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이야기 11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진 시기 난 나의 첫 번째 반려견 토리를 하늘나라에 보냈다. 그 후에 소피를 데려오고 나서 소피와 보내는 시간이 이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모든 걸 바꿔 놓았다고 해도 될 판이었다. 그만큼 나한테 토리의 죽음은 힘들었다는 얘기다.
토리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의 첫 반려견을 하늘나라로 보낸 뒤에 강아지 한 마리를 더 데리고 와서 아주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 강아지가 지금의 소피다.
소피와 함께 살아가던 중 문득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한국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딱 하나, 강아지 때문에
한국을 가지 못했다.
내가 강아지를 총대를 메고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 그리고 강아지를 가족들에게 맡겨놓고 간다는 건 나한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허락을 할 수가 없었다.
내 허락 없이는 가족들한테 절대로 맡기지 않는다는 게 내 철칙이기 때문에 내가 허락을 할 수가 없다.
사실 나는 나의 첫 반려동물인 토리를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에 키우는 동안엔 한국을 가고 싶어도 가지 않겠다고 이미 굳게 마음먹고, 내가 나한테 약속을 하고 토리를 데려온 것이기 때문에 내가 먼저 그 약속을 깰 수는 없었다.
내가 집에 있지 않으면 토리가 가족들 보다는 나를 찾을게 뻔했기에 아예 갈 수가 없었던 마음이 컸고 서로를 향한 믿음이 강했기 때문에 나는 이때까지 한국에 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보통 강아지가 아닌 다른 동물들도 맡기는 데에는 병원비만큼이나 돈이 많이 들어가 맡기는 데에도 쉽지만은 않다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돈이 많이 든다는 걸 알지만 그런 걸 떠나서 그렇게 해야만 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전문가에게 내 강아지 소피를 맡기고 가야 내가 편안하게 갈 수가 있었다.
만약에 소피가 나의 첫 번째 반려견 토리라면 나는 똑같은 방법을 썼을 것이고, 더더욱 한국을 가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토리는 나의 첫 반려견이었으니까 토리가 하자는 대로 모든 걸 다해주고 잘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토리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나서 바로 1년이 지나,
두 번째로 나를 찾아온 강아지 소피를 키우고 있었고 3년이 지나고 나서 이제는 충분히 소피도 컸고, 한국을 한번 갔다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히 친할머니랑 외할머니, 친할아버지 산소랑, 가족들 모두를 보지 못할 뻔했을 것 같은 생각에 소피 걱정까지 뒤죽박죽 걱정할 거리가 많았지만, 소피를 데이케어에다 맡기고 가면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한국에 가기 전,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소피를 어디에 맡길지, 누구한테 맡길지, 결정하는 일이었다.
가족들에게 맡기고 가는 건 왠지 불안했기에, 내가 소피를 데려가던 데이케어를 찾아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 선택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던 것 같았다.
사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두고 여행을 떠나는 일은 결코 내겐 쉽지 않다.
하지만 돈이 많이 들더라도 아이가 그곳을 편안해하고, 강아지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잘 놀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면 그보다 나은 선택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정을 해서 나는 오랜 시간 미뤄왔던 한국행을 드디어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출국 전에는 준비할 것이 참 많았다.
귀여운 수면안대며 여권 케이스, 담요, 소피에게 필요한 물건들까지 꼼꼼히 챙기고, 만료된 여권도 새로 만들었다.
캐나다 국제공항에 가는 당일 날, 아침 일찍 소피를 데이케어에 데려다주고 나는 아빠랑 공항으로 향했다.
긴 줄을 지나 티켓팅을 마치고, 사람들로 가득 찬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마침내 11시간을 날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아빠가 공항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가자고 해서 저녁을 먹고 난 뒤, 바로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저녁이 문제였다.
버스 안에서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탈이 나고 말았다.
참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안 되겠어서, 아빠에게 부탁을 해 차를 세워 휴게소에 들러 겨우 겨우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었다.
동대구역에 도착했을 때, 작은 고모부가 마중을 나와 계셨고, 우리는 작은 고모 댁에서 머물게 되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리고 계시던 엄마와 할머니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보고 싶은 마음, 힘들었던 시간, 그리웠던 마음 그리고 다시 만났다는 기쁨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나도 나의 기분을 어쩔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작은 고모 집은 우리 집보다 아담했지만 오히려 그게 더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마음이 참 편안했다.
한국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생각에 마음이 설레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3주간의 한국 생활은 정말 꿈만 같았다.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고, 그동안의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었다.
온천에 가서 캐나다에서 묵혀 왔던 때를 밀며 시원하게 정리도 했고, 한국 돈도 필요할 때 직접 써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작은 고모 집을 살짝 나왔다가 온 가족이 충격에 놀라서 나를 찾아 헤매는 작은 소동도 있었다.
엄마의 고향 의성에 가서 말도 보고, 말을 만져도 보고, 동물카페에서 다양한 동물들과 교감했던 부산 여행, 아빠의 초등학교 1학년 친구의 고향 진해 방문, 경주에서 엄마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던 기억들까지...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특별한 시간이었다.
말을 만났을 땐 팔을 살짝 물리기도 했지만, 동물을 좋아하는 내겐 그런 건 큰일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맛본 회- 부시리, 방어, 문어 같은 신선한 해산물들은 캐나다에서는 먹기 힘든 것들이라, 엄청나게 맛있었다.
캐나다에선 주로 연어나 참치로 만든 초밥이 대부분이라, 그 차이가 더욱 느껴졌다.
연어나 참치로 만든 회도 보통 캐나다에서 맛볼 수 있긴 하지만
주로 그것들로 만든 초밥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어느 식당에 가면 메뉴에는 연어랑 참치 회덮밥이 있긴 한데 그건 그걸 아는 한국사람들만 먹지 외국 사람들은 아예 모른다. 모든 식당에 이런 회덮밥이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식당들은 이런 게 없다.
어쨌든, 가장 맛있었던 건 뭐니 뭐니 해도 이모와 작은 고모의 집밥이 최고로 맛있었던 것 같다.
그 음식을 먹으면 속이 부대끼지 않고 너무 편안해서 좋았다.
그렇게 한국에서 가족들이랑 함께하던 행복한 시간이 흘러 다시 10시간의 비행을 끝으로 캐나다로 돌아왔고,
나는 시차에 적응을 하지 못해 약도 늦게 먹어서, 부모님의 꾸중도 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지나고 정신이 번쩍 들고 나니, 내게 남는 건 따뜻한 추억들 뿐이었다.
비록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두고 태평양을 건너 여행을 떠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언젠가 또 한 번, 소피를 맡기고 한국을 다시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생긴다.
그때도 소피가 또 잘 지낼 수 있도록 더 단단히 준비해서, 그리운 사람들과 한국의 풍경들을 다시 한번 마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