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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변호사 Jun 15. 2020

학교 공간에 대한 사회학적 상상력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대표적인 형태로 학교를 지적했듯이 근대 이후 학교는 인간의 사회화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알튀세르와 같은 맑시스트들의 이론을 차치하고서라도 성장기의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가 개인 평생의 행동 형성에 영향을 준다는 점은 자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는 그 사회가 아이들에게 교육시키고자 하는 가치관을 반영하는데 이는 학교의 공간적 측면에서도 드러난다.


먼저 현재 우리 사회의 학교의 모습을 살펴보자. 대부분의 교실은 앞을 바라보고 일렬로 배치된 책상과 의자, 교실 앞쪽에는 학생들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교탁과 단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배치는 교육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감시, 감독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이러한 구조의 교실에서 교사는 학생들이 조는지, 책상 밑에서 핸드폰을 하는지, 옆의 학생과 떠드는지 등을 감시하며 이를 바로 지적할 수 있다. 김윤영(2012)은 한 명이 다수를 감독해야 하는 교실의 상황을 미셸 푸코의 ‘파놉티콘’에 비유하며 보다 경제적인 감시를 위해 이러한 형태의 교실이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모습은 교실뿐만 아니라 학교의 행정적인 업무가 일어나는 교무실이나 교장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체로 교장실은 학교 1층 중앙, 교무실 외부에 위치하며 명패와 화려한 장식의 책상, 가죽 소파가 배치되어있다. 이러한 공간적 배치는 교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동시에 학생들에게 위압감을 주기도 한다. 또한 교무실의 경우 가장 앞 쪽 중앙에는 교감의 책상이 배치되어 있고 그 옆으로 학생부장, 교무부장, 생활부장 등의 자리가 위치하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일반 교사들의 책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렇게 될 경우 교실에서 모든 학생들이 교사의 감시 아래 있었던 것처럼 일반 교사들이 교감, 학생부장, 교무부장 등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된다. 베버가 권력을 “자기 의지를 타자에게 강요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정의했던 것을 고려할 때, 이러한 학교의 모습은 학생들이 사회적 위계와 권력에 사회화되도록 한다.


과거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의 모습은 현재의 학교의 모습과는 달랐다. 특히 조선시대 풍속화가인 김홍도의 그림인 <서당>을 보면 현재의 학교와는 달리 몇 안 되는 학생들이 훈장을 둘러싸고 바닥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서당은 공식적 교육기관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로 일상적 공간인 가옥을 개량한 형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의 교육은 보다 자율적이고 교사와 학생간의 활발한 소통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이러한 학교 공간은 어디에서 기원하는가. 강기수와 김정호(2013)는 이러한 획일적 공간 형태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교육 그 자체보다는 식민지를 감시, 감독, 통제하기 위한 장소로 학교를 이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일제 강점기 당시 한국어 교육을 금지하고 황민화 교육을 강요하였던 당시의 억압적 교육정책으로 볼 때 상당히 타당한 주장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역사적 측면에서의 학교 공간을 살펴보았다면 이제 인류학적 측면에서 학교 공간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나라는 구한말 개항 이후 일본으로부터 근대 학교 제도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서구 사회와 비교해볼 때 교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우리나라의 교실의 크기가 선진국의 교실 크기에 비해 작다는 것이다. 강기수, 김정호(2013)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한 교실의 크기는 학년에 상관없이 대부분 66㎡로서 미국의 79-84㎡, 일본의 74㎡에 비해 작은 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학급당 학생 수가 다른 교육 선진국에 비해 많은 것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교실은 교사에게는 학생들을 경제적으로 관리하기 좋은 환경인 동시에 학생들이 생활하기에 불편한 환경이다.


학교 공간은 학생들이 앞으로 평생 그들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 자신을 형성하는 중요한 환경이다. 학교 공간이 어떻게 배치되는지에 따라 그들이 자신을 형성하는 방식이 달라지며 후에 사회를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달라진다. 최근에는 앞에서 살펴본 현재 우리나라 교실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탈권위주의적이고 자유로운 소통을 강조하는 교실로의 변화가 등장하고 있다. 과거 서당의 ‘집 같은 분위기’를 통해 열린 교육을 지향하기도 하고 보다 넓은 교실 공간에서 자유로운 책상 배치로 교사와 학생 간의 활발한 소통을 꾀하기도 한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고 다른 사회와 한국 사회를 비교하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학교 공간을 변화시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윤영, 「교육적 공간으로서 교실에 대한 고찰」, 『初等敎育學硏究』 Vol.19 No.2, 2012

안선희, 「서당교육에서의 열린교육적 요소」, 『誠信女子大學校 大學院 誠信女子大學校 大學院』, 2001

강기수, 김정호, 「초등학교공간에 관한 비판적 논의」, 『敎育思想硏究』 Vol.27 No.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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