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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무슨별 Aug 07. 2023

남미 여행 시작의 이유, 대망의 모레노 빙하 투어!


맨 처음 남미 여행을 가기로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바로 빙하 투어였다. 한 달의 긴 여행 시간이 주어졌고 퇴사가 아닌 재직 중의 기회였기에 이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좋은 기회가 생겼는데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그렇게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정말 정해야겠다 생각했을 때 온라인 세상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곳이 바로 남미의 빙하였다.


‘남극, 북극이 아닌 남미에서도 빙하를 볼 수 있구나!’라는 게 새롭게 다가왔고 심지어 그곳에 올라 빙하 얼음을 넣은 위스키를 마실 수 있다는 것에 나는 매료되었다. 그 이후로 빙하 외 다른 남미 내 여행지를 여럿 검색했고, 그동안 본 적 없던 이런 대자연이 바로 내가 애타게 찾던 여행지라는 강한 이끌림이 있었다. 그 이후로 남미 이외의 다른 여행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직접 빙하를 두 발로 밟아 올라가고, 온전히 그 기운을 느끼는 상상을 하며 차근차근 여행을 준비했던 것 같다.


남미에 도착한 지 4일 차 되던 날 고대하던 빙하 투어를 떠났다. 투어 전날부터 투어 당일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내내 과연 어떤 곳일지 상상하고 설렜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새벽 6시부터 피곤함을 무릅쓰고 일어나 느긋하게 나갈 준비를 했다. 평소라면 일어나지 않을 시간에,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인 이른 아침밥 먹기까지. 이곳에 와 있는 나의 모습은 평소와 사뭇 달랐고 그 루틴이 어색했지만 싫지 않았다. 마치 어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치르는 경건한 의식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7시 반에 온다던 픽업 버스는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혹시나 나를 데려가는 걸 깜빡한 건 아니겠지 하는 불안함도 잠깐 있었지만 어찌 됐건 결과적으로 잘 탑승했고, 약 20분 정도를 이동해서 다시금 큰 버스로 올라탔다. 세계 각지에서 빙하를 보러 온 사람들이 가득한 대형 버스였다. 나 말고도 역시 빙하가 궁금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내적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버스로 한 시간을 달려 9시가 조금 안 된 시각, 빙하 입장권 구매하는 곳에 도착했고 나는 빙하 투어와 픽업 버스만 결제했었기에 현장에서 현금으로 입장권을 구매했다. 원래는 카드 결제를 하려 했으나, 가져간 2개의 해외 결제 가능 카드가 모두 먹통이어서 어쩔 수 없이 현금을 썼다. 금액은 5,500 아르헨티나 페소였고 순간 ‘내가 만약 현금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지구 반바퀴를 돌아 여기까지 와서 빙하 투어를 못하게 될 수도 있었을까?’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여행 중이라면 언제든 항상 비상 상황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순간이었다.


입장권 구매처로부터 또 한 시간 남짓을 달려서 오전 10시쯤 빙하로 들어가는 배를 탈 선착장에 도착했다. 저 멀리서 얇은 띠처럼 가로로 긴 빙하가 보였고, 처음엔 저게 빙하가 맞나 긴가민가 했다. 배에 올라 가장 먼저 빙하를 볼 수 있는 맨 앞 창가 자리에 앉았다. 힘차게 이동하는 배 덕분에 빙하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점점 더 가까워졌고, 진짜 내가 지금 이 두 눈으로 보는 빙하가 맞나 하는 의심을 끊임없이 하면서 그저 앞에 펼쳐진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토록 기대했던 빙하가 정말로 눈앞에 있었다.


  

사진과 영상을 열심히 찍으면서도 두 눈으로도 담아보려고 계속 감상했다. 그러고 있으니 어느덧 배에서 내릴 시간이 되었고, 오두막 같은 곳에 짐을 잠시 내려두고 하루 동안 투어를 담당해 주실 분께 빙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페리토 모레노 빙하(Perito Moreno Glacier)는 아르헨티나 남서부 산타크루즈 주의 로스 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에 위치한 빙하로,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관광 명소 중 하나다. 바다로부터 온 엄청난 양의 습기가 높은 산맥을 거쳐 넘어오면서 점점 차가워지고 이는 곧 엄청난 양의 구름을 만든다고 한다. 그 구름은 칠레 쪽에 있다가 넘어오면서 비가 되어 내리는데, 그 양은 자그마치 연 10,000ml 나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습기가 곧 빙하가 되었으며, 이는 곧 이 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습도가 높은 곳 중 하나라는 걸 의미한다고도 한다.


