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 영원한 놀이시간의 끝

by 상현달

아이들의 세계는 더 이상 웃음소리로 가득하지 않았다.

베가 성계에서의 피로 얼룩진 승리 이후, 함대에는 죽음의 무게가 납덩이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45년간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던 순수한 증오는 처음으로 겪는 ‘상실’ 앞에서 길을 잃었다. 이제 그 증오는 외부의 적이 아닌,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칼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하늘이의 ‘정복 포기’ 선언은 아이들의 세계를 두 개의 조각으로 완벽하게 갈라놓았다.

한쪽은 강림이 이끄는 '복수파'였다. 그들은 친구의 희생을 딛고 얻은 승리이기에, 여기서 멈추는 것은 죽어간 친구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부르짖었다. 그들에게 복수는 이제 어른에 대한 증오를 넘어,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어 있었다.

베가 문명의 ‘정신의 방패’는 그들에게 극복해야 할 놀이의 다음 단계이자, 자신들의 힘을 시험할 마지막 관문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더 이상의 희생을 두려워하는 것은 나약함의 증거일 뿐이었다.

다른 한쪽은 하늘이를 중심으로 모인 ‘회귀파’였다. 그들은 태윤의 소멸을 통해 복수의 끝에 놓인 것이 영원한 놀이터가 아닌, 끝없는 희생과 공허뿐이라는 끔찍한 진실을 엿보았다.

그들은 어른들을 닮은 괴물이 되어 우주를 피로 물들이느니, 차라리 상처 입은 아이들로 남아 서로를 보듬고 싶었다. 그들에게 복수는 이미 끝났다. 아니, 애초에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싹트고 있었다.

두 진영의 갈등은 임시 기지로 사용하던 프록시마 b의 대기를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서로를 향한 텔레파시는 이제 따뜻한 교감이 아닌, 날 선 비난과 의심으로 가득 찼다.

“배신자! 너희는 태윤이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 셈이야!”

“너희야말로 태윤이를 두 번 죽이고 있어! 그 애는 우리 모두가 행복하길 바랐을 거라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강림과 복수파 아이들은 ‘영혼 폭탄’을 제조하기 위해 비밀리에 다른 아이들을 납치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했다. 어차피 모두가 하나의 집단 무의식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소수의 의지는 다수의 더 큰 목적을 위해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45년 전, 하얀 가운을 입은 어른들의 논리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첫 번째 희생자가 나왔을 때, 하늘이는 자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순간이 왔음을 깨달았다. 친구가 친구를 제물로 바치는 지옥. 그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낸 새로운 실험실.

“도망가야 해.”

하늘이는 회귀파 아이들을 이끌고 함대의 일부를 탈취해 안드로메다 은하를 향한 탈출을 감행했다. 그들이 꿈꾸던 마지막 낙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우리들만의 놀이터’를 찾아서.

하지만 강림은 그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에게 하늘이와 회귀파는 복수를 포기한 배신자이자, 자신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내부의 ‘암적인 존재’였다. 복수라는 절대적인 목표 앞에서 친구라는 개념은 희미해져 있었다.

우주 공간에서 아이들의 첫 번째 내전이 시작되었다.

수천, 수만 대의 회전목마 우주선들이 서로에게 증오의 에너지를 퍼부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들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싸웠다. 그들의 공격에는 45년간의 우정이 담겨 있었기에 더욱 잔인했고, 서로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처절했다.

우주선이 폭발할 때마다 수억의 ‘새로운 친구들’이 비명과 함께 사라져갔지만, 이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 다른 존재들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소모품에 불과했다.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어느 한쪽도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살아남은 아이들은 점점 더 지쳐갔다. 그들의 힘의 원천이었던 순수한 증오는 서로를 향한 실망과 슬픔, 그리고 자기혐오와 뒤섞여 점차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때, 하늘이는 결심했다.

이 끔찍한 동족상잔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하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복수의 완성이자, 동시에 완전한 파멸이었다.

“모두에게 전해.”

하늘이는 함대의 통신 시스템을 통해 남아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마지막 텔레파시를 보냈다.

“내가... 내가 마지막 어른이 될게.”

그녀의 메시지를 이해한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하늘이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함대의 중심부에서 눈을 감고, 그녀의 존재 자체를 거대한 증폭기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녀가 하려고 하는 것은 ‘영혼 폭탄’의 제조가 아니었다. 그것을 뛰어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모든 ‘아이들’에게서 증오의 에너지를 역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45년간의 원한과 분노.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중심, 하늘이를 향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왔다. 그것은 우주가 탄생한 빅뱅에 버금가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였다.

“하늘아, 안 돼! 그만둬! 네 몸이 버티지 못해!”

아이들이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하늘이의 몸은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빛의 입자가 되어 서서히 부서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기묘한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45년간 자신을 옭아매던 지독한 증오가 사라지는 자리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진짜 ‘자유’를 느끼고 있었다.

“이게... 우리의 진짜 복수야.”

하늘이의 마지막 목소리가 우주 전체에 울려 퍼졌다.

“어른들을 우리처럼 만드는 게 아니었어. 우리가... 다시 어른이 되는 거였어. 용서할 줄 알고, 슬퍼할 줄 알고, 그리고... 서로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진짜 어른.”

우주 곳곳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행성들에서, 웃음이 멈추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여덟 살의 몸에 갇혀 있던 수많은 존재들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주름진 얼굴, 상처 입은 몸, 그리고 잃어버렸던 시간의 기억과 함께. 그들은 혼란 속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모든 증오를 흡수한 하늘이의 존재가 완전히 소멸하려는 마지막 순간.

그녀는 남은 모든 힘을 끌어모아 마지막 창조의 시간을 만들었다. 그것은 파괴가 아닌, 치유의 힘이었다.

그녀의 힘이 닿은 곳마다, 전쟁으로 파괴되었던 행성들이 서서히 복구되기 시작했다. 부서진 건물들이 제자리를 찾고, 메마른 대지에 생명이 싹텄다. 그녀는 자신이 망가뜨린 우주에 대한 마지막 사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이가 사라진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단 하나의 작은 빛이었다.

그 빛은 우주의 끝, 안드로메다 은하의 가장 외진 곳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곳에, 아주 작고 평범한 놀이터 하나를 만들었다.

모래사장과 낡은 그네 두 개, 그리고 삐걱거리는 회전목마 하나가 전부인.

내전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모든 힘을 잃었다. 그들의 몸을 채우고 있던 순수한 증오가 사라지자, 그들은 더 이상 시간을 조작하거나 현실을 비틀 수 없었다. 그저 평범한 여덟 살 아이들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마지막 놀이터로 이끌렸다.

그곳에서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강림의 눈에는 더 이상 복수심이 없었다. 남은 것은 친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깊은 후회와 죄책감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의 눈에도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회전목마에 올라탔다.

45년 전, 모든 비극이 시작되었던 그곳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회전목마는 저절로, 아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신나는 음악도 없었다. 오직 삐걱, 삐걱, 녹슨 쇠가 마찰하는 소리만이 영원할 것 같은 우주의 침묵 속에서 울려 퍼졌다.

45년 동안 꿈꿔왔던 복수는 완성되지 않았다. 그들은 어른들을 이기지도, 세상을 구하지도 못했다. 그저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을 망가뜨렸을 뿐이다.

이제 그들은 영원한 여덟 살로, 친구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작은 놀이터에 갇힌 채 우주의 끝에 남겨졌다.

어른이 되는 법을 잊어버린 아이들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놀이 시간을 선고받았다.

회전목마는 계속 돌았다.

멈추지도, 빨라지지도 않은 채.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을 태우고, 끝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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