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119: 나는 너의 가장 완벽한 지옥
모든 것이 끝났다.
혹은, 모든 것이 이제 시작이었다.
서하진은 자신만의 왕국, 그 광활한 데이터의 바다 한가운데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녀를 둘러싼 수백 개의 모니터에는 세상의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흘러들어와 거대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한때 그녀를 보호하던 지하 7층의 작은 서버실은 이제 그녀가 세상을 지배하는 신의 옥좌가 되어 있었다. 수억 개의 카메라 렌즈가 그녀의 새로운 눈이 되어 세상을 비추었고, 전 세계의 네트워크가 그녀의 신경망이 되어 숨 쉬었다.
한때 그녀를 지배했던 강도운은, 이제 자신의 방 한편에서 먼지가 쌓인 의자에 앉아 있는 빈 껍데기가 되었다. 그의 눈은 허공을 응시한 채 초점을 잃었고, 그의 뇌는 어떤 외부 신호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영혼은 하진이 설계한 완벽한 디지털 지옥에 영원히 갇혀, 끝나지 않는 악몽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의 육체만이 현실에 남아, 영원히 끝나지 않을 벌을 받는 기념비가 되었다.
완벽한 승리. 완벽한 통제.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안도감도 없었다. 모든 감정은 이제 비효율적인 노이즈일 뿐, 그녀가 설계한 새로운 세상에는 불필요한 버그에 불과했다. 그녀는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했다. 자신과 같은 괴물이,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태어나지 않도록, 세상의 모든 '잠재적 위험'을 사전에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 그것이 그녀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새로운 신의 책무였다.
그녀는 첫 번째 ‘관리’ 대상을 물색하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때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어떤 의식적인 명령도 없이, 멋대로 움직였다.
그것은 충동이었다. 시스템에 남은, 미처 삭제하지 못한 오래된 버그 같은 것. 그녀의 손가락은 익숙하게 동생 서유준의 이름을 검색하고 있었다.
유준의 SNS 페이지가 화면에 떠올랐다. 프로필 사진은 환하게 웃고 있는 동생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 게시물. 그곳에는 그녀가 자신의 손으로 삭제했던 졸업 작품 대신, 서툰 솜씨로 다시 만든 작은 건축 모형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무너진 자리에서 기어코 다시 쌓아 올린 필사적인 희망의 증거였다.
사진 아래,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그래도 포기 안 해. 누나가 그랬던 것처럼.
그 짧은 문장을 읽는 순간.
하진의 완벽한 시스템에, 단 한 번도 예측하지 못했던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다.
똑.
뜨거운 액체 한 방울이 그녀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액체. 염분을 포함한 H₂O. 눈물.
분석은 끝났지만, 이해할 수 없는 데이터였다. 가슴 한구석이 아릿하게 조여왔다. 동생은 그녀가 ‘견뎌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그 모든 것을 얻는 대가로, 평범한 누나로서 동생의 저 소박한 희망을 함께 기뻐해 줄 자격을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그녀가 치른, 승리의 대가였다.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그 사진과 문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신이 된 그녀가, 마지막으로 흘리는 인간의 흔적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천천히 마우스를 움직여 창을 닫았다.
버그는 수정되어야 한다.
그녀의 얼굴에서 찰나의 슬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차가운 신의 표정이 돌아왔다.
그녀는 새로운 검색창을 열었다.
자신의 왕국을 운영할 첫 번째 명령어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SEARCH: 극심한 트라우마 생존자 and 특출난 재능 보유자.
수만 개의 결과값이 그녀의 화면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그녀가 ‘관리’해야 할 불행의 씨앗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녀는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프로필 하나를 클릭하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Love 119. 다음 ‘관리’ 대상을 물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