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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무슨별 Oct 30. 2023

마추픽추 포기하고 이카 와카치나 사막으로 떠난 썰

마지막 여행지 페루의 시작을 다이나믹하게!

*영상으로 미리보기

https://youtu.be/J_iXDYaUIU8?si=D1N5EMWbFBJL8GJY



전날 밤까지 계속 고민을 했다. 마추픽추가 막혀있는데 쿠스코를 가야 하는 걸까? 사실 마추픽추 아니어도 물론 여행할 것들이 있기야 하겠지만,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마추픽추가 아니고서는 그 먼 곳까지 꼭 가야 할 이유가 있진 않았기에 지구 반바퀴를 돌아왔지만 어쩔 수 없이 마추픽추를 마음에서 놓아주었다. 내가 간절히 원한다고 어찌할 방법이 있는 게 아니니, 일단 다른 일정들부터 소화해 보고 출국 전 극적으로 열리면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고 그리하여 오늘의 일정은 이카 와카치나 사막에 가는 것이었다. 검색해 보니 버스로 무려 4시간 반 걸리는 곳이었다. 리마에서 꽤나 먼 곳에 있었는데 버스가 최선이어서 이쪽을 택했고 이왕 가는 거 이동하는 것 먼저 빨리 해치우자는 생각으로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다. 9시에 출발해서 13시 30분에 도착하는 버스를 떠나기 전날 앱으로 35솔(솔=페루의 화폐 단위)에 구매했고, 짐이 많았기에 숙소에서부터 터미널까지는 편하게 택시를 이용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창구에서 내가 구매한 티켓이 맞는지 재차 확인 후 버스 탑승까지 시간이 남아서 20~30분 정도 대기를 했다. 남미는 워낙 변수가 많고 한 치 앞을 안심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창구에서 확인 사살을 하고 나서야 이카까지 무사히 잘 갈 수 있겠구나 안도를 했다.



9시쯤 짐을 싣고 배정받은 좌석에 앉아 어제 기내식으로 받은 샌드위치를 먹었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였지만 배가 별로 안 고프기도 했고 입맛도 없어서 그저 그런 맛없는 빵 몇 입 먹다가, 진짜로 너무 심각하게 맛이 없어서 고추장 튜브를 짜서 잼처럼 조금씩 발라먹었다. 말로만 들으면 기괴하기 짝이 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 의외로 느끼함도 잡아주고 살짝 매운맛에 스트레스도 풀리고 좋았다. 역시 난 뼛속까지 한국인이었다.



엉성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버스 여행이 시작되었다. 버스는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리 길을 달렸는데, 몸은 정말 너무나 피곤했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분명 몸은 지금 휴식과 수면이 필요하다고 부르짖고 있었는데 이상했다. 아무래도 버스라는 공간이 편치 않고, 혹시나 자는 동안 뭐라도 도난당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번 최악의 멀미가 시작됐다. 남미 와서 잊고 살았던 멀미 DNA가 폭주를 해버린 탓에 미리 멀미약을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소용이 없었다. 남미의 비포장도로 위를 전속력으로 달리는 버스에서의 그 미세한 진동은 약으로도 막을 수 없었나 보다. 다들 평온해 보이는데 유독 나만 혼자 괴로워하는 것 같아서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별 수 없었다. 스스로 터득한 민간요법인 물 조금씩 마시기 + 달달하거나 매운 사탕 먹기 조합으로 몇 시간을 최대한 아무 생각 안 하려고 노력했다. 눈을 감아도 떠도 뭘 해도 시간은 더디게 갔지만 별 수 없었다. 가능한 창밖의 머나먼 풍경을 바라보면서 조금이라도 주위를 다른 곳으로 끌어보려 애쓴 시간이었다.


그렇게 지옥의 시간을 또 한 번 맛보았는데, 애석하게도 도착 시간이 지연되어 무려 한 시간을 더 달렸더랬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게 어찌어찌 14시 30분쯤 이카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너무 속이 허해서 뭐라도 먹고 싶었지만, 짐이 많아서 이미 지쳐있기도 했고 사막 투어가 4시 시작이라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숙소로 빨리 가야겠다 싶었다. 그곳의 주요 교통수단 중 하나인 툭툭이를 타고 시내로 이동했는데 5솔에 편안하게 숙소까지 갔다.(터미널에서 와카치나 사막까지는 15~20분 정도 소요된다)



숙소는 전날 급하게 예약하느라 호스텔이나 가성비 좋은 호텔은 이미 마감이었고, 남아있는 것 중에서 무난한 곳으로 정했다. 개인실이었는데 침대가 두 개나 있었고, 그렇게까지 필요하진 않았지만 그 옵션뿐이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어느 여행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남미 또한 둘 이상 움직이면 훨씬 경비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짐을 풀고 침대에서 쉬다가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어서 도보 20걸음 컷인 숙소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사막을 바라보며 공식적인 첫 끼로 오믈렛, 구운 파인애플과 토마토, 빵 그리고 음료 한 잔을 시켰다. 시간이 넉넉하진 않아서 여유롭게 즐길 수는 없었지만 그 시간 내에는 가능한 여유를 부려보려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밥다운 따뜻한 것들을 먹고, 숙소 오는 길의 호객 행위들에서 킵해둔 버기카 투어 업체를 찾아갔다. 분명 4시 시작이라고 해서 갔는데 아까 만났던 호객 뽀이는 만나지 못했지만 다른 뽀이들이 많아서 그중 아무나 만만해 보이는 사람 골라잡고 처음부터 20솔로 쇼부를 쳤다. 인당 보통 30솔에 많이들 한다고 들었는데 둘이면 40에 해준다는 얘기를 들어서 혼자지만 반값인 20솔이 합당하다는 판단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업체 측에서도 30으로 떼를 오지게 써서 씨름을 하다가 최종 26솔로 합의를 봤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20솔도 가능했겠지만 이렇게 씨름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기 싫어서 그 정도에서 끝내기로 했다. 그리고 역시나 남미답게 예상 시작 시간이었던 오후 4시를 훌쩍 넘겼는데, 결국 기다리고 기다리다 드디어 입장 티켓을 구매한 시각이 4:45였다. 역시나 남미답게 최소 30분을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무작정 대기했고, 입장 티켓은 인당 3.6솔로 별도 지불해야 했다.



