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산티아고 1편) 힐링데이로 계획했으나 쉴틈 없이 꽉 채워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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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에 방문한 목적이었던 와이너리 투어를 끝냈고, 파타고니아 쇼핑에 헬스장 투어에 어쩌다보니 이미 많은 것들은 이틀 동안 다 해버려서 무얼할까 고민이 되었던 마지막 날이었다. 처음엔 다음날 아주 이른 새벽 (무려 3시…)에 볼리비아 라파스로 떠나는 비행편이 예정되어 있어서, 무리하지 않고 예쁜 카페에서 노닥거리면 딱 좋겠다 생각했었다. 시내에서 못 가본 박물관/미술관이나 시장, 광장 등 관광객 필수코스인 곳들도 선별해서 몇 곳은 가볼까 싶었다.
남미 여행 이래 처음으로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었고(챙겨온 진라면 소컵 진짜 맛있었다…), 카운터에 혹시 일일 투어가 있는지 물어봤는데 역시나 예상대로 시내 관광 프로그램이 있었다.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예정되어 있는 무료 걷기 투어였고, 마지막에 마음이 가는대로 팁을 내면 되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루트나 구성은 조금 달랐지만 둘다 시내 곳곳을 둘러보는 테마는 동일했는데 오후 3시에 시작하는 프로그램이 시간이나 구성이나 아주 딱이어서 그 일정대로 다녀보기로 결정했다. 따로 예약을 할 필요는 없었고 약속된 장소였던 ‘Museo Nacional de Bellas Artes(국립미술관/박물관)’ 앞에서 모여서 출발하는 루트였다.
워킹투어 앞뒤로 시간이 남아서 앞쪽으로는 관광객 필수코스이나 소매치기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Mercado Central de Santiago(중앙시장)’ 방문 및 점심 먹기를 계획했고, 뒷쪽으로는 ‘Sky Costanera(코스타네라센터 전망대)’ 를 둘러볼 계획이었다. 중간에 틈이 나면 카페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고, 다음날 3시 비행기라 적어도 1시에는 출발해야하다보니 이른 저녁을 먹고 늦어도 저녁 6~7시 쯤에는 자야겠다고 계획했다.
우선 중앙시장은 숙소로부터 걸어서 20~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여서 느긋하게 걸어갔다. 한여름이라 역시나 뜨거운 날이었지만, 그늘로만 다니면 꽤나 걸을만했다. 곳곳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여유 있는 도심 풍경이었는데, 이런 곳들이 밤만 되면 그렇게 위험하다고 하니 괴리가 큰 것이 괜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가는 길에 Museo Nacional de Bellas Artes(국립미술관/박물관)이 있어서 둘러보고 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 같아서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만 살짝 보고 말았다. 계획한 중앙 시장 구경과 점심 식사가 끝나고, 투어 시작 전 기다리는 겸 보면 딱 좋겠다 싶었다.
중앙 시장은 해산물이 유명한 곳이었고, 위험하다는 인상보다는 정말 오래된 찐 로컬 시장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선 비린내가 가득했고 곳곳에는 시장 내 위치한 특유의 느낌이 있는 식당들이 여럿 있었다. 왜 여기가 유명한지 잘 모르겠을 만큼 생각보다 별 거 없었는데, 아무것도 털리지 않고 안전하게 구경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슥 둘러보고 나오니 다 보는 데 5분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 첫번째 목적지를 뒤로하고, 숙소 카운터에서 추천받은 건너편의 다른 마켓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곳에 저렴한 찐 로컬 식당들이 많아서 종종 간다는 직원의 추천이 아주 신뢰가 가서 기대가 됐다.
