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제주도에서 일 년 동안 교환 근무를 한 적 있었다. 부임한 학교 운동장에는 초록빛 천연 잔디가 깔려 있고 낮은 돌담너머로 귤밭이 노랗게 펼쳐져 있었다.
첫 한 달은 내가 근무하던 학교와 다른 시스템과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이국적인 풍경, 음식, 기후 등에 적응해 나갔는데 한 가지는 예외였다. 나를 빼고 모든 교직원이 제주도 출신이라 사적인 자리에서는 물론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토박이말을 사용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라 통역을 하지 않으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 일어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배워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그러기가 눈치보였다. 자연 그들의 대화에 끼기가 힘들어졌고 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나 스스로가 소외되고 왕따 당하는 느낌이 들어 씁쓸했다. 일 년으로 끝나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정서적으로 무척 힘들었으리라.
지금도 어느 교실에서인가는 왕따가 일어나고 있다. 왕따는 상대방보다 내가 더 우월하다는 그릇된 의식에서 비롯된다. 미워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없는데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다 보면 그래도 되는 것인 양 죄의식이 없어진다. 굳이 이유를 찾으라면 체격이 왜소하다거나, 공부를 못하거나 눈치가 없어서 정도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왕따를 당하는 아이는 잘못이 없다.
왕따는 학교 폭력처럼 사건이 터지지 않으면 좀체 수면 위로 드러나기 힘들다. 누군가 나를 비웃는다고 해서,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고 해서 가해자로 지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신체 폭력이나 언어폭력처럼 객관적인 증거가 분명한 경우는 오히려 문제해결이 선명할 수가 있다.
한 아이가 왕따를 당하는지 아닌지 담임은 금방 알 수 있다. 왕따 당하는 아이들의 특징은 대개 비슷하다.
우선 교사 주변을 자주 맴돈다. 조금이라도 틈을 열어 보이면 지우개를 가져오지 않았다거나, 배가 아프다는 이유를 들어가며 말을 걸어온다. 이때 “짝꿍한테 빌리렴.” , “보건실에 가보렴.” 하면 곤란하다. 그 아이는 지우개가 필요해서 온 게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알리기 위해 온 것이다. 구조를 요청하러 온 아이의 신호를 무시하면 그 아이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게 된다.
이 아이들은 항상 우울한 얼굴로 혼자 다닌다.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집에 갈 때도 늘 혼자다. 처음에는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다 시간이 지나면 체념해버린다. 사려 깊은 교사는 조금이라도 그 아이를 이해하는 친구와 짝꿍을 만들어준다. 교실에서는 당연하고 밖으로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선생님, 친구랑 같이 다니면 안 돼요?”
체험학습 날이면 으레 듣게 되는 소리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끼리끼리 어울리고 싶은 욕구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 들어주기는 힘들다. 한 명이라도 고립되는 아이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 눈에 보이는 교실은 네모지만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가 존재한다. 먹이 사슬의 맨 꼭대기에는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똑똑한 아이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교사의 신뢰를 한 몸에 받으며 반 분위기를 좌지우지한다. 반대되는 쪽에는 상황판단이 느리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맨 꼭대기 아이들의 표적이 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되도 반항하거나 따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대다수는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지 본능적으로 알고 움직이는 아이들이다. 이들의 위치는 고정적이지 않으며 맨 위로 올라갈 수도 있고 밑바닥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언제든 왕따가 될 수도 있는 유동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이러한 수직 관계는 결코 아이들이 원한 게 아니다. 직장, 군대, 인터넷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어른들의 혐오의 감정을 답습하고 흉내내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러면 안된다는 훈계는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해인가 6학년 영어 전담을 할 기회가 있었다. 전담은 담임에 비해 생활지도에 따른 어려움이 덜한 편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적어 라포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지도에 어려움이 따른다. 적절한 카리스마와 부드러움, 때로는 밀고 당길 줄 아는 스킬이 요구된다.
여러 반을 다니다 보면 그 반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읽혀진다. 어떤 반은 너무 활기가 없어 수업이 지루하게 흘러가고, 어떤 반은 너무 들떠있어서 차분하게 수업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노은이 반은 후자에 속했다. 몇몇 아이들이 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는데 교사인 나도 그 아이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고 긴장의 끈을 조였다. 그렇지 않으면 훅 들어와 난감한 상황을 만들었다.
5월 중순쯤이었다. 교실에 들어가니 자리 배치가 이상했다. 노은이 주위로 책상이 텅텅 비어있었는데 눈여겨보니 노은이 혼자 외딴 섬에 갇힌 모양새였다. 암묵적인 동의하에 누군가 노은이를 따돌리려고 벌인 행동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다. 싸늘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훑어보았다.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주동자를 찾아내려면 찾아낼 수는 있으나 참았다. 그렇게 해본들 당장 속이 시원할지 모르지만 노은이한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편들어주었다는 이유로 더 교묘하게 따돌릴 수도 있었다. 아이들이 왕따를 당하면서도 부모나 교사에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후유증이 두려워서다. 타이르고 혼낸다고 금방 달라질 것 같으면 애초에 그런 일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노은이를 자주 살펴봤다. 굳게 다문 입술과 어두운 표정,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 내내 걸렸다. 왕따를 가하는 아이와 당하는 아이,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동조하는 아이,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무표정한 방관자들이 한데 섞인 불편하기 짝이 없는 수업이었다. 그날따라 왜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지던지. 겨우겨우 수업을 마치고 반장을 슬쩍 불러내 물었다.
