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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무슨별 Aug 11. 2023

아르헨티나 > 칠레, 버스로 육로 이동 후기!

엘칼라파테에서 푸에르토나탈레스 버스 이동! 그리고 푸에르토 첫날 기록


아르헨티나에서 짧고 굵었던 5일을 마치고, 새로운 국가 칠레로 이동하는 날이 되었다. 사실 말은 5일이지만 거의 10일을 압축한 것처럼 빈틈없는 시간을 보냈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할 것들이 많은 아르헨티나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남은 날들도 여전히 달려야 하기에 앞으로의 일정들을 기대하며 이동하는 발걸음에 집중하기로 했다.


23년 1월 28일 토요일, 이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조식을 먹고 여유롭게 준비했다. 남미에서는 터미널에서나 투어 등 그쪽에서 시간 약속을 안 지키는 상황도 종종 발생하긴 하지만, 내가 늦는 경우에는 그 어떠한 것도 장담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일정은 미리 준비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아침 8:30에 출발해서 오후에 칠레의 최남단 도시인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숙소의 다른 분들과 택시를 타고 여유롭게 터미널에 도착했고 미리 예약한 티켓을 창구에서 확인했다. (숙소를 통해 버스를 예약하고 그 파일을 보여줘서 실물권 티켓을 받음) 이어서 큐알코드로 입국수속과 같은 서류 몇 개를 작성했고 얼마 남지 않은 아르헨티나 페소를 털기 위해 매점에서 물과 휴대용 티슈 등을 샀다. 가격은 일반 마트의 2배 이상이었지만 남기는 것보다 나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만 놀라운 것은 역시 화장실이었다. 칸이 3개 정도 있었는데, 세 칸 모두 문을 잠글 수가 없었다. 그리고 좌변기에 뚜껑이나 커버가 없어서 기마 자세로 볼일을 봐야 했다.


온갖 짐을 다 짊어진 채로 잠기지 않는 문을 손으로 부여잡고 기마 자세라… 정말 쉽지 않았지만 장장 5시간의 버스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비우고 출발해야 해서 선택권이 없었다. 숙소에서 분명 화장실을 다녀왔는데도 꼭 터미널에서 한번 더 가게 되는 이유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어찌 됐든 거사를 잘 치르고 먼 육로 이동 길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자연스러울 수 있는 부분인데 우리나라는 타 국가와의 육로 이동이 어렵다는 게 새삼 아쉽게 느껴졌다. (분단으로 막혀 있지 않았더라면 중국과 러시아가 제주도처럼 손쉽게 닿는 여행지가 됐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어제도 5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해서 매우 피곤한 상태였는데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가로로 길게 늘어진 자연은 역시나 아름다웠고, 맑고 청명한 빛깔의 물색과 곳곳에 지나가는 동물 친구들 구경을 하면서 지루할 수 있는 시간을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냈던 것 같다. 이렇게 대자연 그대로를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내내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여전히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다.(버스에서 창 밖을 바라보는 걸 참 좋아한다)



이동하면서 중간에 여권 검사 한 번, 짐 검사 한 번 이렇게 총 두 번의 검문이 있었고 간식으로 사과 주스와 수박맛 웨하스를 줬다. 사과 주스는 정말 리얼 사과즙 그 자체의 맛이어서 너무나 만족스러웠고, 수박 웨하스는 첫인상은 긴가민가 했는데 먹다 보니 익숙해지는 맛이었다. 수박향과 맛이 나는 웨하스라니 신선한 경험이었다.(오이맛 싫어하는 분들은 싫어할지도)


약 1시 40분쯤 되어서 푸에르토 나탈레스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해가 쨍쨍한 낮이기도 했고 미리 예약해 둔 숙소는 도보 10~15분 거리여서 천천히 걸어갔다. 걷는 동안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죽은(?) 동네 같다는 게 나의 첫인상이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고요한 동네인데 남쪽의 항구 도시답게 바람은 또 아주 거세게 불었다. 그렇게 걷다가 숙소의 간판이 눈에 띄지 않아서 입구를 찾느라 조금 헤맸지만 결국엔 찾아냈다.(구글맵 최고)


주인아주머니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셨지만 츤데레 스타일이셨고, 방은 침대가 두 개나 있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화장실은 공용이었지만 잘 마주치지 않아서 사용에 큰 불편함은 없었고, 2층에 위치한 부엌과 공용 라운지 그리고 탁 트인 테라스 전망이 인상적이었다. 테라스에서 보이는 동네의 모습은 그림 같이 작지만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날씨도 너무 좋아서 멀리까지 탁 트인 전망이 보이니 얼른 나가고 싶어졌다.