최종적으로 버기카에 탑승한 시간은 오후 5시쯤이었다. 역시나 기다리느라 지쳐서 살짝 기운이 빠졌긴 했지만, 비록 인공 사막이었지만, 인생 첫 사막이었기에 설렜던 순간이었다. 와카치나 사막에서 보는 노을이 그렇게나 예쁘다던데 분명 구름이 많이 낀 날씨여서 보기 힘들다는 걸 아는데도 괜히 기대해 보고 싶었다.



버기카 투어는 모래 위에서 펼쳐지는 와일드한 드라이브였고, 마치 놀이 기구를 탄 것처럼 스릴 있고 재밌었다. 롤러코스터나 T 익스프레스처럼 아주 날것의 익스트림은 아니었지만 사막 위에서 펼쳐지는 질주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지 않을 수 없었다.



버기카 위에서 사진도 찍고 함께한 일행들과 얘기도 나누고, 마지막으로 샌드 보딩까지 하니 진짜 내가 사막에 오긴 왔구나 실감이 났다. 아주 높은 곳에서부터 배를 대고 누워서 보드를 타고 쭉 미끄러지는 게 샌드 보딩인데, 이게 또 생각보다 아주 스릴 있었다. 맨몸으로 그대로 미끄러지다 보니 모래바람이 장난 아니었는데 아주 높은 데부터 쭉 떨어지다 보니 속도가 꽤 있었다. 스릴을 즐기는 나로서 맘 같아서는 10번은 더 타고 싶었지만 듣던 대로 보드를 갖고 다시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 3번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보통은 한두 번 하면 이미 지쳐버린다고 하더라..)




그렇게 사막을 실컷 즐겼나 싶었을 때 극적으로 붉은 노을이 잠깐 동안 보였다. 분명 회색 하늘이었는데 조금씩 핑크빛이 되더니 이내 주황빛의 불타는 노을이 된 것이었다. 혼자 여행이 가장 안타까운 사진 찍는 타임이 왔는데 내가 누군가! 혼여행을 만렙 아닌가! 다른 여행객들에게 먼저 사진 찍어준다고 제안하고 자연스럽게 내 사진도 얻어내는 스킬로 꽤나 괜찮은 사진을 찍었다. 알고 보니 어느 커플 중 남자분이 사진작가인지 아주 기깔나게 잘 찍어주셔서 아직도 매우 만족하고 있다.




그렇게 사진 먼저 찍고 저물어가는 노을빛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천천히 밤 하늘을 감상했다. 날이 맑으면 별도 참 많이 보인다던데 그것까지는 욕심이었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인공 사막의 한 가운데 놓인 작은 호수와 그 호수를 둘러싼 불빛들도 너무나 예뻤다.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낸 곳인데 이렇게 예뻐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원 없이 멍 때리면서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이제는 진짜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기도 하고 어두워지니 혼자인 게 조금은 무서워져서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이날의 저녁 메뉴는 불닭 볶음면이었다. 한국에서부터 챙겨온 라면이었는데 언제 먹으면 최선일까 고민하다가 이제 거의 여행 막바지기도 하고, 하루 종일 속이 느끼하고 더부룩한 느낌이라 매운 음식이 당겼다. 물론 그걸 먹으면 다음날 고생할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오늘 하루만 눈 딱 감고 먹어야지 생각했다. (매운 거 좋아하는데 몸이 이제는 안 받아주네요)



정말 오랜만에 먹은 불닭은 정말 맛있었고 정말 매웠다. 맵다면서 그 국물에 빵까지 찍어서 남김없이 먹고 맥주까지 한 캔 한 강인한 나였다. 그렇게 땀 뻘뻘 흘리며 저녁까지 잘 먹고 나니 몸이 노곤노곤하기도 하고 하루 종일 모래바람에 휩싸였다 보니 너무 찝찝해서 원래는 씻고 바로 잘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와카치나에서의 첫날밤을 흘려보내기엔 역시나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가서 배도 꺼뜨릴 겸 산책도 하고 칵테일도 한잔하고 주변 상점들까지 구경하다가 들어왔더랬다.



칵테일이 저렴하고 양도 많고 종류도 많아서(맛도 아주 강렬하다) 누군가 한 명만 더 있었더라면 두 세잔 정도 마시고 싶은 생각이었지만 아쉽게도 그곳엔 한국인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그렇게 홀로 남미의 명물 피스코 사워 페루 버전 한 잔 마시고 노곤노곤한 몸을 겨우 세척한 뒤 잠에 들었다. 인공 사막 한복판의 호텔에서는 따뜻한 물이 잘 나오지 않았고 덕분에 의도치 않게 냉수마찰을 했지만, 그것 때문인지 몰라도 잠은 아주 깊게 푹 잘 수 있었다.




[리마- 이카 와차치나 일정 요약]

*23.02.11(토) 여행 20일차   

7시: 기상

7:30~9: 버스터미널로 이동 & 대기

9-14시 30분: 버스로 이동 (예정보다 1시간 더 걸림)

15~16시: 휴식 & 식사

16:30~19시: 와카치나 사막투어

~20시: 저녁 불닭

21시 30분 ~22시 30분: 산책, 동네 구경, 칵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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