“대체 노은이한테 왜 그러는 거야?”
“너무 지저분하잖아요?”
반장이 일 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게 잘하는 행동이냐고 하자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담임 시간에는 그렇지 않고 영어 시간만 그런다고, 아이들의 잘못이라기보다 노은이가 원인 제공을 했기 때문에 그런다고 했다.
“원래대로 돌려놔.”
어이가 없어 한마디 하고 돌아섰다.
다음 시간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고작해야 일주일에 두 번밖에 안 보는데 그사이 노은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알 길 없었다.
공교롭게도 다음 해 나는 노은이 동생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동생은 언니와 달리 붙임성도 좋고 또랑또랑했다. 가정 형편이 썩 좋지 않다는 것, 아빠없이 엄마와 할머니랑 같이 산다는 것 정도를 알 수 있었다.
하루는 행정실 직원이 찾아와서 노은이 동생 급식비가 많이 밀려 있다는 말을 했다. 부모에게 여러 번 전화를 했는데 일부러 받지 않는 것 같다며 담임인 내게 협조를 구했다. 돈 문제로 학부모에게 연락해달라는 말에 난감해서 몇 번 거절했다. 그러다 혹시 놓치는 게 있지 않지 않을까 싶어 직접 집에 가보기로 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다른 방도를 찾아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미리 문자로 찾아뵙겠다는 연락을 했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혼자 찾아갔다.
노은이네 집은 주택가 골목에 있는 낡은 양옥집이었다. 대문 앞에 빈병과 박스가 빼곡하게 쌓여있었다. 노은이 할머니가 폐품을 모아 파는데 마땅히 보관할 장소가 없어서 거기 둔 거라고 했다. 보기에 위태롭고 냄새도 심하게 풍겼다.
그날 노은이 엄마는 만나지 못했다. 노은이도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아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노은이를 이해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노은이가 온전한 돌봄을 받지 못했을 거라는 것, 자존감이 많이 낮은 상태였다는 것, 그렇다고 왕따를 당해도 된다는 이론은 성립되지 않는다.
노은이가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왕따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경쟁 사회의 민낯을 아이들이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왕따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아주 미세한 신호로부터 시작해 무수한 경고음이 우리 주변을 진동한다. 우리 사회가 함께 그 안타까운 두드림을 살펴보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생님, 저 노은이예요.
오늘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하루였어요. 아침에 학교 가자마자 책을 읽고 공부 하고 혼자 화장실에 다녀오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어요. 집에 와서는 그나마 고양이 추르가 있어서 외롭지는 않아요.
아침에 학교 갈 때 저는 속으로 항상 빌어요. 오늘은 다른 날과 달랐으면, 특별한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요. 저에게 특별한 일은 누군가와 수다를 떨고 밥도 같이 먹고 운동장을 나란히 걷는 일, 집에 가서 못다 한 이야기를 카톡으로 주고받는 일이예요. 다른 애들에게는 쉬운 일이 저한테는 어려운 숙제처럼 되어버렸어요.
아참, 체육 시간에 일이 있기는 했어요. 다른 날은 애들이 절대 저한테 공을 던지지 않아요. 그런데 오늘은 반장이 “야, 노은이한테 던져.”한마디 던지자 집중적으로 공을 퍼붓는 거예요. 얼마 안가 공에 맞아 죽기는 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경기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피구 경기 끝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어제 제가 왕따 당하는 모습을 보고 선생님이 안타까워하셨잖아요?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다 반장하고 이야기하시는 장면도 봤어요. 어쩌면 그 일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이 저에게 말을 걸어주고 걱정해주시는 점 고마워요. 누구라도 제 편이 한 명 있으면 좋겠는데 선생님이어서 위안이 돼요. 그렇지만 한계는 있어요. 선생님은 친구가 아니고 선생님이니까요.
6학년이 되어서 제가 투명 인간으로 지내자 담임 선생님이 말했어요.
“혼자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둘일 때가 더 좋지.”
모르는 거 아니고 노력을 안 해본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못 본척 모르는 척 외면하는 아이들에게 억지로 다가가기는 힘들어요.
저도 처음부터 왕따는 아니었어요. 4학년 때 세 명이 친하게 지냈는데 어느 날 그 중 한 명이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했어요. 그 친구는 목소리도 크고 말로 상처를 잘 주는 아이였어요. 그 뒤로 저는 뒷담화 잘 하는 아이로 소문이 났고 아무도 제 옆에 오지 않았어요.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슬프고 힘들었는지 몰라요. 점점 안으로 웅크러들고 오해받지 않으려고 말을 안 하게 되었어요. 한 번 그런 경험을 하니까 더 몸을 사리게 되었고 나중에는 저 혼자가 더 편하게 느껴졌어요.
엄마한테 왜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냐고요?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엄마를 저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 말을 들어줄 여유도 없고 대신 해결해 줄 수도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학교 가기 싫을 때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결석을 했어요. 6학년이 끝나고 졸업을 한다고 해서 왕따에서 해방되는 건 아닐 거예요.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 도와주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슬픔을 얘기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해요. 더이상 투명 인간으로 살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누군가 조금만 도와준다면 천천히 일어나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