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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김 May 04. 2024

나의 대나무숲

마음속 대나무숲이 있으신가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외치고 싶을 때면  서둘러 찾는 대나무숲이 있다. 순간순간 열받는 일이 직장에서 집에서 시댁에서 있을 때마다 나는 대나무숲을 찾는다. 그것은 바로 인간 대나무숲이다. 대나무숲이 발동되면 카톡으로 메신저로 전화로 대면으로 ‘이것이 어쩌고 저것이 어쩌고 구시렁구시렁’ 거림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궁시렁거림 말고도 기분이 우울해지는 경우에도 대나무숲은 발동하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더 자주이긴 하지만 어찌됐든 여기에서는 궁시렁거림을 대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대나무 숲의 조건은 나름 까다롭다. 비밀이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헉! 뒷담화를 한다는 건가?“라고 볼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인다면야 할 말이 없다. 평생 남 흉이라는것을 보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 변명하자면, 또 뒷담화와 구시렁거림의 차별점을 찾자면 남의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근거가 없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팩트이며 내가 직접 당한 것이며 ‘나는 억울하다’는 것에 주된 관점이 있다. 아! 외모나 생김새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도 추가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그거라도 안 하면 어찌 산단 말인가. 나는 썩 인격이 훌륭한 사람은 못된다만 훌륭하신 이순신 장군님도 난중일기에 그렇게 남욕을 했다던데 나의 경우도 건강한 비판쯤으로 생각해 주면 어떨까 싶은 소망을 해본다. 또 직접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어도 잘 표현하지 못하고 사는 게 대부분 을들의 삶 아니겠는가. 요즘 을들은 갑 못지않게 할 말 다하고 산다지만 이쪽도 저쪽도 아닌 상태로 그곳이 어디든 갑의 인생을 살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하소연 거리들을 어디다 가든 쏟아내어야만이 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럼 이제 구차한 변명은 이쯤 해두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인간 대나무숲의 조건을 살펴보자.

첫 번째, 나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부연 설명을 길게 하지 않아도 내가 말하는 상황을 짐작하고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일하다 겪은 일을 말했을 때  그 일이 어떻게 되어야 정상적인 과정인지를 이해해야만 내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와 같은 직종의 일을 하되 또 너무 좋은 시어머니를 만나서 아무런 시집살이 스트레스가 없어도 아니 되며 지독이 도 말 안 듣는 사춘기 자녀와 그다지 하는 짓이 이쁘지 않은 남편도 두어야 한다. 두 번째 , 공감요정이어야 한다. MBTI 가 T인 유형은 제외다. 그들은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스트레스받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자꾸 답을 내주려고 한다. 답이 있다고 해도 내 성격 상 할 수 없으니까 이러고 구시렁대며 산다는 것을 T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 공감요정은 “어찌 근다냐”“오메오메”“헐.. 미친”과 같은 추임새를 곁들여 가며 나의 상황에 공감해준다. 셋째, 입이 무거워야 한다.  사실 험담과 다르다고 우기긴 했으나 상대방이 들으면 좋을 것은 없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렇지만 나는 솔직히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내가 주로 쓰는 말은 이렇다. ”아니!! 내가 이상해? “ 이렇게 저렇게 나에게 상대방이 한 행동에 화가 나는 내가 잘못된 것인지가 알고 싶은 것이다. 내가 소심해서 상처받는 것인지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상처받을만한 상황인지 확인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객관적인 T들은 안된다. 뭔가 모순 있는 말이다 싶겠지만 그렇다. 안된다. 넷째, 내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해도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열심히 상사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치자. 그래놓곤 “그래도 좋으신 편이야 “라는 식으로 갑자기 주섬주섬 수습을 한다. 그럼 ”엥? 뭔 일이여?”하지 않고 나름 양심에 찔려하는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그려~ 세상에 나쁜 사람이 어디 있다냐? 다 사람은 좋아~”라고 맞장구 쳐줄 수 있어야 한다. 또는 남편이 미워죽겠다고 욕해놓고선 밥 해준다고 이것저것 장 봐서 들어가는 나를 기가 차하면서도 웃으며 이해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을 충족하는 대나무숲인 그녀가 있다. 어쩌면 그녀는 나에게만 대나무숲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를 아는 모두가 그녀에게 털어놓고 싶어 한다. 그러니 모두가 그녀를 좋아할 수밖에. 하지만 가끔은 그녀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 양파도 좋은 말 들은 양파가 잘 자란다는 증명결과를 얻어 아이들 초등학교 과학실험 숙제로 해간 적도 있으니 이런 말 들어주는 그녀가 얼마나 힘들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 이제부터 좋은 말만 합시다!! “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우리는 말이 없어졌더랬지 아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하하. 어찌 됐든 나의 정신건강을 책임져주고 있는 사랑스러운 그녀가 참말로 나는 고맙다. 그런데 나는 그녀에게 대나무숲으로서의 조건에 충족하고 있을까? 나의 대나무숲!! 아프지 말고 우리 서로에게 오래오래 대나무숲이 되어줍시다!!! 당신만큼은 아니겠지만 언제나 당신 편이 되어 줄게요. 당신을 최고의 대나무숲으로 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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