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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꿈 Nov 04. 2022

달이 차올랐어

차오른 마음과 따스한 온기


달이 차올랐어

 무언가 끌리기 시작하면 지구 끝까지 끌어당겨진다. 그리곤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 그만큼 다른 것에도 쉽게 눈을 돌리는 탓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스스로 한 약속이 있다. 순우리말 날짜 세는 방법대로 딱 ‘그믐’까지 써보자.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쓰다 언제 그믐이 될까 했는데 글을 쓰기 시작한 지 8주가 됐을 무렵 30번째 글을 써 올렸다. ‘그믐’이 의미하는 음력으로 달의 마지막 날 그리고 30이라는 숫자 때문인지 마치 달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린 것 같다. 내가 조금씩 채우던 달이 꽉 채워진 기분이다.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 어디 떴나 내 맘 안에 떴지.' 내 마음이 차올랐다. 내가 글로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내 글이 차오르지는 않았지만.

 



차오르고 있는가? 사라지고 있는가?    

 우리 눈에 달은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로 보인다. 보이지 않는 달, 삭까지. 그렇게만 이름 붙여졌으니.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진 않지만, 태양 빛을 반사해 우리 눈에 보인다. 혼자서 빛을 내진 않지만, 충분히 제 값어치가 드러난다. 빛을 발한다. 달에 태양 빛이 비치는 각도, 지구에서 달을 바라보는 각도, 달의 위치 등에 따라 매일 달의 모습은 바뀌고 있다. 달은 쉬지 않고 변했겠지? 달은 그대로 있지 않았다. 계속 움직였고 우리에게 보이는 모습도 저것이 다는 아닐 거다. 이름 지어지지 않은 그 사이의 모습도 있을 거다.


 밤하늘에 뜬 달이 좋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보기 힘들어진 반짝 빛나는 별보다 항상 자리를 지키며 은은하게 빛나는 달이 좋아진 요즘이다. 이렇게 달이 좋은 요즘 끌리는 제목으로 읽게 된 책이 있다. ‘달의 조각: 불완전해서 소중한 것들을 위한 기록(하현)’이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정말 많았다. 따스히 위로받는 글들이었다. 계속 읽어보고 싶은 글귀들을 되뇌다 여기 남기고 나눈다.


하현, 『달의 조각 (불완전해서 소중한 것들을 위한 기록)』, 빌리버튼, 2017년


      


불완전해서 소중한

“달이 몇 번 모습을 바꾸고 나면 한 달이 지나가고, 우리가 몇 번 모습을 바꾸고 나면 한 시절이 지나갑니다. 세상은 강요합니다. 모두가 보름에 머물러 있기를, 더 크고 밝은 빛을 내기를. 시절은 보름을 향해 흘러야 한다고. 하지만 보름을 향해 차오르고 있거나 이미 보름을 지나 기울어 가는 달. 그런 모습의 달에게 더 마음이 갑니다. 불완전한 것들에게 애정을 쏟게 되는 것도 어쩌면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반달을 닮은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에게 나도 마음이 기울었다. 둥글게 차오르지 못한 글이라 표현했지만 내 마음을 가득 꼭 채우는 글이었다. 내가 쓴 글을 보면 부끄럽다. 작가라는 사람들이 쓴 책은 하나같이 문장들이 멋지던데. 작가가 아니라더니 수려한 글솜씨를 가진 사람들이 많던데.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읽으면 나는 언제쯤 저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부럽다. 같은 말이라도 분명 끌리는 문장은 따로 있더라.


 나의 글은 ‘그믐'이 되었지만, 아직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차오르는 중이다. 불완전하다. 그래도 더 마음이 간다. 보름이 이상향은 아니다. 꽉 채워진 모습만 예쁜 달이 아니니. 밤하늘에 뜬 초승달을 보아도 그렇게 예쁘다. 또 다른 모습으로 마음이 간다. 내 마음에는 가득 찼다. 반달의 우리는 충분히 아름다우니, 보름달이 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알면서도 잊고 있었다. 작가의 말처럼 보름달은 한 달에 단 하루. 가장 짧은 시간을 스치고 사라질 뿐 우리가 모두 보름달이 될 의무는 없었다.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열정보다 미지근한 온기가 오래가니. 데일 열정은 조금 넣어두고 온기는 남겨둬야겠다.


적당히 차가운 무관심, 낮잠, 동행, 미지근한 온기, 숨바꼭질

 반달을 닮은 하현이란 필명까지 맘에 들었다. 소제목들도 참 좋았다. 미지근한 온기라니. 뜨거운 차, 차가운 음료수 뜨겁고 차가운 것만 찾았던 것 같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에 끌리듯.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지만, 항상 "앗, 차가!", "앗, 뜨거!" 하곤 바로 찾던 그 적당함. 미지근한 온기가 주는 그 따스함. 이 책도 미지근하지만 따스한 온기 같다. 무조건 해내야 한다고 뜨겁게 불태우지 않았고 차갑게 얼어버린 현실 같지도 않았다. 너무 잘하려고 행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건네는 위로 같았다. 괜찮다고.


