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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게으른게 아니야

난 기면증 환자입니다.

by 휘파람휘

고등학교 동창 중 몇은 날 여전히 급장, 반장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학교 수업시간에 많이 자던 내 모습도 함께 기억한다. 침흘리며 자던 모습 심지어 선생님이 오시면 '차렷, 선생님께 경례'를 해야 하는데 친구들이 깨워도 비몽사몽 잠에 취해 있던 상태였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집에 가서도 교복을 입은 채로 이불을 끌고 잠을 자던 모습에 엄마가 걱정을 꽤나 하셨었다.

심지어 한번은 외출 하신 엄마가 내가 집에 있으니 초인종을 눌러대도 전혀 모르고 자서 사람을 불러 창문을 따서 들어오셨던 기억도 있다.


그 때 그시절 90년대에는 수면의 질 중요성에 대해서 사람들의 인식이 낮았고, 단순히 난 잠이 많은 학생이었다. 엄마가 잠문제를 좀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한약을 지어주셨던 기억도 난다.


세월이 지나 10대 청소년이 40대 아줌마가 되어 슬슬 신체적 약점이 수면 위로 올라오더니

아주 극심한 불면증을 겪게 된다. 새벽 3시에면 깨니 정오만 되도 이미 9시간 이상 깨어 있고 평균 4시간 이상을 못자는 날들이 지속되면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생기며 급기야 애들을 차에 태우고 졸음이 쏟아지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수면센터에 23년 10월 수면다원검사를 받았다.


TV로만 보던 수많은 줄달린 센서를 몸에 장착하고 1박 2일에 걸쳐 수면을 분석하는 검사를 했는데 오전에 불을 다 끄고 잠을 자라고 5번을 반복해서 검사를 하는데 나의 경우는 3번만에 검사를 종료했다. 그만큼 너무 명확한 기면증 환자로 결과가 나온 것. 수면잠복기 반복검사에서 평균 수면 잠복기가 일반인은 8분이상인데 나의 경우는 3분으로 REM 수면이 2회 이상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기면증은 무엇인가?

주간에 참을 수 없이 졸리고 렘 수면의 비정상적인 발현을 보이는 질환

이것은 수면 기전의 이상, 특히 REM 수면 억제 기전의 이상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추신경계에서 하이포크레틴을 가진 50,000-100,000개의 시상하부 신경세포의 소실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들이 제시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청소년기에 생기는 하이포크레틴 세포의 자가면역성 파괴 때문에 생기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가설이 세워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면증 [narcolepsy]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신사역에 위치한 수면센터에서 수면학회에서도 활동을 많이 하시는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자녀도 있으시고 일도 하시는거에요? 정말 의지력이 대단하신거에요."라고 말씀 해주시는데 그간 집에서 시어머니와 남편이 잠이 너무 많고 게으르다고 은연중 던진 메시지에서 좀 억울한 누명을 벗는 듯 위로를 받아 눈물마저 핑돌았다.


쏟아지는 잠을 의지로 이겨내려고 그렇게 뺨을 때려가며 깨어있으려고 했던 집안에 부지런한 시어머니로 인해 늘 마음의 부담을 지고 지냈던 기간에 일부분 의학적으로 진단을 받으면서 나 스스로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실상 기면증은 세법상 장애인으로 구분되어 지며, 건강의 가장 기본기인 수면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우울증을 같이 겪는 환자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난 이 기면증을 그냥 내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이제 원인을 잘 알았으니 치료는 어렵지만 처방받은 약을 꾸준히 복용하며 나에게 맞는 형태로 조절해 나가며 수면의 질을 높이고 더 나은 삶을 사는 길을 매일마다 선택해 나갈 것이다. 첫 진단 이후 2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약이 주는 부작용과 우울증, 자율신경계 실조증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 평온한 마음을 찾아나가고 있는 걸 보면 모든 과정이 다 겸허히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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