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미련한 고집

by 뾰도로

남편은 가끔씩 나보고 ‘꼴통’이라며 어렸을 때 말을 더럽게 안 들었을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실은 정반대다. 나는 겁도 많고 생각보다 도덕적인 아이였다. “하지 마”라는 말을 한 번 들으면 절대 하지 않는 그런 아이. 지나고 보니 대부분은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일들이었지만 그땐 마치 어기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좋게 말해 말을 잘 들은 거고, 다르게 보면 융통성 없고 미련했던 거다.




10살 무렵까지, 학교에서 늘 쓰게 되는 장래희망란엔 ‘피아니스트’라고 적곤 했다. 재능이 있었다거나, 피아노를 특별히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처음 느껴보는 배움의 재미, 성취의 기쁨, 그리고 그 음악학원이 주던 특유의 분위기 같은 것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8살쯤이었나. 피아노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도 평소처럼 선생님과 함께 레슨 곡을 한 번 쳐본 뒤, “혼자서 10번 연습하고 있어~” 하시며 선생님은 자리를 비우셨다. 이렇게 큰 피아노를 어떻게 넣었을까 싶게 작은 방들이 여러 개 있고 아이들이 한두 명씩 들어가 피아노를 치면 선생님이 돌아다니며 차례로 봐주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1부터 10까지 적힌 조그마한 연습장에 연습 한 번에 동그라미 하나씩 그려 넣었다.


유독 아이들이 많아 정신없던 그날, 진작에 10개의 동그라미를 다 그리고 젓가락 행진곡이며 내가 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곡들을 몇 번이고 뚱땅뚱땅 두들겨도 선생님은 오시지 않았다. 결국 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선생님을 찾아 눈짓을 보냈다. 아파트 상가에 있었던 학원이라 일반 학원과는 달리 아파트 내 아이들이 모두 함께 어울려 놀기도 하던 곳. 선생님은 여러 아이들을 챙기느라 무척 분주해 보였다. 나를 본 선생님은 “방에 들어가 있으면 금방 갈게~” 하시며 다시 바쁘게 움직이셨다.


그렇게 나는 피아노 앞에 우두커니 앉아, 거의 모든 학생들이 집에 가고 해가 어둑어둑 질 때까지 몇 시간을 그대로 있었다. 한참 뒤 나를 발견하신 선생님은 아주 놀란 표정으로 “아직도 거기 있었어?”하시며 정말 미안해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미련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하다. 누군가는 금세 나가서 다시 선생님을 찾았을 수도 있고, 어떤 아이는 아예 그냥 집에 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 기다리는 아이였다. 그때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선생님 말씀은 꼭 들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괜히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가? 지나온 시간과 경험 덕분에 조금은 유연해졌을지 몰라도, 아직도 나는 누군가의 말을 쉽게 흘려듣지 못한다. 지시나 정해진 절차를 어기면 마음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괜히 끝까지 해보려 드는 고집스러움, 그리고 융통성 없는 면모. 그런 성향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어쩌면 나의 미련함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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