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바다의 집, 멈춰버린 엔진

by 상아


그녀는 늘 생각했다. 인생 마지막 정착지는 바다여야 한다고. 지칠 때마다 찾았던 바다. 쉼 없이 물결치고 때로 거칠게 일렁이지만, 결국 모든 것을 받아주는 그 넓은 품. 농장이 자리를 잡고 삼사년이 지난 후, 마지막 숙제처럼 남은 집자리를 보러다녔다.


그리고, 남강 안천마을 바닷가에서 마당이 넓은 집을 찾았다. 위압적으로 내려다보지 않고 눈높이에서 찰랑거리는 바다. 집은 작지만 넓은 마당과 창고. 그리고 감나무 두 그루. 그녀는 비로소 돌아갈 곳을 가진 사람처럼 숨을 내쉬었다.


두터운 콘크리트 더께를 걷어내고 난 붉은 땅에는 잔디를 심었다. 그리고 하우스 위로 포도 넝쿨을 올렸다.

바둑이 토미는 적어도 이 집 안에서는 목줄없이 마음껏 뛰어다녔다. 그녀의 손만 닿으면 식물들은 생명력을 내뿜었다. 화분에 꽂아둔 수국 삽목은 다음해 풍성한 대형 꽃이 폈다. 혹시나 하고 심어둔, 손가락만한 남천 묘목은 이태만에 일미터가 넘게 숲을 이뤘다. 아침저녁으로 한시간씩 물을 줬다. 마당엔 늘 그녀의 발소리가 있었다.


시골에서 농장 하려면 차는 필수였다. 고사리 농장을 마련한 이듬해 마련한 낡았지만 튼튼한 중고 무쏘가 그녀의 출퇴근을 책임졌다. 젊은 날의 사고가 마음에 남아 있었지만 운전대를 놓을 수는 없었다. 시동을 걸면 엔진소리가 심장박동소리 같았다. 이른 새벽 해안도로를 달리며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생각보다 가벼웠고, 그 길은 다시 일터로 이어져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아직 쓸모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나이가 몸을 앞지르지 못한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은 시나브로 나이 들고 있었다. 쉰에 시작된 당뇨약은 한 알에서 네 알로 늘어났다. 가끔 관자놀이를 찌르는 두통이 간헐적으로 찾아왔다. 그럴 때면 그녀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잠시 눈을 감았다.

‘어제 일을 무리했나.’

‘바람이 차서 그렇겠지.’

통증의 이유는 늘 몸 바깥에 두었다. 약은 제때 먹지 못하는 날이 잦았고, 병원에서 들은 말들은 오래 남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이상 신호들은 ‘나이 들면 다 그런 것’이라는 말 속에 묻어두었다.


균열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서울 막내 집에 머물던 날, 소파에 반쯤 드러누워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는 그녀에게 아들이 다가왔다.

“엄마, 어디 안 좋아요? 어제 서울 올라오실 때부터 뭔가 집중을 못 하시는 것 같아.”

“아니야, 좀 피곤해서 그래. 잠깐 쉬면 괜찮아.”

“아니, 병원 가봐요. 내일 내려가는 거 하루 미루고 근처 큰 병원에 같이 가봐요.”


당장 내일 농장에서 일할 사람을 소개받기로 했다며 우기는 그녀를 막아세운 건 중환자실 수간호사 출신인 동생이었다. 언니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간파한 동생은 곧장 조카들에게 연락해 종합병원 정밀 검사를 예약하도록 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의사는 그녀의 머릿속 모세혈관들이 소리 없이 터지고 아문 흔적이 서너 군데나 있다고 했다. 그녀는 몰랐지만, 몸은 이미 몇 번이나 조용히 무너졌다가 스스로를 봉합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병원에 다녀온 며칠 뒤, 차가 논두렁으로 굴러떨어지는 사고가 났다.예전에도 몇 번 사고가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자식들은 운전을 그만 하시라고 설득했다. 이 차가 없으면 농장 일도 끝이라는 걸 알았기에, 그녀는 아직 몸을 쓸 수 있을 때 딱 두 해만 더 버텨보려 했다.


삼남매가 바닷가 집에 모였다. 거실 탁자 위에는 병원에서 받아온 진단서와 약봉지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엄마, 제발 좀! 의사가 머리 속 혈관이 몇 번이나 터졌었다잖아. 운전하다 사고라도 나면 그 땐 정말 어쩌려고 그래요? 농장도 이참에 접으셔야할 것 같아요.”

큰 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은화씨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 채 묵묵부답이었다. 마당 한편에는 그녀의 분신 같은 노란 무쏘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번뜩이고 있었다.

“그냥. 일년만 더 해보께. 일년 후에는 꼭 팔란다.”

“작년에도 일년만 더 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믄, 나보고 집에 틀어박혀 병자처럼 지내란 말이여? 차없이 시골서 못 살어야. 일년만 더 한다고.”

“사고 났었잖아요! 논두렁에 구른게 벌써 몇번째야. 차없이도 다닐 수 있는 병원으로 옮겨야겠어요. 일단 진단서부터 챙기고”

둘째가 탁자 위 서류를 정리하려다 멈칫 했다.

“어….?”

첫째와 막내가 둘째의 시선을 따라 서류를 들여다 보았다.


“중고차량구입 계약서?”

둘째가 계약서를 뒤집었다.

“작년…이네?”


세 남매의 시선이 동시에 소파에 앉아 있는 은화씨에게 꽂혔다. 그녀는 여전히 바다만 보고 있었다.

일 년 전, 전봇대를 들이받아 폐차 직전까지 갔던 차를 자식들 몰래 처리하고, 전국을 뒤져 똑같은 연식의 노란 무쏘 중고를 구해다 놓았던 것이다. 색이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모를 거라 생각했다. 운전대를 잃는다는 것은, 삶의 방향을 빼앗기는 일과 다르지 않았으므로.


자식들은 이제 정말 끝이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결국 그녀는 차 키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아따, 갖고가 부러라. 인자 나도…. 엔진소리가 겁난다.”


평생 일구어온 농장도 정리했다. 농장을 판 돈으로 집 대출을 모두 갚고 나자, 손에 남은 것은 평생의 숙원이던 바닷가 집 한 채뿐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집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했다. 일터와의 탯줄이 끊기자, 새벽 네 시에 눈이 떠져도 갈 곳이 없었다.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파도는 어제와 같은 소리를 냈다. 그러나 풍경만으로 하루를 살아낼 수는 없었다.


평생을 깨워온 것은 새벽 공기가 아니라 해야 할 일이었다. 평생에 걸쳐 찾아온 바닷가 집에 이르자, 그 소리가 멎었다.


바다는 쉼없이 움직이는데, 그녀의 하루는 아직 출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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