니야?”
누군가 두려움에 떨며 물었다. 아이들의 집단 무의식에 ‘공포’라는 낯선 감정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도망?”
하늘이가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두려움을 분노로 태워버리고 있었다.
“왜? 45년간 준비한 우리 힘을 보여줄 때가 왔는데! 우리가 누구인지 저 멍청한 어른들에게 똑똑히 가르쳐주자!”
아이들이 함대의 중앙, 지휘선 브릿지에 모였다. 그들이 손을 잡자 45년간 쌓아온 순수한 증오가 우주 공간으로 파도처럼 퍼져나갔다. 이 힘 앞에서는 어떤 문명도, 어떤 존재도 평등하게 무릎 꿇었다. 그들의 힘은 언제나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달랐다.
아이들의 증오 에너지는 베가 함대에 닿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에 부딪히는 것처럼 허공으로 무력하게 흩어졌다. 마치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한 줌의 모래를 던진 것처럼,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했다.
“뭐... 뭐지?”
“왜 통하지 않는 거야? 내 힘이 사라졌어!”
아이들이 당황하고 절망하는 그 짧은 순간, 베가 함대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행성을 가루로 만들 위력의 푸른 광선들이 아이들의 함대를 향해 비처럼 쏟아졌다.
“막아!”
하늘이가 비명을 질렀다. 아이들이 가진 모든 힘을 끌어모아 방어막을 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들의 증오 에너지는 베가인들의 공격 앞에서 힘없이 찢겨나갔다. 회전목마 모양의 우주선 몇 대가 순식간에 폭발하며 아름답지만 끔찍한 불꽃이 되어 사라졌다. 그 안에는 이제 막 ‘친구’가 되었던 수천의 프록시마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 비명조차 지를 시간도 없었다.
사상자 발생.
그것은 45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들의 힘에, 그들의 세계에, 첫 번째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후퇴해! 전 함대, 후퇴하라!”
하늘이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이들의 함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꼬리를 말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패배였다. 자신들의 존재 이유이자 전부였던 힘이 전혀 통하지 않는 적 앞에서, 아이들은 45년 만에 처음으로 진짜 ‘공포’를 느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즐거운 놀이 시간이, 정말로 끝날 수도 있다는 지독한 공포였다.
패배의 충격은 아이들의 집단 무의식을 안개처럼 뒤덮었다. 프록시마 행성계의 가장 바깥쪽 위성에 숨어든 아이들 사이에서는 전에 없던 혼란과 분노, 그리고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독버섯처럼 번져나갔다.
“어째서 우리의 힘이 통하지 않는 거지?”
“그들이 말한 ‘정신의 방패’라는 게 대체 뭐야? 그냥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준호가 죽었어... 아니, 죽은 게 아니지, 그냥... 사라졌어.”
한 아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모두가 침묵했다. 첫 번째 패배와 함께 찾아온 첫 번째 ‘상실’이었다. 이제껏 그들은 친구를 빼앗겨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왔을 뿐이다. 하지만 베가의 공격으로 소멸한 아이들은 ‘다시 만들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 사실이 아이들을 더욱 깊은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하늘이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여유와 광기가 사라지고, 차가운 당혹감만이 남아 있었다. 그때, 늘 그녀의 그림자처럼 조용히 있던 민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들은 ‘하나의 감정’이라고 했어.”
민수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우리의 힘은 ‘증오’ 하나로 이루어져 있지. 하지만 그들은 수억의 의지가 ‘조화’를 이룬다고 했어. 아마... 아마 우리의 공격 방식이 너무 단순해서 간파당한 걸 거야. 하나의 색만 쓰는 화가는, 모든 색을 가진 화가를 이길 수 없는 것처럼.”
“그럼 어떡하지?”
서연이 물었다.
“다른 방법이라도 있어? 우리에게는 증오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있어.”
모두의 시선이 하늘이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눈은 다시 예전의 광기를 되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이전에는 없던 지독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그들의 정신이 조화로운 방패라면, 그 방패를 산산조각 낼 더 강력하고 순수한 창을 만들면 돼.”