짐을 간단히 풀고, 이곳에 방문한 목적인 토레스 델 파이네 투어를 예약하러 시내로 나갔다. 주인아주머니께 투어 예약할 수 있는 곳을 물었는데, 스페인어 설명이었지만 종이 지도와 접목시키니 다행히 느낌적인 느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나 10~15분 정도를 걸으니 동네의 번화한 길목이 나왔고 나는 제일 먼저 보이는 투어사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투어를 예약했다. 국립공원 투어 말고 직접 산에 오르는 투어도 있는데, 아직 몸 컨디션이 100% 는 아니어서 공원 투어만 신청했다. 아쉽게도 국립공원 입장료는 별도였는데, 운 좋게 남미 여행 카톡방에서 정가보다 조금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다.(남미 여행자에게 남미 여행 카페 가입과 카톡방 참여를 매우 권장한다)


이어서 약국에 들러 멀미약과 코감기약을 샀다. 가격이 무려 3만 원이 넘어서 처음엔 뭔가 고장 나서 잘못 찍힌 줄 알았는데 그 금액이 맞다고 했다. 칠레가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하던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었다. 하필 온갖 약품은 다 있는데 그 둘만 없었고, 그 두 가지 약은 지금 바로 너무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이 한국의 거의 10배 가격을 주고 샀다. 다른 건 몰라도 약품은 미리 한국에서 충분히 다 준비해 와서, 적어도 칠레에서는 구매하지 않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길가에 사람이 많던 아이스크림 가게가 딱 봐도 맛집인 것 같아서 젤라또 하나 사 먹었다. Helados Hechos En Casa라는 곳이었는데, 칼라파테 열매로 만든 아이스크림이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맛일 것 같아서 그 메뉴로 1가지 맛 주문했다. 언뜻 보기엔 포도 혹은 블루베리 아이스크림 같았는데 맛은 전혀 달랐다. 쌉싸름한 맛에 씨앗이 씹히고 마지막에 잠깐 단맛이 느껴졌다. 먹으면서 점점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개인적으로 단맛보다는 신맛을 선호하고 쌉싸름한 맛에 큰 거부감이 없어서 괜찮았는데, 일반 사람들 입맛에는 별로일 수 있겠다 싶었다.


할 일도 마치고 디저트도 먹었겠다, 동네 구경을 더 해보기로 마음먹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멀리 어느 공원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고, 나는 홀린 듯이 그곳으로 향했다. 야외에서 동네 주민들이 함께하는 줌바 세션이었고 한참을 구경하다가 나도 그 무리에 합류했다. 정말 오랜만의 줌바였는데, 신나는 음악에 간단한 동작으로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그 시간을 느끼면서, 아 이래서 내가 줌바를 좋아했었지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현지인들은 저 동양 여자애는 뭐지 하고 궁금해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런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가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즐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마지막에는 다 같이 줌바를 외치며 즐겁게 운동을 마쳤다.


그렇게 몸을 잘 풀고 다음 코스로는 바다 구경이었다. 칠레 최남단 항구 도시의 매력을 즐기고자 물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는 스케이트 보드와 자전거로 여러 가지 묘기를 연습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또 한 번 즉석으로 공연 관람하듯 그들을 구경했다. 내가 집중해서 보고 있는 것을 느꼈는지, 나를 의식해서 더 열심히 연습하고 내 쪽으로 묘기를 더 크게 보여주기도 했다. 저러다 넘어지면 크게 다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더 멋진 묘기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공존했다.



