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 [프롤로그]

『수상한 친구들』 프롤로그에 담긴, 나의 진짜 이야기

by 상현달


이 책의 프롤로그는 겉으로는 주인공 ‘동철이’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작가인 제가 10대 시절 겪었던 상실의 시간을 거의 그대로 옮겨 적은 기록에 가깝습니다. 초등 고학년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인물의 나이와 배경만 조금 조정했을 뿐, 그 안에 담긴 감정의 결은 고등학교 1학년이던 그때의 제 마음과 똑 닮아 있습니다.


1. “엄마가 죽었다. 나는 혼자 남겨졌다.”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이건 소설적인 장식이 아니라, 제 삶의 가장 아픈 고백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를 떠나보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그날 이후, 제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감정은 ‘고아가 되었다’는 실감, 그리고 ‘앞으로는 세상에 정말 나 혼자뿐이다’라는 서늘한 감각이었습니다. 법적으로는 형도 있고 친척들도 있었지만, 부모님이 모두 안 계신다는 사실은 어린 마음에 ‘완벽한 고립’처럼 느껴졌거든요. 그 막막했던 심정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고 싶어서, “나는 혼자 남겨졌다”라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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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지막 날의 삼계탕


프롤로그에서 엄마는 죽기 전날 삼계탕을 끓여줍니다. 이 장면은 제 기억 속 어머니의 모습에서 가져왔습니다. 엄마는 늘 형과 저에게 “나는 괜찮다, 배부르다” 하시며 맛있는 부위를 양보하던 분이셨습니다. 소설 속 엄마가 “엄마는 끓이면서 먹었어, 아들 많이 먹으렴”이라고 말하는 것도 실제 어머니의 말버릇이었죠.

그때의 저는 엄마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혼자 배불리 먹었던 철없는 아들이었습니다. 나중에야 그게 사랑 섞인 거짓말인 줄 알았을 때 밀려오던 뒤늦은 죄책감. “왜 그때 더 권하지 못했을까, 왜 나만 그렇게 먹었을까” 하는 그 후회의 마음을 동철이가 혼자 그릇을 비우는 장면에 담았습니다.


3. 우리 동네를 돌던 관


소설 속에서 엄마를 실은 관이 동네 슈퍼, 문방구, 옷가게를 지나 집 앞에 잠시 멈추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건 문학적인 상상이 아니라, 제가 실제로 겪은 장례식 날의 풍경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날, 관을 실은 차는 제가 매일 뛰어다니던 익숙한 골목길을 천천히 지나갔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간판들, 늘 다니던 길은 어제와 똑같은데, 그 평범한 풍경 위로 엄마의 관이 지나가고 있었죠. 차 안에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대로 돌아가는데, 나만 모든 것을 잃었구나.’ 그날 느꼈던, 일상과 죽음이 겹쳐지는 기묘한 괴리감을 독자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4. 이미 정리된 집으로 돌아오다


장례를 치르는 며칠 동안 저는 형과 함께 외삼촌 댁에 머물렀습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현관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건 이미 어른들의 손에 의해 깨끗하게 정리된 집이었습니다. 엄마의 옷가지, 화장품, 늘 거기 있던 물건들이 제가 없는 사이에 사라져 있었습니다.

이모님들은 저희를 위해 정리를 해주신 거였지만, 어린 제 눈에는 그게 엄마가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지는 과정처럼 보였습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흔적이 벌써 사라져버렸네.” 그 텅 빈 공간에 섰을 때의 상실감을 소설 속에 그대로 녹여냈습니다.


5. 사라지는 향기를 붙잡으며


어른들의 정리는 빨랐지만, 아이의 애도는 느렸습니다. 텅 빈 집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우연히 남겨진 엄마 옷 한 벌을 붙들고 있는 것뿐이었습니다. 옷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면, 잠시나마 엄마가 곁에 있는 것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냄새마저 희미해졌습니다. 소설 속에서 동철이가 냄새가 날아갈까 봐 옷을 빨지 못하게 하고, 냄새를 몸에 옮기려 옷을 꾹꾹 눌러 입는 장면은 실제 저의 몸부림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냄새가 아니라, 엄마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는 것에 대한 공포였고, 잊지 않으려는 처절한 노력이었습니다.


6. 형, 그리고 또 하나의 어린 어른


그때 제 형은 대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형은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새벽같이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형의 뒷모습을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형도 아직 어른이 아닌데….’

프롤로그 속 형은 완벽한 보호자가 아닙니다. 요리도 서툴고, 동생의 마음을 세심하게 챙기기엔 본인의 삶도 너무 버겁죠. 하지만 그 서툶 속에 형만의 애도와 책임감이 담겨 있습니다. 형이 엄마 옷을 빨아버리는 장면 역시, 저에게는 상처였지만 형에게는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아픈 결심이었을 겁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같은 슬픔을 겪으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어 나가는 형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7.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프롤로그는 이렇게 엄마의 죽음과 장례, 그리고 남겨진 것들이 사라져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토록 세밀하게 상실을 묘사한 이유는 단순히 슬픔을 전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시간은 잔인하게 흐르고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그럼에도 남겨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얼굴은 흐릿해져도, 그때 엄마가 끓여준 삼계탕의 온기와 옷에서 나던 냄새를 기억하는 힘으로 아이는 다시 일어설 테니까요.

이 프롤로그는 제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문을 다시 여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동철이’라는 친구와, 그리고 이 책을 읽어줄 독자 여러분과 함께 그 문을 열고 들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그 시간을 견뎌낸다면, 분명 슬픔 끝에는 단단한 성장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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