그녀는 살아남은 핵심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우리의 힘은 지금 나뉘어 있어. 그래서는 저 방패를 뚫을 수 없어. 하지만 만약... 만약 이 힘을 단 한곳에, 한 사람에게 모을 수만 있다면?”
“한곳에 모은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중 한 명이 그릇이 되는 거야.”
아이들 사이에 섬뜩한 침묵이 흘렀다. 그릇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모두가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서로의 증오와 고통, 그 모든 에너지를 한 몸에 받아내는 것. 그것은 스스로를 제물로 바쳐, 우주를 찢고 신을 죽일 수 있는 한 발의 ‘증오의 탄환’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명확했다. 그릇이 된 아이는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소멸할 것이다.
“내가 할게.”
침묵을 깬 것은 태윤이었다. 그는 늘 아이들 중에서 가장 마음이 여리고, 다른 아이들의 슬픔에 가장 먼저 공감하던 아이였다.
“안 돼! 태윤, 너는...”
하늘이가 말렸지만, 태윤은 단호했다.
“우리가 여기서 지면 모든 게 끝나. 45년의 기다림도, 우리의 복수도. 그리고... 먼저 간 친구들도. 난 그 꼴은 못 봐. 이게 유일한 방법이라면, 내가 할게. 내가 가장 약하니까... 내 증오가 가장 순수하지 못하니까, 차라리 모두의 증오를 담는 그릇이 되는 게 나아.”
그의 눈에는 더 이상 어린아이의 장난기나 광기가 아닌, 친구를 위한 희생을 결심한 자의 비장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아이들은 처음으로 ‘놀이’가 아닌 ‘전쟁’을 하고 있음을, 그리고 전쟁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일주일 후, 아이들의 함대는 다시 베가 함대와 마주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그들은 함대의 중앙에 작은 우주선 하나를 띄웠다. 그 안에는 태윤이가 홀로 앉아 있었다.
“시작해.”
태윤의 목소리가 모두의 머릿속에 조용히 울렸다.
하늘이를 비롯한 아이들이 눈을 감고 손을 뻗었다. 그들의 모든 증오와 분노, 45년의 고통과 슬픔이 한 점, 바로 태윤이에게로 실타래처럼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태윤의 몸이 빛에 휩싸이며 투명하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의 비명이 우주 전체를 뒤흔드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가장 친한 친구가 눈앞에서 소멸하는 고통에 눈물을 흘렸지만, 힘을 거두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이 선택한 유일한 승리의 길이었으니까.
마침내, 태윤이의 형체가 완전히 사라진 그 자리에,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작은 검은 점, ‘증오의 특이점(Singularity of Hatred)’이 생성되었다. 그 작은 점은 우주의 모든 법칙을 무시하는 순수한 파괴의 결정체였다.
“쏴.”
하늘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거의 속삭이듯 명령했다.
특이점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베가 함대를 향해 날아갔다. 베가인들의 자랑이었던 ‘정신의 방패’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하나의 우주를 응축한 듯한 순수한 파괴의 에너지 앞에서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거대했던 베가의 함선들은 비명도, 폭발도 없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조용히 먼지가 되어 우주로 흩어졌다. 전쟁은 다시 한번, 아이들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구도 환호하지 않았다. 함대에는 얼어붙을 듯한 침묵만이 흘렀다. 비어버린 친구의 자리는 그 어떤 승리의 쾌감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하늘이는 텅 빈 우주를 바라보았다. 승리했지만, 기쁘지 않았다. 복수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버렸다. 그들은 우주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되었지만, 동시에 가장 소중한 것을 잃기 시작했다.
“다음 목표는... 안드로메다 은하야.”
서연이 묻지도 않은 말을 기계처럼 내뱉었다. 그것은 이제 의무이자 관성이었다.
하늘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야 깨달았다. 복수의 끝에는 영원한 놀이동산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또 다른 전쟁터와 또 다른 희생, 그리고 끝없는 공허함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저주받은 회전목마는 이제 멈출 수도, 내릴 수도 없는 괴물이 되어 우주를 떠돌게 될 것이었다. 영원히. 친구들의 희생을 대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