강인지 바다인지 처음엔 헷갈렸는데 지도를 켜서 보니 명백한 바다였다. 직접 발을 담글 수는 없는 그런 바다였는데, 중간에 멀리까지 물 한가운데를 가볼 수 있는 관광객용 다리 같은 것이 있어 끝까지 다녀왔다. 물빛이 유난히도 반짝이고 예뻤으며, 바람이 많이 불고 공기는 조금 찼지만 보고 있어도 계속 보고 싶은 그런 풍경이었다. 철썩철썩 물이 방파제에 부딪히는 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고 분위기에 평온함을 더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일부러 아까와는 겹치지 않게 해서 못 봤던 거리를 감상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건가 싶을 정도로 고요한 동네였는데 길가에는 대형 견들이 많았다. 덩치는 큰데 짖거나 사람을 물지는 않는 것 같았다. 관심을 주면 다가오는 개들 반, 관심을 줘도 나 몰라라 하는 개들 반이었다. 다양한 매력의 대형견들을 실컷 만나면서 마지막 일정인 마트 장보기를 했다. 꼭 필요했던 물, 샴푸(가져온 휴대용이 다 떨어졌고, 숙소마다 구비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새로 하나 샀다)와 내일 투어 때 필요할 빵, 과자 등의 간식을 샀다.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숙소 주인아주머니의 추천 식당으로 향했다. 이름은 Jose Antonio de la Patagonia. 먼 거리 이동에 대한 셀프 보상으로 맛있는 음식을 잔뜩 시켰다. 바질 연어구이 리조또와 세비체 그리고 피스코 사워와 화이트 와인 한잔, 혼자였지만 거의 두 명이서 먹어야 할 양을 시켰다. 제일 먼저 식전 빵과 화이트 와인이 나왔다. 식전빵에 곁들이는 소스로 아주 매운 소스가 나와서 놀랐다.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로 매운 소스라 조금만 맛보고 놓아주었다. 와인으로도 매운맛에 놀란 마음을 추슬렀다.


이어서 세비체가 나왔는데, 연어살만 들어있는 세비체였다. 칠레가 해산물이 저렴하고 질 좋은 것으로 유명해서 꼭 세비체를 먹어보고 싶었는데 남미에서의 첫 세비체였다. 비주얼은 하얀 물에 담긴 해산물이었는데 약간은 보랏빛이 있어서 호감형은 아니었다. 맛은 시큼한 물에 담긴 연어 그리고 야채 맛이었다. 고수도 잘게 부서져 들어있었는데 고수에 거부감이 없고 신선한 맛, 신 맛을 좋아해서 꽤나 입맛에 잘 맞았다. 맛도 건강하고 실제 영양적으로도 좋을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피스코사워는 사실 뭔지 잘 몰랐는데 유명하다고 해서 시킨 메뉴였다. 음료수인지 칵테일인지도 모르고 시켰는데 알고 보니 꽤나 도수가 있는 칵테일이었다. 칠레와 페루가 각자 본인이 원조라고 주장하는 피스코라는 주류를 원재료로 하여 만든 칵테일인데, 상큼 달달한 맛이어서 이 또한 아주 취향저격이었다. 칵테일 잘 모르거나 선호하지 않더라도 음료수처럼 즐기기 좋은 맛이었다.(다만 상큼한 맛에 가려진 도수를 주의해야 한다. 도수는 절대 음료수가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연어 구이를 올린 바질 리조또가 나왔는데 거의 양이 3인분에 가까울 만큼 정말 많았다. 처음엔 엄청난 양과 비주얼에 살짝 놀랐는데 기본에 충실한 맛이 좋았고, 솔솔 뿌려져 있는 고수도 풍미를 더했다. (뿌려진 양에 비해서 그렇게까지 고수향이나 맛이 강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많은 줄 알았던 음식들이 천천히 먹으니 뱃속에 차곡차곡 다 들어가서 또 한 번 놀랐다. 진작에 먹방 크리에이터를 했어야 했나 하는 상상이 잠시 스쳤다.


그렇게 배불리 먹고 들어와서 집에 오니 어느덧 저녁 10시 30분이었다. 시간이 어찌도 빠르게 흐른 것인지, 내일의 이른 아침 투어 시작을 위해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씻고 부지런히 잠을 청한 푸에르토나탈레스의 첫날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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