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미까지 왔는데 마추픽추를 못 간다고? ^.^
*영상으로 미리보기
https://youtu.be/r0-4BgCjtk8?si=ooPjF66jLg9HIZyh
어제의 매우 고단했던 또로또로 국립공원 투어를 마치고 오전 9시쯤 느지막이 눈을 떴다. 온몸이 너무 쑤시고 피로가 잔뜩 쌓였지만 모처럼 만에 푹 자서 그나마 조금 컨디션이 회복된 날이었다. 코차밤바를 떠나는 날인데 날이 매우 맑았고 여행의 절반이 넘어갔다 보니, 가족과 친구들에게 줄 소소한 기념품을 사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오늘의 일정은 여유롭게 동네 구경 및 쇼핑을 하고 페루 리마로 넘어가는 것! 14:50 비행기라 아주 여유가 있진 않았지만 주어진 시간 내 아주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우선 현금이 다 떨어져서 NN 회차의 atm 방문기 끝에 발견한 인출 가능한 기기로 가서 또 한 번 현금을 뽑았다. 돌아오는 길에 K-뭐시기 상점이 있어서 뭐지 하고 들어갔더니 한국의 식음료와 기타 다양한 용품들을 팔고 있었다. 볼리비아의 아주 대도시가 아닌 동네에도 한국의 물건들이 들어와 있다는 것과 사람들이 관심 있게 보고 실제로 구매도 많이 한다는 게 신기했던 것 같다. 괜히 한국 물건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액세서리 노점상에서는 꽤 괜찮은 목걸이와 귀걸이를 발견해서 이것저것 골라 담았다.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빈티지해서 마음에 들었다. 이어서 처음 코차밤바에 왔을 때 여러 작은 소품점, 상점이 있는 골목을 봐뒀었는데 그곳에 다시 가서 한눈에 봐도 남미 느낌이 팍팍 나는 원색의 알록달록한 샌들과 가방을 구경했다. 원래는 소소하게 몇 개만 사려고 했었는데, 보다 보니 사고 싶은 게 많아졌다. 그렇지만 아직 여행이 다 끝난 것도 아니고 앞으로 더 사고 싶은 게 있을 수도 있으니 가방 하나와 샌들 하나, 액세서리 몇 개 더 구매하고 짧고 굵은 쇼핑을 마쳤다.
어느덧 정오가 넘었고, 점심으로 미리 생각해둔 곳은 바로 첫날에도 방문했던 K-Bunsik (케이 분식) 집이었다! 마치 고향 집에 온 것 같은 안락한 기분을 느끼며 비빔밥과 딸기 주스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코차밤바에서의 맛집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 분식집을 매우 추천하고 싶다. 이따 항공편 환승할 때 저녁으로 먹을 김밥 한 줄도 미리 포장해왔는데 그렇게 마음이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볼리비아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떠나는 미니버스를 탔다. 원래는 택시를 타고 편하게 가려 했는데, 이동 시간이 어차피 비슷할 것 같아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훨씬 경제적인 버스를 선택했다. 숙소에서 공항까지는 약 30~40분 정도 소요된 것 같고, 13:20쯤 공항에 도착하여 딱 1시간 반 전이라 탑승(14:50)까지 충분히 여유 있었다. 예약해둔 항공사는 BOA였는데, 아무리 찾아도 온라인/웹 체크인을 할 수가 없어서 직전까지 불안했으나 다행히 창구에서 수속 처리를 할 수 있었다.(남미 여행은 기본적으로 50% 정도 불안하고, 확실한 게 잘 없다고 보면 된다..ㅎㅎ)
[1일차: 코차밤바 > 산타 크루즈 > 리마 / 2일차: 리마 > 쿠스코]의 루트로 1박 2일 동안 이동하는 항공편이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여행했던 시점인 23년 초 1~2월 경, 페루 시위는 점점 심해졌고 그 여파로 남미 여행의 꽃인 마추픽추가 닫히게 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내가 갈 때는 열려 있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으나..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그래서 오늘 밤까지 고민해 보고 쿠스코로 다음날 바로 떠날지 말 지 결정하기로 했다. (쿠스코는 마추픽추를 가기 위한 도시이기 때문에 마추픽추가 아니면 굳이 갈 필요가 없어서 정말 고민이 많이 됐었다)
*막간 tip
: 볼리비아에서는 공항마다 남미 out 티켓을 자주 검사했다. 혹시 출국 일자가 미정인 분들도 취소 가능한 항공편 티켓을 갖고 다니는 게 안전할 것 같다.
