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친구들’ 작가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
9장 동철아, 나 좀 쉬게 해줄래?_텔레비전
오늘 여러분과 나눌 이야기는 『수상한 친구들』 9장 <동철아, 나 좀 쉬게 해줄래?_텔레비전 편>에 담긴 저의 진짜 기억입니다.
이번 챕터의 화자는 ‘텔레비전’입니다.
소설 속에서 텔레비전은 동철이 때문에 하루 종일 쉴 수가 없다며 투덜거립니다. 왜 동철이는, 아니 어린 시절의 저는 텔레비전을 그토록 혹사(?)시켰던 걸까요?
그건 바보 같게도, 네모난 상자 속에서 흘러나오는 그 소리만이 제가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유일한 위로였기 때문입니다.
1. 침묵이 두려워 켜둔 백색소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형마저 밤늦게까지 일하러 나가고 나면 집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남았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훅 끼쳐오는 그 차가운 공기와 적막함이 저는 견딜 수 없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가장 먼저 텔레비전부터 켰습니다.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람의 목소리가 필요했을 뿐이죠. 화면 속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집 안을 채우면, 그제야 텅 빈 공간에 저 혼자 버려진 게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텔레비전은 밤이 깊어 ‘지이익-’ 하는 화면 조정음과 함께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까지 꺼지지 않았습니다. 전원을 끄고 잠들었다가도 무서움에 깨어 다시 켜는 바람에,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텔레비전이 켜져 있는 날이 수두룩했습니다.
2. 텔레비전과 대화하던 아이
어떤 날은 텔레비전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물론 맥락이 맞는 진짜 대화는 아니었죠. 화면 속 코미디언이나 드라마 주인공이 던지는 대사에 저 혼자 대답하고 반응하는 일방적인 대화였습니다.
“오늘 밥은 먹었어?” 하고 텔레비전 속 누군가가 말하면,
“아니, 아직 안 먹었어.”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식이었죠.
지금 어른의 시선으로 누군가 그 모습을 봤다면 ‘미친 게 아닐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린 저에게는 그렇게라도 혼잣말을 내뱉어야만 이 텅 빈 집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목소리를 잃어버리면, 정말 제 존재마저 희미하게 사라져버릴 것 같았거든요.
3. 학교에서 유난히 수다스러웠던 이유
집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했던 만큼, 저는 학교에 가면 유난히 말을 많이 했습니다.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장난을 치고,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죠.
친구들은 저를 마냥 밝고 말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수다스러움 이면에는, 방과 후 텔레비전과 단둘이 남겨져야 하는 아이의 지독한 외로움이 숨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라도 실컷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진짜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저만의 간절한 생존 방식이었던 셈입니다.
『수상한 친구들』 9장에서 텔레비전은 쉴 틈을 주지 않는 동철이를 원망하지만, 사실 그 원망 속에는 저를 혼자 두지 않고 끝까지 곁을 지켜준 고마움이 담겨 있습니다.
침묵이 너무 커서 텔레비전 소리에 기대어 잠들어야 했던 그 시절.
어쩌면 텔레비전은 제게 세상을 향해 열려 있던 유일한 창문이자, 제 혼잣말을 묵묵히 들어준 가장 다정한 친구였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에게도 외로움과 적막을 채워주던 여러분만의 다정한 소리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