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빠지게 기다리던 주말은 쏜살같이 지나고 시간은 어김없이 나를 월요일에 앉혀놓는다. 주말에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번쩍 떠지고 심지어는 컨디션마저 좋은데, 월요일을 마주하면 일어나기 싫은 내 마음을 몸도 알아채고 반응한다. 원래도 무거운 몸이 한 층 더 무거워지고 최면에 걸린 마냥 눈꺼풀 뜨기가 어렵다. 역시 옛말에는 틀린 게 없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게 틀림없다.
딱 남들만큼 가지고 있는 책임감으로 집을 나선다.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지하철 타고, 지하철 타고 회사에 간다. 출근길에는 보통 노래를 들으며 기사를 보거나, 영상을 본다. 그마저도 지겹게 느껴지는 날엔 남쪽에 사는 가족들에게 묻지도 않은 일상을 보고하고 그들의 대답을 기다린다. 반대편 지하철을 타고 나와 별다를 것 없는 걸 하고 있을 남편에게도 뭐 하고 있는지 굳이 묻곤 한다.
회사에 도착하면 꼰대부터 MZ까지, 정신적 지주부터 내 멘탈을 갉아먹는 그림자까지, 존경하는 동료부터 말 섞고 싶지 않은 동료까지, 모두에게 크게 다르지 않은 농도의 스탠스로 인사를 한다. 자연스레 만들어진 루틴으로 오전을 채우다 보면 금방 점심시간이다. 때마다 다르긴 하지만 오후도 일하다 보면 생각보다 퇴근시간이 빠르게 올 때가 많다. 5일을 버텨야 하는 부담감에 120시간만큼의 무거움으로 시작된 월요일도 결국 일요일과 같은 24시간인 것이다. 월요일이 아침에 느꼈던 무게감에 비해 가볍게 지나갔다고 해도 남은 출근일이 반가운 건 아니다. 일주일이라는 산에 어느 지점까지 등반했는지 요일을 지표 삼아 체크하며 주말을 기다린다.
금요일 출근길의 나는 확실히 평소보다 들떠있다. 나는 걱정이 많고 불안도가 높은 감정적으로 예민한 사람이라 사소한 것에 기분이 들쭉날쭉한다. 예전에는 부정적인 감정에만 초점이 잡혀 나의 이런 점이 싫기만 했는데 뒤늦게 좋은 점도 꽤 많다는 걸 깨달았다. 매주 오는 월요일이 매번 싫은 만큼 매주 오는 금요일이 그렇게나 좋을 수 없다. 그렇게 맞이한 주말을 나의 방식으로 만끽한다. 아침의 여유도 충분히 즐기고, 거닐기 좋은 곳을 찾아 피어난 계절을 느끼기도 하고, 먹는 행복이 너무 큰 나를 위한 식도락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때론 안온하게 때론 자극을 찾아 생기 가득하게 지낸다.
이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 최근에 삶에 대한 단상이 스쳤다. 사는 게 힘들다거나 괴롭진 않지만 그렇다고 유난히 재밌지도 않은 요즘이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진 못해도 하고 싶은 것을 못하며 살진 않는데 왜 이런 생각이 스친 걸까. 여러 갈래의 이유가 있겠지만, 보다 거시적인 시선으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어느 순간부터 '생각한 대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는 삶'에 익숙해졌다는 것. 어떤 것이든 너무 쉽게 취할 수 있는 시대에서 필요 이상으로 쏟아지는 것들에 짓눌리고 있다는 것. 이제는 담지도 못할 수준으로 밀려와도 그저 수동적으로 있게 된다는 것. 가장 큰 문제는 들어오는 것만 있고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것들이 휘발되고 있다. 감정도 생각도 붙잡아두지 않으면 뭉뚱그려진 정체 모를 덩어리로 남게 된다. 그래서인지 조금씩 나를 잃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분명 어제보다 하루만큼 더 함께 했음에도, 그 하루가 쌓여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는 나를 여전히 잘 모른다. 내가 나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것들은 곱씹어보면 온통 피상적인 것들 뿐이다.
본질적인 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끄적이기로 결심했다. 마음을 보여주는 건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왜 그렇게 했는가'다. 휘발되지 않도록, 내 안의 가장 깊숙한 마음을 기록해보려 한다. 그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진짜 나를 마주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