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강박 하나쯤은 있다

by 뾰도로

누구에게나 강박 하나쯤은 있다. 어떤 이의 지갑 속 지폐는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정리돼 있어야 하고, 카카오톡의 알림 숫자는 ‘0’이 되어야 마음이 편하다. 누군가는 현관문을 잠갔는지 세 번씩 확인하고, 누군가는 컵을 씻을 때 항상 같은 순서로 헹궈야 한다.




나는 정리 강박이 있는 편이다. 집 안의 물건들이 반드시 내가 생각한 자리에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어떤 물건이 필요해졌을 때,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어디에 있는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게 안정감을 주는 모양이다. 이왕이면 로고가 보이게, 일렬로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게 좋다. 피곤해서 침대에 누웠다가도 제자리에 두지 않은 물건들이 하나 둘 떠올라 기어코 정리하게 될 때에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현타가 올 때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 강박은 오로지 사적인 나의 공간에서만 발동한다. 내 공간은 세상의 번잡함 속에서 내 안의 질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여기만큼은 내가 정한 법칙이 있고, 그 법칙을 지키는 일은 나를 조금 덜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 내가 남편과 살게 되었다. 나만의 질서가 있는 나와, 물건은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야 편하다는 철학을 가진 남편. 그는 양말을 벗은 자리에 그냥 두고, 컵은 아무 데나 놓고, 옷걸이에 옷을 거는 대신 식탁 의자에 걸어두는 사람이다. 그런 점들이 눈에 띌 때마다 몇 번 말하면 바뀌겠거니 했다. 하지만 열 번쯤 말한 뒤에야 ‘아, 이건 안 되는 거구나’ 싶었다. 잘못된 행동도 아닌데 내 마음 편하자고 더 이상 강요할 수 없겠다 싶어 합의점을 떠올렸다. 남편을 위한 스팟을 만들자. 침대 한 켠에 전용 협탁을 두고 곳곳에 바구니를 놓아 그를 위한 존을 만들었다. 그 구역에는 무엇을 어떻게 두든 그대로 두는 거다.


처음에 잡동사니들과 케이블 선이 한데 뒤엉켜있는 바구니를 들여다봤을 땐 꽤나 신경 쓰였다. 본능적으로 손이 먼저 케이블을 정리하다가 이내 내팽개치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남편을 위한 존은 내가 의식적으로 외면하는 연습장 같은 공간이 되었다. 정리되지 않은 걸 있는 그대로 두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내 공간 안에 있어도 괜찮다고 인지하는 것. 그렇게 나는 조금씩 유연해졌다.




나도, 나의 질서도 조금씩 변할 수 있다는 걸 배워가는 중이다. 물론 여전히 컵 손잡이를 같은 방향으로 돌려놓고 서랍 속 물건을 각 맞춰 정리하지만, 남편이 남긴 발자국 같은 흔적들이 그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울 수 없다. 모든 게 제자리에 있지 않아도, 정리되지 않은 풍경에도 나름의 온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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