 고요한 밤 잔잔히 떠올라 차오르기도 하고 기울기도 하는 달을 보는 기분으로 읽었다. 나도 내가 진정으로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지 발견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한 말은 흩어지지만 내가 쓴 글은 남아 있으니. 내 글을 들여다보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글을 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로 그 시절의 아픔을 온전히 견디기는 버겁다. 불완전해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더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걸 이 책으로 위로받았다. 따스한 온기와 함께.




물려받은 계절

“어쩌면 당신은 영원히 자라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를 보살피는 사이 어른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는 지금의 청춘만큼 한때 청춘이라 불렸던 시절들도 많겠지요. 당신의 청춘을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끔 서럽습니다. 나에게는 당신에게서 빼앗은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나는 아빠의 청춘을 훔치며 자랐다. 어쩌면 가장이란 지켜야 할 단 하나를 위해 너무도 많은 것들을 포기하도록 강요받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아빠의 청춘과 맞바꾼 내가 적어도 딱 그만큼의 가치는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나도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 빨리 나이를 먹고 싶다는 소리를 했지만, 이제는 배부른 소리 같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어른이라 불린다. 언젠가부터 시간은 더 빨리 흐르기 시작했고 책임져야 할 건 느는데 나는 늘지 않았다. 아직 서툴고 어색하다. 뚝딱거린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부터 항상 내 눈에 완벽해 보였던 부모님도 오래전에는 어린이였다. 부모도 자식을 가진 부모고 성숙해야 하는 어른이기 전에 같은 시기를 겪어온 똑같은 사람이다. 늘 모든 걸 다 알고 잘해야 했지만, 어른도 부모도 처음이었을 텐데. 항상 옆에 있어 바라는 것만 많고 나도 모르게 퉁명스러운 말투가 나왔던 때만 기억난다. 이때까지 너무 나만 생각하지 않았나, 부모님이 나에게 해주는 많은 것들이, 희생과 헌신이 너무 당연하다 여기며 살진 않았나 후회됐다. 그래서 이제는 나이를 먹는 게 싫다. 함께 해보지 못한 건 많고 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다.



빛의 나비와 어둠의 나방

“꽃과 어울린 나비는 모두에게 환영받았다. 나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의 시간이 찾아왔다. 짙은 어둠 속에서는 그 어떤 꽃도 찾을 수 없었다. 밤은 길었고, 또 추웠다. 작은 불을 향해 날아든 나와 마주친 사람들은 마치 벌레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내 날개를 환영하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자꾸만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나를 밀어 넣고 조그만 빛을 찾아 떠도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꽃을 사랑했다면 그들은 나를 사랑했을까. 그들은 알까, 내 세상의 꽃은 꺼져가는 희미한 불빛 하나였다는 것을.”     

 작가는 나비를 닮은 사람들은 넘치는 관심과 사랑, 빛이 쏟아지는 세상 속에서 산다고 표현했다. 언뜻 보기에도 나비는 화려하고 아름답다. 나비는 언제나 봄이다. 그런 나비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아름답지 않은 것들이라는 사실을. 밝음 뒤에 어둠이 있기에  반짝일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되는데 말이다. 나비와 같은 관심을 받지는 못하지만 보이지 않는 어둠을 묵묵히 지키는 나방을 닮은 사람들에게 눈길이 간다. ‘혼자서도 잘해요.’ 하는 아이들보단   하고 혼자서 끙끙 앓는 아이에게 눈길이 간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면  아이는 내내 힘들  같아서. 나방을 닮은 아이들이 깊은 어둠 속에서도 따뜻한 봄을 맞이할  있도록 먼저  내밀고 싶어진다.

          


잘 지내고 있는지

“세상의 끝까지 나와 함께할 것이 분명한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니, 가장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가장 소홀히 하기 쉬운 나에게, 너무도 가까워 가끔 잊고 살았던 나에게 한 번쯤 물어봤으면 좋겠다. 너는 오늘 잘 지내고 있냐고, 정말 잘 지내고 있냐고.”

 오늘은 어떤지, 괜찮은지 물어본 적이 있었나? 나에게? 타인의 안부는 궁금해하고 챙기며 나에게는 무심했구나. 나를 돌보고 다독여주는 것도 나였어야 하는데.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힘들지 않았는지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에게 꼭 물어봐야겠다. “글을 쓰며 어땠어? 행복했어?” 내 글이 차오르지는 않았지만, 나는 글로 차올랐어. 넉넉히 만족하고 행복했어. 그리고 더 쓰고 싶어. 그럼 다시 ‘하루’부터 시작해야 하나? 아니다. 이제는 날짜를 세지 않으려 한다. 날짜 대신 자유를 더하자. 확 타올랐다 꺼질 불꽃보단 미지근한 온기가 되자. 부담은 내려놓고 더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글을 언제든 이것저것 끄적여도 보고 두드려도 봐야겠다. 일단 스스로 한 약속은 지켰으니.





나의 공간에 나의 글을 남깁니다.


글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현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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