이렇게 빙하의 역사를 간단히 알아보고 약 1시간 정도를 걸어서 빙하가 있는 곳 가까이 도착했다.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 올수록, 꿈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빙하에 오르기 위해 발에는 아주 무지막지해 보이는 비주얼과 무게의 아이젠을 착용했고, 빙하 위에서 잘 걷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내려갈 때는 상제를 조금 뒤로 젖히고 무릎을 굽혀 무게중심을 낮게 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단다. 올라갈 때는 반대로 상체를 앞으로 살짝 숙이고 무게 중심을 앞쪽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올라갈 때나 내려갈 때 모두 공통적인 부분은 보폭을 작게 하여 마치 펭귄처럼 종종걸음으로 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리가 쭉 미끄러질지도 모르겠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빙하에 올랐다. 가까이서 본 빙하는 상상했던 것과 달리 작은 돌멩이 크기의 얼음이 모여 만든 거대한 얼음 집합체였다. 하얀 눈 같은 재질이 커다랗게 산처럼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투명한 얼음이 켜켜이 쌓인 거대한 얼음덩이였다. 사람들이 많이 오르고 내려서인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오갔던 길은 약간 회색의 점 같은 얼룩들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환경오염 때문인지 어떤 사유인 지 알 수는 없었으나, 상상했던 투명하고 맑은 느낌의 첫인상은 아니었다.


온통 얼음 덩어리라 걷다가 미끄러지진 않을까, 걷는 것 자체가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거대한 아이젠은 생각보다 강력했고 쉽게 미끄러지진 않았다. 날은 해가 아주 쨍쨍했는데 빙하 위는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아이젠이 굉장히 무거워서 걷는 것 자체가 꽤나 강도 있는 운동처럼 느껴졌다. 걸을수록 그 무게에 익숙해졌고 빙하 위에서 반짝이는 얼음 조각들을 마음껏 감상했다. 이렇게 해가 밝고 뜨거운데 녹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빙하라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빙하 사이사이 좁고 긴 틈새로 작은 폭포처럼 물이 주르륵 혹은 거센 폭포처럼 제각기 흘렀고, 일부 고여있는 물이나 틈새의 빛깔은 형용하기 어려운 투명하고 맑은 파랑 그 자체였다. 하늘과 바다가 파란 것과 같은 원리일 텐데, 빙하의 푸른 색깔엔 그 둘과는 차원이 다른 청명함이 있었다. 이 색을 따다가 구슬을 만들면 그 누구든 갖고 싶어 하는 다이아몬드에 버금가는 귀한 물건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걸음걸음마다 보이는 빙하의 모양과 색깔, 그리고 해와 가장 가까운 살짝은 녹은듯한 표면 위의 얼음 결정들이 만들어내는 반짝임을 보았다. 선글라스를 쓰지 않으면 안구가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고 하던데 진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어사 직원분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빙하의 꽤 위쪽까지 올라갔다. 전체 빙하로 치자면 정말 초입에 불과하겠지만, 거기 까지 올라가고 보니 우리가 배에 처음 탑승했던 지점은 보이지 않을 만큼 까마득했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의 여행 중 가장 핵심 목적이었던 빙하 투어를 진짜 내가 왔구나. 지구를 관통하는 지점, 정말로 반바퀴를 꼬박 돌아서 먼 길을 돌아왔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빙하가 다 녹아 사라지기 전에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왜 빙하가 녹을 수밖에 없는 걸까에 대한 이유를 생각했고, 내가 여기 와있는 것 또한 이 빙하의 존재 기간을 단축시키는 일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빙하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빙하 얼음을 넣어서 먹는 위스키다. 위스키 자체를 그렇게 막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때에 따라서는 기분 좋게 마시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런 날들 중 가장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사방에 널린 빙하 중 어느 한 부분을 부숴서 양푼 같이 생긴 스탠리스 통에 담고, 그 빙하 얼음들을 또 한 번 위스키 잔에 옮겨 담았다. 그리고는 위스키 한 병을 속절없이 술술 아래로 쏟아내며 잔의 지름만큼씩만 조금씩 이동해 주니, 열몇 잔의 위스키 온더락이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빙하 물을 단독으로 마셨을 땐 떫은맛이 있었어서 별로였는데, 위스키에 담긴 얼음은 중화되어서인지 몰라도 온더락 자체는 달달한 위스키 맛 그 자체였다. 칵테일이나 위스키 하이볼 정도는 종종 즐겨마셨던 때라 거부감 없이 몇 모금 마셨고, 술을 마시면 다른 것보다 몸이 쉽게 피로해지는 기분이 별로여서 그 정도만 살짝 마시고 남겼다. 빙하 위스키까지 마시고 나니 진짜로 내가 이 여행에서 1순위로 목표했던 것을 달성했다는 것에 좋기도 했고 생각보다 별 거 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이후부터는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져서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발도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고, 이 상태로 다시 오두막까지 가려면 한 시간을 걸어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가나 생각도 했다. 빙하 위에서 그렇게 2시간 넘는 시간을 보냈고 앞 뒤로도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줄곧 빙하를 봤더니 이제는 정말 원 없이 봤다 싶었다. 버킷리스트 하나 달성했다는 생각이었다.


