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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김 Jul 04. 2024

3월 어느 봄날의 서늘함

차를 타고 지방도로를 지나칠 때면 양 옆으로 논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나는 종종 들판을 보며 심장이 찌릿해지고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3월 어느 날이었다. 새 봄을 맞이하여 트랙터가 분주하게 논과 밭을 갈아엎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또다시 심장이 찌릿하고 아리었다.

이유는 재작년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떠올라서다.

봄철 바쁜 시기 일을 돕기 위해 시골에 방문할 때면 창문으로 트랙터를 타고 땅을 갈고 계시던 아버님이 보이곤 했는데 멀리서 보이던 그 모습은 은근 운치 있고 정겨웠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내가 낯설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 아버님을 좋아하지 않았다.

시아버지는 꼬장꼬장한 성격에 결코 인자하지 않으셨다.

그로 인해 나는 결혼생활동안 상처도 참 많이 받았다.  돌아가시고 나서도 갑작스러워 놀랍고 안타깝긴 했어도 큰 슬픔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한 사실이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동안 당해왔던 서러운 일들이 자다가도 생각나서 벌떡 일어날 만큼 화가 난 적도 많았다.

그랬던 내가, 이제 와서, 별것 아닌 논밭을 보며, 아버님을 떠올리고 있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인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은 사실은 내가 인정하기 싫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원망하는 마음에 대한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당한 수많은 설움들은 어쩌고 이제 와서 그리워할 수는 없는 거라고, 그러기엔 내가 억울해서 안 되는 거라고 하면서 애써 도리도리 했던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아버님은 종종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우리 집에 파란 용달차를 끌고 어머님과 함께 집에서 키운 농작물이나 참기름 등을 싣고서는 자식과 손주들에게 주려고 챙겨 오시곤 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방문이 있을 때마다 며느리인 나는 부리나케 집을 치우고 난리 법석을 피워야 했고 혼자 속으로 구시렁댔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연락도 없이 오시면 어쩌자는 거야?"

" 아니 내가 해먹기도 어려운 원물만 갖다 주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하지만 차를 타고 돌아가시는 모습을 배웅하면서 나는 무언가 안쓰러운 아련함을 느꼈었다. 그럼에도 그 자리를 이렇게 불평불만으로 채워 넣으면서 서툴고 무뚝뚝한 말투와 태도들에 가려진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보지 못했고 외면했던 것이다.

평생 농사일 밖에 모르고 사셨던, 나들이라고는 자식들 집 한번 들리는 것이 다였던 지독히도 재미없는 인생을 사시는 분들에게 그게 나들이였던 것을, 작은 기쁨이었던 것을 당시의 나는 정말 몰랐던 것일까.


췌장암 진단을 받으셨던 아버님은 그해 가을걷이를 마치고 수매까지 다 마치신 후 11월에야 돌아가셨다. 온갖 만류에도 더욱더 농사일에 매달리셨고 항암제 부작용 때문인지 호통과 신경질은 극에 다다랐었다. 그러한 것들을 다 받아내야 했던 가족들도 많이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마지막 소명인 듯 그렇게 일을 마치신 후에야 돌아가신 것이다. 본디 성격대로 끝까지 고집스럽게 본인의 책임을 다 하셨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일을 마무리해야 했던 아버님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나는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도 없었지만 헤아리고 싶지도 않았던 것은 아닐까.


이제는 아버님을 향한 원망과 미움,  당해온 서러운 일들이 더 이상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서서히 하나씩 하나씩 다가오는, 받아들일 수 없는 그리움과 허전함에 어찌할 바를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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