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다음 날도 같은 시간에

by 상아


식당의 일꾼들은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었다. 문제는 배달 기사였다. 봉고차가 서 있으면 밥도 섰다.


“오늘도 못 나온단디요. 아마 그만둘랑가 봐요.”

“아니, 그라믄 배달은 어쩌라고라? 이라다간 맨날 불안해서 우찌 살겄소. 사장님, 좀 진득허니 붙어 있을 사람으로 구해보소잉.”

“근게 말여. 일단 그 열쇠 줘봐라. 나라도 배달은 가야제.”


몇번 연수는 받았지만, 처음 혼자 잡은 운전대는 돌덩이 같았다. 손바닥에 땀이 찼다. 첫 날, 점심 도시락을 싣고 공장으로 나가다 가로수를 들이받았다. 철판이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심장이 더 크게 울렸다. 다행인 지 그날 사고는 거의 현장 근처라 직원들이 도시락을 직접 가져다 먹었다.


남에게 맡기느니 운전연습을 더 해야겠기에 주말마다 핸들을 잡았다. 다음 번 사고는 물길 옆 좁은 도로에서 연습을 하던 중이었다. 앞서가던 리어카가 비틀거렸다. 핸들을 꺾는 순간, 차가 미끄러지 듯 옆으로 쏠렸다.


첨벙


차문 아래로 바닷물이 차올랐다. 젖은 신발에서 물이 철벅거렸다. 돌아오는 길, 입술을 깨물었다.. 엑셀을 밟는 일은 생각보다 큰 결심이 필요했다.


그 뒤로도, 운전기사가 바뀌어도 자꾸 말썽이 났다.

“사장님, 또 기사가 아프다네.”

“시간은 맞춰야 한께,. 도시락부터 실으셔.”

우여곡절 속에서도 배달 시간은 한 번도 늦지 않았다. 친한 옆 식당 사장님 아들이며 직원이며 어떻게든 불러서 해결했다. 천 명 가까운 식구들의 점심이 그녀 손에 달려 있었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시간은 빠르게도 흘렀다. 취미라 부를 만한 여유는 없었지만, 일하는 재미와 돈 버는 재미는 분명히 있었다. 큰마음을 먹고 당시로서는 값이 꽤 나가던 고급 전축을 들여놓았을 때, 그녀는 오래전부터 벼르던 무언가를 이룬 기분이 들었다.

공연장을 찾을 시간은 없었지만, 밤늦게 당시 유행하던 신형원의 노래를 틀어두면 조립식 건물인 구내식당 한편이 울림으로 가득찼다. ‘개똥벌레’ 나 ‘외사랑’ 같은 노래가 울리면, 텅 빈 식당이 잠깐 공연장이 되었다. 외롭다는 말을 꺼낼 틈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노랫말은 이상하게 가슴에 붙었다. 그 몇 분이 하루의 끝이었다.

자식들은 나중에 그 전축과 수많은 엘피판을 그대로 두었으면 지금쯤 값비싼 희귀템이 되었을 거라며 웃었지만, 그 시절 그녀에게 그것은 이미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었다.


솥 앞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집에서 비는 자리도 늘어났다. 둘째의 졸업식에 가지 못했고, 막내가 방학식 날 불 꺼진 기숙사에 혼자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불을 더 세게 지폈다. 미안하다는 말을 삼키는 대신, 더 오래 일했다.


아이들은 스스로 컸다. 단칸방에서 연탄불을 갈고 도시락을 싸고, 제 힘으로 책을 폈다. 하지만 2년 뒤, 그녀는 아이들을 방세칸짜리 아파트로 옮겨 앉혔다. 아이들은 차례로 대학 합격증을 들고 돌아왔다.


“엄마, 붙었어.”

막내는 장학금 통지서를 함께 내밀었다.
그녀는 종이를 한참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접어 서랍에 넣었다.

“잘했다.”


고맙다는 말보다 먼저 떠오른 건 미안함이었다. 곁에 있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형편이 조금만 더 나았더라면,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 집안 사정을 먼저 계산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고 싶은 것 앞에서 스스로 한 발 물러서지는 않았을 텐데.


그녀에게 배움은 학위가 아니었다. 세상이라는 거친 물살 속에서 아이들을 덜 흔들리게 해줄 무게추였다. 그래서 더 벌고 싶었다. 더 오래 일하고 싶었다.


다음 날도 같은 시간에 불을 지폈다.

후회를 덮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 앞길을 조금이라도 넓혀 두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오늘도, 농장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그녀는 핸들을 더 단단히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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