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아들의 입학식이 있는 날이다.
둘째 아들의 전학과 맞물려
바쁜 등교전쟁을 치르고
서둘러 입학식으로 향했다.
(안타깝게 두 아이 모두 실내화 가방을 놓고 갔다..)
우리 집은 꽤 가파른 언덕에 위치해
눈이 오면 집 앞에 주차하기가 어렵고
이 길을 오르고 내릴 때면 몇 번은 쉬어줘야 한다.
오를 땐 힘들어서..
내려갈 땐 가속방지를 위해..
그때다.
한 할머니의 곡소리가 들린다.
"아이고.. 아이고..."
넘어지신 모양이다.
엉덩이를 잡고 삐뚤빼뚤 걸으신다.
"할머니 119 불러드릴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고마워요"
생각보다 할머니가 괜찮으신 모양인가 보다.
다행이다.
방금 넘어지셨다는 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너무도 차분한 목소리로 인자하게
따뜻하게 답해주셨다.
한숨 돌리며 다시 내리막 길을 걷던 중
들려오는 할머니의 절규.
깨져버린 지팡이 손잡이 부분을 집어던지며
할머니가 한탄을 하고 계시다..
"에이.. 에이..."
무엇에 대한 화냄일까..
정말 따뜻한 할머니 같으신데..
나이 들어가는 건
좋은 성격도 당해내기가 어려운가 보다.
기본적인 기능을 잃어가는 내 모습이
얼마나 받아들이기 어려울까...
박사과정시절 노인을 대상으로 연구를 한적 있는데
그때 다루었던 설문,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fear of fall)"을
묻는 설문이 떠올랐다.
그때 처음 알았다.
노인들에게는 넘어지는 것이 큰 일이구나.
두려움이구나..
우리 외할머니도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을 크게 다치신 이후로
줄곧 요양원에 계신다...
입학식에 도착했다.
졸업식보다는 한산한 입학식이다.
한 할머니가 조심스레 나에게 질문을 하신다.
"영어 학원이 어디가 좋아요?
아이 엄마는 바빠서 제가 대신 왔는데, 뭐 하나도 몰라서요..."
뭐라도 적어 줬으면 하는 마음이신지,
불쑥 검정 모나미 볼펜을 내미신다.
"할머니,
네이버 지역카페에 들어가서 찾아보시고요,
April 어학원, Abalon 어학원...."
내 머릿속에 있는
몇 안 되는 굵직한 영어학원 이름을
노트 한 장 쭉 찢어서 적어드렸다.
다행히 이날 내 가방에는 다이어리가 들어있었다.
"지금 영어 하면 좀 늦었지요?
우린 당진에서 이사를 와가지고..."
이젠 할머니께서 걱정까지 털어놓으신다.
"할머니 늦지 않았어요 지금도."
내 자식 영어 공부는 늦었다 생각하면서도
할머니께는 늦지 않았다 안심시켜 드렸다.
할머니를 뵈니
손주를 위해 용기를 내신 모양이다.
그 용기와 사랑이 나를 흠뻑 적셨다.
왠지 모르지만
두 분이 오늘 하루 종일 마음속에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