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밭을 떠나야 했을 때였다.
그녀는 따뜻한 남쪽으로 가기로 했다. 허브차나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서 시골집을 알아보던 강선생과 차를 타고 남강 반도를 돌아 다녔다. 사람이 줄어든 남강의 마을들에는 농사지을 이가 없어 내놓은 묵밭과 묵산이 많았다. 한 오지 마을에서 그녀는 마음에 드는 땅을 만났다. 산중턱에 오르면 찰랑찰랑 윤슬이 반짝이는 호수가 보였다. 그녀가 원하던 바다는 아니었지만, 물이 있었고 거친 땅은 가격이 저렴했다. 사람의 흔적이 희미한 두 칸짜리 오래된 한옥도 남아 있었다. 농막으로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소형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마을길 끝에 매달린 땅을 보고 사람들은 상품 작물을 할 곳은 아니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양항에서 이미 배운 것이 있었다. 길이 없으면 만들고, 땅이 험하면 깎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매실로 번 돈은 아직 충분하지 못해, 바닷가 집은 잠시 미뤄두었다. 농막에서 먹고 자며 농장을 일구기 시작했다.
마을 반대편, 인가가 없는 산쪽을 바라보며 그녀는 중장비 기사에게 말했다.
“여그서부텀 좀 밀어주소. 트럭이 들어오게.”
“사모님, 이 비탈이 생각보다 거시기합니다. 쉽지 않겄어요.”
“해 봅시다요.”
굴착기가 산허리를 긁어냈다. 흙이 무너져 내리고 돌이 굴러 떨어졌다. 구경 나온 이들이 수군거렸다.
“여자가 겁도 없이 배짱이 대단허네.”
“금방 겁묵고 접어불겄지라.”
며칠 뒤, 덤프트럭이 먼지를 일으키며 올라왔다. 그녀는 길 한가운데 서서 트럭을 맞았다.
“오네. 들어오네.”
기사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길이 나자 건조기와 대형 냉장고가 들어왔다. 묵산은 그제야 농장의 모양을 갖추었다.
이 즈음 은화씨는 자주 피곤했다. 두 시간만 일하면 누워 쉬어야 했다. 그래도 매실밭보다는 훨씬 힘이 덜 가는 농사였고, 인력시장에서 구해야하는 남자 일꾼들 보다는 동네 할머니들과 일하는 건 훨씬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삼월이 되자 밭은 먼저 움직였다. 흙을 밀어 올린 고사리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이건 내일 되믄 퍼져불겄다.”
그녀가 순을 손으로 눌러 보며 말했다.
“오늘 안에 꺾어야 쓰겄네.”
허리를 굽혀 10센티미터 남짓한 순을 톡, 꺾었다. 손끝에서 툭툭 소리가 이어졌다.
마당에서는 무쇠솥이 걸렸다.
“나무 좀 더 넣어보소잉!”
장작이 타들어가며 아궁이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고사리 농사는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특히 밭에서 쭈그리고 앉아 10센티미터 남짓한 작은 고사리 순을 꺾는 일은 두 달안에 끝내야했다. 그것도 비가 오지 않는 날을 골라 고사리순이 피어버리기 전에 정확한 타이밍에 꺽어야 했다. 게다가 한편에서는 삶고, 말리고, 포장하는 과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했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어 그녀는 마을의 예순, 일흔이 넘은 할머니들을 불러 모았다. 몸이 기억하는 노동으로, 함께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사리는 대형 마트로, 도시의 자식들에게로 흘러갔다.
사람들은 이 농장이 공장 같다고 말했지만, 그녀에게 이보다 더 사람다운 풍경은 없었다.
평생 남을 위해 밥을 짓고 길을 닦아온 사람이, 이제는 자기 땅에서 자기 손으로 일할 자리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실이 돈을 벌기 위한 작물이었다면 고사리는 사람을 불러 모으는 작물이었다. 그리고 자담 농장에서 그녀는 스무명의 하루를 모으는 사람이 되었다.
무쇠솥 아래의 장작불은 그녀가 끝까지 지키고 싶은 불이었다. 그 불 위에서 삶아낸 국수처럼, 이곳에서의 노년도 서로 엉겨 붙어 조용히 데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