빙하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사실 보온병에 담아 간 뜨거운 물을 부어서 먹는 컵라면이라는 엄청난 꿀팁을 전수받았었다. 그런데 이 귀한 정보를 남미에 이미 왔을 때 알아버려서 여행 내내 보온병을 찾아 헤맸는데, 생각보다 구하기 쉽지 않았다. 다행히 엘칼라파테 시내의 어느 등산 용품점에서 저렴한 제품 하나 구입하여, 그 무거운 물통을 새벽부터 오후까지 보물처럼 여기며 챙겨 왔었다. 드디어 대망의 점심시간이 왔다. 컵라면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치면.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그런데 그 고귀한 순간을 앞두고 보온병을 꺼내다가 실수로 그만 테이블 위에 탕 하고 놓게 되었다. 물이 가득 들어있어 꽤나 무거웠는데 한 손으로 가방에서 꺼내다 보니 일어난 일이었다. 뭐 별일 있겠어하고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그 순간 보온병에서 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도무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랐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보온병 안의 스탠리스인 줄 알았던 부분이 사실은 은색의 플라스틱이었고, 그게 모조리 깨져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속으로는 정말 이런 참사가 왜 나에게 일어났나 원망스러웠지만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오두막을 물바다로 만들 수는 없으니) 화장실 세면대로 향했다. 하염없이 흐르는 물줄기가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사고를 뒤로 하고 보온병의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물 일부를 컵라면에 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투어사에서 제공한 뜨거운 찻물을 부을걸 왜 그 깨져버린 통 속의 물을 넣었던 걸까. 그렇게 남미 여행 제1의 목표 중 작은 번외 편 계획 하나가 아쉽게 되었으나, 그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애써 그 순간을 외면해보려 했었다.


그렇게 공식적인 투어 일정 중 하이라이트였던 일과가 끝나고 이어서 앞서 본 빙하의 반대편 방향에서도 멀리서 바라보는 시간이 있었다. 새벽 이른 시간부터 하루를 시작해서 저녁 먹을 시간 즈음 돌아왔고 돌아왔을 땐 그제야 그때 착용한 아이젠이 정말 무거웠던 거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다. 몸이 아주 말 그대로 천근만근이었다.


빙하를 가까이서도 멀리서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자연 앞에서 인간은 정말 한 없이 작고 연약한 존재이면서도 반대로 그 거대한 자연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이중적인 존재라는 것이었다. 자연이 지금처럼 있어 줄 때 그 소중함을 알아차리고 느껴야 할 것이며, 어떻게 하면 훼손 없이 후대에도 이어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나 하나 바꿔서 뭐가 달라지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상 속 작은 것들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아름다운 자연에 힐링받고 감히 통제할 수 없는 자연에 힘 없이 고꾸라지는 인간이다.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 고대하던 빙하 위를 밟은 그날의 기록 (영상) � https://youtu.be/9lmCElHmZ2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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