: 코로나 이후 남미 내 거리가 있는 항공편의 직항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며, 스케줄도 매일매일 여러 편이 있지 않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은 꼭 미리 알아보고 예약하기를 추천한다.
공항이 매우 작아서 금방 안으로 들어왔는데, 탑승 시간 10분 전 (14:40) 탑승 게이트에 뜬 시간이 갑자기 15:35로 바뀌었다. 45분이나 연착이 되었는데, 혹시나 이런 식으로 계속 늦을 경우 중간 경유지인 산타크루즈에서 리마로 가는 항공편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제발 더 이상 연착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초조하게 기다렸던 것 같다.
15:20분이 되었는데도 탑승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불안에 떨고 있을 무렵, 옆자리에 앉았던 현지 여자분께서 게이트가 옆쪽으로 바뀌었다고 알려주셨다. 어쩐지 도무지 떠날 기미가 안 보인다 했더니 그새 게이트마저도 바뀐 것이었다. 그분이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하염없이 처음 그 게이트만 바라보며 언제 타나 기다리다가 아예 놓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늦기는 했어도 운 좋게 잘 탑승했고 약 50분을 날아서 산타크루즈 공항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리마로 출발하는 환승 편이 6시 30분이었기에 다행히 시간이 촉박하지는 않았다. 다음번 항공기 탑승하는 쪽을 찾아 이동한 뒤, 매점에서 따듯한 차 한 잔과 브라우니를 사서 코차밤바에서 포장해온 김밥과 함께 이른 저녁을 먹었다. 남은 볼리비아 현금도 다 털었겠다 후련한 마음으로 만찬을 즐겼다. 김밥은 소고기 & 참치 반반 김밥이었는데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던 것 같다. 같이 넣어준 새콤한 간장 소스에 찍어 먹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다 싶었다. 남미 여행 내내 쌓인 피로가 맛있는 한식 한 끼로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
산타크루즈에서 리마까지는 1시간 반 정도 소요되었고, 리마 공항에 도착하니 저녁 8시였다. 오랜 시간, 여러 번 갈아타며 하루 종일 이동만 했더니 얼른 집에 들어가 씻고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짐을 찾고 나오니 어느새 8:40 때쯤이었고, 흥정하는 데 힘을 빼고 싶지 않아서 현지인들이 많이 쓰는 택시 앱(cabify)으로 편하게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공항 앞엔 택시가 정말 많았고 어쩐 일인지 자꾸 길이 엇갈려서 몇 번을 놓치고 못 만나다가, 결국 눈이 마주친 기사님과 cabify에 나온 금액으로 대략 흥정해서 숙소로 향했다.
그렇게 대이동의 날은 막을 내렸고, 하루 종일 시시각각 낯선 곳에서 긴장한 채로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다니느라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으며 페루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당장 내일부터 마추픽추가 열린다는 보장이 없어서 쿠스코를 과감히 포기하고, 원래 남미의 마지막 일정으로 계획했던 이카의 와카치나 사막을 보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지구 정반대 편인 남미까지 와서 마추픽추를 못 본다는 게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별 수 없었다. 일단 원래 계획했던 일정을 앞당겨서 움직이고 그 이후로는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남미의 마지막을 장식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