중앙시장 건너편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시장 이름은 Mercado Tirso de Molina 이었고 1층은 시장, 2층은 여러 종류의 식당이 쭉 늘어져 있는 구조였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우버 기사님이 추천해주신 ‘Pastel de choclo’가 여름 별미라 꼭 먹어보라는 말이 각인되어 있었어서 칠레 전통 식당에 들어갔다. 가게 이름은 (Las delicias de) Laurita Restaurant. 가격대는 가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었는데 어차피 맛이 고만고만할 것 같아 저렴한 곳을 선택했다. 사실 배가 많이 고프진 않았지만 궁금해서 빠르게 먹어보고 싶었기에, 강력 추천 받은 초클로 메뉴 하나와 생선튀김으로 추정되는 메뉴를 주문했다. (혼자였지만 여러가지 메뉴를 시도하고 먹어보는 걸 좋아해서 두 개 시켰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 두 메뉴가 모두 나왔고, 드디어 먹을 순간이 왔다. 난생 처음 칠레 전통 음식을 먹어 본다는 것에 매우 설렜다. 그런데 이게 웬걸… 파스텔 데 초클로는 겉은 단단한 옥수수? 호박? 크림인지 뭔지로 덮여 있고 안에 고기가 잔뜩 들어있는 비주얼이었는데, 분명 뚝배기 그릇에 담겨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이 매우 차가웠다. 고기도 너무 맛없어서 대체 이게 무슨 고기인가 싶었다. 음식이 차갑다니.. 오랫동안 방치된 걸 그대로 준 것 같다는 인상이었는데 정말 실망이었다. 중앙시장에서 봤던 초클로로 추청되는 다른 가게의 음식은 작은 뚝배기에 지글지글 끓어서 조금은 넘쳐흐르는 모습이라 정말 맛있어 보였던 것과 사뭇 다른 비주얼이었다. 그렇게 첫번째 메뉴는 처참히 대실패였다.
두번째 생선튀김 메뉴. 엄청 거대한 사이즈의 생선 튀김 옆에는 매쉬드 포테이토(으깬 감자 샐러드)가 있었다. 예상 가능한 맛이었기에 웬만해선 중박 이상이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또 웬걸.. 이 생선 튀김마저도 전혀 바삭하지 않고 눅눅하고 부들거리고 미지근했다. 튀김인데 이런 온도와 식감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미지근 하다보니 생선의 비린내도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만들어 놓고 한참이 지나서 내놓은 건지 모르겠는데 이 정도면 밖에서 사먹는 길거리 음식이 훨씬 낫겠다 싶은 정도의 맛이었다. 두 번 연속으로 실패의 맛을 보니 칠레와 산티아고에 대한 애정이 확 떨어졌다. 어떻게 이렇게나 맛 없을 수 있는건지.. 아무래도 식당과 메뉴 둘다 아주 잘못 고른 것 같았다. (여기서 가장 맛있는 건 식전 빵에 찍어먹는 소스와 매쉬드 포테이토 였다)
그렇게 남미에서 가장 충격적인 맛을 경험하고 빠르게 나오려는데, 계산하려고 보니 10%의 세금을 더 내라고 해서 한번 더 놀랐다. 분명 현금으로 결제하는 거였고(보통 카드 결제 시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전에 숙소 말고는 다른 곳에선 세금을 낸 적이 없었는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바가지 씌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항의했지만, 너무나 강경했고 말이 통하지 않아서 싸우기 싫은 마음에 그냥 옛다 하고 더 냈다.
여러모로 기분이 좋지 못했지만 이 상태로 계속 있으면 나만 손해니 놀란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맛있는 과일을 사기로 마음 먹었다. 이 마켓은 과일 위주로 판매하고 있었는데, 한 눈에 봐도 저렴하고 다양한 과일이 많았다. 남미에 오면 과일을 마음껏 먹어야지 생각하고 있었으나 혼자이기도 하고 일정에 여유가 없어서 뭔가를 사다두고 먹기 어려웠는데, 드디어 오늘이 기대하던 그 날이 되겠구나 싶었다. 선택지가 다양해서 고민이 많았는데 망고 1개와 체리 1kg를 사기로 했다. 최소 단위로 그렇게 샀는데 웬걸! 혼자 먹기엔 역시나 양이 너무나도 푸짐했다. 체리는 매일 열심히 먹어도 다 먹을 수 있을까 말까한 양이었다. 두 과일을 산 금액은 고작 3-4천원 정도 밖에 안됐던 것 같은데, 양이 아주 넘쳐 흘러서 최악의 식당에 대한 기억을 잠시 덮을 수 있었다.
과일을 잔뜩 샀다보니 그 상태로 투어에 갈 수는 없어서 다시 한번 숙소에 들렀고, 마침 현금도 다 떨어져서 달러를 챙겨 환전소를 찾았다(환전소는 아르마스 광장 근처에 여러 곳 있었다). 투어 끝나고 팁을 주려면 현금이 반드시 필요했기에 환전은 꼭 해야했다. 그 와중에 여러 곳을 비교한다고 엄청 돌아다녔는데 결국 환전소별 금액이 거의 똑같았고, 이래저래 왔다갔다 한 시간만 거의 1시간 반이었다. 원래는 이 시간에 좀 쉬면서 커피도 한잔 하고 여유를 가지려 했는데 계획이 조금 틀어졌다. 그래도 투어 시작 전에 많은 것들을 했으니, 투어만 하고 쉬엄쉬엄 하루를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쉬엄쉬엄 이었을까요..?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