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 스스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 나
어쩌다 보니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회사로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다. 특이사항이 없다면 오늘 저녁에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퇴근할 것 같다. 그렇게 하루에 2번씩 타고 다닌 것이 어느덧 8,160번이 되었다. 그리고 24년 1월 1일을 맞이하였다. 새해가 왔음을 즐기고 있을 때 SNS 앱에서 알람 뱃지가 뜬다.
“입사 18년을 축하드립니다~!”
18년을 한 회사에서 다니는 것에 스스로도 새삼 놀랬지만, 이 소식을 사람 동료도 아닌 무생물 앱으로부터 제일 먼저 받게 된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뱉어지는 한마디, “너는 뭘 알고 나를 축하하니?”
수많은 앱으로부터 18년을 축하를 받는 1월 1일부터 2달여간 하루도 쉬지 않고 아팠다. 이렇게 아파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팠고, 회사에서 년마다 갱신해 주는 의료비의 10%를 써버릴 정도로 아팠다. 그 과정에서 살짝 우울해지는 포인트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대상포진에 걸렸다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을 들을 때였다. 이미 2년 전에 걸린 적이 있어 '다시 걸릴 일은 없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를 다시 찾아왔다. 병원에서 40대 중반에 2번 대상포진 걸리는 인구가 0.3% 라는 웃픈 정보를 굳이 공유해 주셨다 (그런데 정말일까?!). 이제껏 살면서 상위 0.3%는 한 번도 챙겨보지 못한 숫자인데 병으로 획득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안식년도 없는 이 회사에서 연차와 휴가를 매년 다 소진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나는 17년을 개근상장받듯 일을 해왔다. 그래도 (성격상) 즐거움을 찾는 매년 각각의 포인트가 있었겠지만, 짬짬이 운동하면서 만든 조그마한 체력이 그나마 버틸 수 있는 포인트가 아니었을 까 한다. 그런데 올해는 일은커녕 일상의 생활도 하기 힘들 정도로 체력이 바닥을 찍고 있다. 특히 급성 위경련이 와서 침대에 누워있을 때에는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라는 자조적인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대상포진이 재방문하신 옆구리의 고통을 참아가며 퇴근길에 오른 어느 날 지하철 플랫폼에서 생각이 하나 스쳤다.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겠다. 이렇게 바쁘게 몸이 늙어 가고 있음을 인정해야겠다. 내 몸이 스스로 늙어가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받아들이자."
영원한 것이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바보 같이 젊음을 바랐나 보다. 언제나 즐거울 수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멍청하게도 항상 건강할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이렇게 하루도 쉬지 않고 아픈 시간을 지내면서 "나의 어리석음"이라는 얼굴을 정면으로 맞이하는 더 아픈 시간을 맞이하게 되어 버렸다. 얼마나 바보 같은 얼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