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 있어 보이는 무언가를 원하는 직책자
벌써 3월이 지났다. 꽃은 하루가 다르게 피고 있고 겉옷은 점점 얇아지고 있다. 그리고 업무 시간의 절반 이상을 할애하는 보고서는 점점 많아지고 있고 각 문서는 두꺼워지거나 너덜너덜해지고 있다. 담배를 안 피지만 늘 담배가 고프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사회 초년생 때 존경하는 위원님 한 분은 보고서의 신이셨다. 고객이 만족하고 있다는 눈빛을 쏘면서 “역시 믿고 있고 든든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어린 내 눈에는 늘 신기했다. 위원님과 일하는 시간 동안 배운 것은 놀랍게도 새로운 스킬이 아니라 고객에게 집중하는 태도였다.
고객이 목적하는 바를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워딩이 중요)
요구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 고객 스스로 원하는 바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그에 맞춰 내가 생각하는 방법은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가? (이때 디테일은 과감한 삭제 필요)
나의 논리는 어렵지 않게 정리되어 있는가? (흔히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서 표현하라는 그 수준)
이 모든 내용들은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는가? (1 page, 1 message)
이렇게 배운 필자는 그렇게 일을 하나씩 해 나갔고, 고객의 생각을 정리해서 어떤 논리와 포인트에 집중하여 말과 글로 전달해야 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매번 깨닫고 있다.
4월의 회사는 1분기를 돌아보고 상반기 예상 성과를 점검하고 하반기 방향과 계획을 확인하는, 소위 “보고의 시즌”이다. 필자가 속한 회사도 그 시즌에 돌입했고 팀장은 매일 영혼을 가는 보고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사장 보고까지 진행되어야 하는 건이라면 팀장과 시니어는 최소 2주는 가족과 이별을 고하고 문서에만 집중하게 된다. 논점을 잘 잡고 있는지, 그에 대한 접근 방향이 목표와 align 되어있는지, 성과 측정 방식이 명확한지 등등… 역시 담배가 고파지는 때이다.
필자도 어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해당 보고서의 완성도는 꽤 높다고 생각했다. 보고의 목적이 명확한 워딩으로 제시되고 있었고 어떻게 추진해야 기존보다 빠르게 이익을 달성할 수 있는지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그래서 어제 오후만 해도 새롭게 확인된 내용만 추가적으로 반영하고 마무리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팀장은 고민이 여전히 많았다.
전날 사전 보고를 받은 임원이 “보고서를 컨설팅스럽게, 있어 보이게 작성하라”라는 커멘트를 주었다고 한다. 참고로 필자의 팀장과 여기에 참여한 시니어들은 모두 컨설턴트 출신들이다. 그래서 상위 보고를 위한 컨설팅스러운, 있어 보이는 보고서가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PPT 1장마다 화려함이 있어야 하고 여백의 미를 최소화해야 하고 이미지는 화려해야 한다. 물론 내용도 명확해야 하지만 콘텐츠보다는 디자인적인 측면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즉 목적에 맞는 내용보다는 강남의 화려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제의 야근은 대리화가의 마음으로 임했다. 그리고 오늘 오전 보고는 무사히 마쳤다. 마지막 코멘트는 더 보기 좋다 였다.
보고는 “보고 받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나의 의지에 반하는 무엇인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부분에 투정을 부리면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천재지변 또는 건강이설로 보고가 취소되지 않는 이상 보고는 진행될 것이고 우리는 직책자 스타일에 맞추어 보고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니 그 시간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기에도 벅차다. 그래서 투정은 보고가 끝나고 나서 하는 것이 개인의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한다.
보고는 "보고 받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미래의 내가 직책자가 되었을 때 어떻게 보고 받는 사람이 될지"를 한 번씩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미래의 내가 어떤 방향과 목적으로 업무를 추진하고 있는지가 직책자의 비전이다. 그 방향에 맞추어 미래의 나는 보고를 지시하고 받아야 하고, 무엇보다 그 지시를 나의 후배들이 기꺼이 따라주어야 한다. 그래야 업무의 효율과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고, 결국에는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 과거/현재의 화려함을 갈구하는 선배와 직책자를 답습하지 말자. 미래의 우리는 그들과 다름을 "보고 문화"에서도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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