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칼라파테에서 엘찬텐 당일치기 실제 다녀온 상세 후기
엘칼라파테에서의 3일차 일정은 세계 3대 미봉으로 유명한 엘찬텐의 피츠로이 등반이었다.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실물로 보면 훨씬 더 아름답다고 한다. 처음 이 일정을 계획하던 때에는 엘칼라파테에서 엘찬텐 당일치기를 할 것인가, 엘찬텐에서 하루를 묵을 것인가 이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 당일 로 왕복 성공했다는 글이 남미 여행 카페에 종종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엘찬텐에 묵고 아침 일찍 혹은 전날 새벽에 등반한다고 했다. 거기서 삼대가 덕을 쌓으면 해뜨는 것과 함께 일출의 붉은 빛이 산맥에 맺히는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했다(일명 불타는 고구마).
마음은 엘찬텐에 묵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일정과 동선에는 당일치기로 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어서 당일 일정으로 계획하게 되었다. 하루에 몰아서 에너지 쓰고 그 앞뒤로는 쉬어주면 되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컨디션과 교통 운, 날씨운까지 따라주지 못하여 산 중턱까지만 갔다는 조금은 슬픈 경험담을 전할 예정이다. 우선 출발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여느 때처럼 새벽 6시부터 일찍 일어나 든든하게 조식을 먹고, 점심에 먹을 컵라면, 주전부리 그리고 보온병을 든든하게 챙겼다. 엘칼라파테에서 엘찬텐으로 이동하는 버스도 미리 예약해두어서 그대로 타기만 하면 됐다. (호스텔에 도착한 당일 바로 왕복 버스를 문의해서 예약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을 안고 8시가 조금 안 된 시각 버스를 탔다. 그런데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심각한 멀미가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멀미를 하지 않았어서 꽤나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멀미를 안하는 사람이라고 인지하고 산 기간이 더 오래였던지라, 멀미약을 챙겨오지 않아서 버스에 타있는 내내 너무 울렁거려서 똑바로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토하거나 화장실을 가고 싶거나 그런 상태가 아니고 형용할 수 없는 울렁임과 기절하기 직전의 힘든 기운이었다. 챙겨온 물을 조금씩 마시며 조금이라도 울렁이는 기운을 내려보려고 했고, 앉아 있으면 더 심한 것 같아서 빈 옆자리에 쪼그리고 누웠었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 어떠한 방법도 없이 버스는 그저 목적지를 향해 달렸고, 2시간이면 도착한다는 거리는 거의 3시간 반이 넘은 시각이 되어서야 도착했다.(오전 11:20분경 터미널 도착) 고통의 시간이 예정보다 길었지만 어찌저찌 그 울렁임을 애써 누르면서 왔고, 다행히도 버스에서 내리니 한결 나아졌었다. 조금 쉬면서 생각을 해보니 이미 1시간 20분이라는 시간이 사라졌기 때문에, 정상까지 올라가려면 정말 쉼 없이 열심히 달려가야먄 겨우 돌아오는 버스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말까였다. 게다가 버스 터미널 내에 있는 피츠로이 등반 안내데스크에 문의해보니, 오늘은 날이 좋지 않아서 정상에 가더라도 봉우리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빗방울도 때때로 떨어지는 그런 날이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이!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시작부터 뭔가 오늘은 날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갈 수는 없어서, 산 중턱에 유명한 호수까지만 올라가보기로 결심했다. 그 호수도 아름답고 운이 좋으면 봉우리가 보이며, 거기까지는 충분히 올라갈 수 있을거라는 안내 직원의 말에 힘을 얻었다. 그렇게 나홀로 등산길에 올랐고 생각보다 등산 진입로 초입까지도 거리가 있어서 이제 진짜 올라볼까 싶었을 때 시간을 보니 12시 7분이었다.
시간을 보니 정상까지 못간다는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도 한결 더 내려 앉았다. 정상까지는 왕복 8시간, 앞서 언급한 ‘카프리'호수가지는 왕복 4시간이었다. 돌아오는 버스가 19:30 출발이니 정상까지는 아무래도 무리였기에 판단이 빨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천천히 올라가서 아주 느긋하게 즐기다가 또다시 천천히 내려와서 동네 마실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올라가는 산길은 우리가 익히 봤던 산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독특한 잡초와 돌들, 나무들, 아래로 자유롭게 굽이굽이 흐르는 강과 거기서조차도 에메랄드빛인 물 색깔까지. 걸음걸음마다 감상하고 또 기록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낯설지만 웅장하고 이국적인 산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걸으니, 멀미가 언제 있었냐는 듯 말끔히 잊혀졌다.
