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생이 농막을 찾아왔다. 예전 매실농사도 함께 했고, 매실 농사 그만 둔 후 땅을 함께 보러다녔던 이다. 이번에 옆 동네 한옥을 한채 장만해서 수리를 해서 이사올 거라 했다. 허브농사도 짓고, 글도 쓰겠다 했다. 그이가 만든 허브차는 뭔가 특별했다. 캐모마일 차를 마시며 옛날 얘기 하다보니, 예전 매실 농사 짓던 얘기가 자연스레 흘러 나왔다.
그 무렵, 사람들은 매실을 돈 되는 작물이라 불렀다. 그녀는 돈보다 나무를 먼저 보았다.
양항의 매실밭 주인 부부는 나무를 심을 줄은 알았지만 가꾸는 법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힘들기도 했고, 열 달 뒤에나 돌아올 수확을 위해 초기에 몇 백만 원을 들이는 일을 아까워했다. 수확이 줄고 일은 더 늘면서, 결국 매실밭을 내놓았다. 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임대를 준다기에 은화씨는 그 곳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만팔천평. 초보가 쉽게 덤빌 규모는 아니었지만, 은화씨는 규모가 있어야 효율이 높아진다며 덜컥 계약부터 했다.
근처 장천대학교에서 ‘농촌융복합산업리더 교육’을 한다기에 신청했다. 매실을 가꾸는 기술을 알려주었고 농산물 생산에 그치지 않고, 가공제조하고 체험 관광 서비스까지 연결시키는 6차 산업에 대해 알려주었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선생이고 학생이고 이전의 것을 답습하기보다 새로운 사업과 문화를 도입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대화의 결이 남달랐다.
은화씨는 학교에서 배운 기술에 더해 예전에 지인을 따라 어깨너머로 배운 기억을 더듬어 산비탈 매실을 가꾸기 시작했다.
농사는 결국 미래에 대한 투자였다. 거름을 얼마나 주느냐, 가지를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다음 해 수확이 달라진다. 전해 전지를 제 때하지 않으면 매실 크기도 작고 가지가 하늘 높이 자라버려 딸때 수고로움이 여간이 아니다. 그녀는 계산기를 두드리기보다 땅을 믿었다. 비싼 퇴비를 아끼지 않았고, 전지 작업도 미루지 않았다.
매일 새벽 어스름이 걷히지 않는 산에 올라 나무에 물을 주는 일은 아침기도처럼 신성했다.
큰딸이 웃으며 말했다.
“울엄마 산에 오르실 때 보면 홍길동 같으셔. 당뇨가 있으시니 발 상처를 조심해야 할텐데, 맨발에 장화신고 매일 오르시네. ”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다음 해 수확량은 두 배로 늘었고, 매실 가격도 해마다 올랐다. 삼 년쯤 지나자 결과가 분명해졌다.
해가 갈수록 시스템도 갖춰졌다. 호스를 나무 사이에 연결해서 혼자서도 물을 흠뻑 줄 수 있게 만들었다. 비가 적은 봄에 특히 유용했다. 퇴비를 산비탈로 올리고 수확한 매실을 끌어 내리는 일은 너무 벅차서 힘좋은 남자 일꾼을 계속해서 구해야했다. 제 때 일손을 찾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고심하다 레일을 설치했다. 초기비용은 들었지만 앞으로 5~6년을 내다보면 투자할만 했다.
그 때가 삼 년 차 가을이었다. 퇴비 전지, 월동 준비를 마치고 겨울이 되자, 땅주인이 찾아왔다.
“석여사님, 내가 이 산을 팔게 됐어요.”
“예? ”
“ 매수인이 매실 사업에 관심이 있어 직접 농사를 지을 거라는데, 계약은 올해까지만 해야 할 거 같아요.”
거름 냄새가 아직 손끝에 남아있는데, 주인은 남의 일 말하듯 등을 돌렸다.
남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일이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그녀는 그때서야 받아들였다. 억울했지만 붙잡을 수는 없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마음을 정했다.
내 이름으로 된 땅을 사야겠다고.
이야기가 거기까지 이르자 강선생이 가야겠다며 가방을 챙다.
“참 언니, 얘기 들었수? 그 때, 언니가 매실밭 나온 후, 매실 가격이 많이 떨어졌쟎우. 매실밭 주인이 그 큰 농사도 감당을 못했던 거 같더라고. 하긴 그 비탈진 산에서 일하는 거 아무나 하겠어? 그것도 만 팔천평이나 되는 산인데 말이우. 그 농장 다시 매물로 나왔대.”
그 이야기는 오래 붙잡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삶은 다른 자리에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