처음에 분명 최대한 느긋하게 즐겨보자고 마음먹은 것과 달리, 카프리 호수까지 쉼 없이 부지런히 걷다보니 어느새 도착했고 생각보다 빠르게 와서 처음 시작으로부터 1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1시 10분쯤 카프리 호수 도착) 이 기세라면 정상도 한번 찍고 와봐?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어찌됐건 지금 컨디션이 완전하지 않기도하고 날도 여전히 바람과 비가 왔다갔다 하다보니 올라가도 못 볼 것 같은 확률이 높았을듯하여 또 한번 아쉬운 마음을 눌렀다.
카프리호수도 듣던대로 좋았다. 맑은 물과 탁 트인 풍경, 그리고 그 사이로 멀찌감치 보이는 봉우리 셋 일명 피츠로이. 내가 저 봉우리를 보려고 또 지구 반바퀴를 돌아 온 것이거늘.. 역시나 아쉬운 마음을 완전히 잊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등산도 식후경. 산행의 하이라이트로 챙겨온 컵라면과 보온병의 뜨거운 물을 꺼내볼 차례였다(현지에 한국인 대상 투어사 직원분께 보온병을 잠시 빌릴 수 있었다). 스프를 뜯어 컵에 붓고 이어서 멀리서부터 애지중지 가져온 뜨거운 물을 부으니 순식간에 그 강렬한 냄새로 그 공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컵라면이 익는 동안 올라오면서 주워온 나뭇가지들을 비교해보며 제일 튼튼하면서도 크기와 길이가 적당한 것을 골랐다. 그렇다, 나는 다 잘 챙겨놓고 이 성대한 의식을 치를 도구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자연을 벗삼아 나뭇가지로 젓가락을 대신했다. 가져온 물을 보온병 컵에 담아 최대한 꼼꼼히 세척했다. 이제 준비는 모두 끝났다. 빙하 투어에서 1차로 실패했던 남미에서의 제대로 된 컵라면 만찬이 시작되었다.
너무나 흡족한 식사였는데 꽤나 출출했었는지 순식간에 한 컵을 비웠다. 그리고는 후식으로 챙겨온 사과를 크게 입으로 베어 먹고, 다 먹고 난 뒤 하이라이트로 믹스 커피까지 마셔줬다. 그 순간에는 여기가 남미인지 한국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게 행복한 식사를 마치고, 이번에는 봉우리 멍을 때리면서 더 못 봐도 아쉽지 않을 만큼 피츠로이를 감상했다. 완전히 맑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다행히도 구름사이로 왔다갔다 하면서 피츠로이가 간간히 얼굴을 드러내준 덕분에, 멀리서도 피츠로이의 정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혼자서도 너무나도 잘 먹고 쉬고 즐겼고, 때가 되어 2시쯤 하산을 시작했다. 마치 고지를 목전에 두고도 닿지 못하는 상황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지금 이 순간 무리를 한다면 앞으로의 남은 일정들까지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나를 다시 한번 달랬다. 저녁 7시 30분까지면 사실 시간이 많이 여유로운터라, 버스 시간을 앞당기거나 버스를 기다리면 할만한 무언가를 고민해봐야겠다. 인근 맛집을 가서 온갖 맛있는 음식을 시켜서 먹거나, 커피로 잠시 피로를 날린 후 낮부터 여는 펍에 가서 한 잔 거하게 마셔볼까 싶었다. 이 순간을 기록하기 위한 영상 편집이나 글/그림 기록을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어떻게 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 이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 지 고민하던 차에 수상스런 기운이 감도는 곳을 발견했다. 내가 왔던 직진의 길에서 옆으로 가는 갈래 길로, 올라올 땐 못봤던 곳이었는데..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들어가도 안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동시에, 호기심을 해소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이윽고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 길은 저를 어디로 인도했고 그곳에서 저는 무엇을 봤을까요..? 다음 글에서 이어 쓰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