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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꿈 Nov 06. 2022

라곰, 그 적당함의 행복

적당해서 더 충만한 행복


꽤 맘에 드는 말, ‘라곰’

  먼저 ‘Lagom(라곰)’이란 무슨 뜻일까? 처음 듣는 말이라 찾아보았다. 스웨덴어로 ‘적당한’, ‘딱 알맞은’과 같이 ‘균형’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적당하다? 소박하고 균형 잡힌 생활과 공동체와의 조화를 중시하는 삶의 경향으로 이는 스웨덴에서 중시되는 덕목이란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이 떠올랐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릴 적부터 꾸준히 중용의 덕을 몸에 익히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했다는데 ‘라곰’이 딱 그렇다. 뭐든 지나치면 넘쳐버리고 부족하면 허하다. 둘 다 낭패다. 뭐든 부족하거나 과하지 않게 적당함이 필요하다. 뜻을 알고 나니 ‘라곰’이란 말 꽤 맘에 든다. 


  “라곰은 야심 찬 계획보다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삶의 작은 성취를 축하하며, 나를 아끼고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을 중시한다. 또한, 이러한 균형 잡힌 삶을 통해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적당하게 소유하고 있다고 느끼고, 자신을 둘러싼 지역 사회, 환경과 조화롭게 사는 것을 목표로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라곰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스웨덴의 국민 화가, 칼 라르손은 행복을 그린 화가다. 자기 가족을 주제로, 소박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수채화를 주로 그려 칼 라르손이 그린 가족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편안해진다. 그림이 풍기는 여유로움이 평화로우면서 낭만적이다.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부족하거나 과하지 않게 딱 알맞게 삶의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것, 단순하고 소소해도 적당한 행복, 칼 라르손의 그림에서 ‘라곰’을 찾을 수 있었다.


칼 라르손, 『게임 준비』, 1901


이 그림, 첫인상

  동화 같다. 너무 예쁜 가족의 모습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이랄까? 보기 좋다. 그림 한 점인데 어떤 가족일지 궁금하고 이 가족이 상상된다. 그래서 한 편의 동화 같다.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나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포근하고 따뜻한 그림체다. 전체적으로 집 안을 따스한 빛이 감싸고 있는 듯하다. 다정하고 따사롭다. 그림에서 따뜻함, 여유, 넉넉함, 온화함, 포근함, 편안함이 느껴진다. 아늑한 주말 오후, 가족과 함께하는 평온한 저녁 시간 같다.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행복은 저런 걸까? 어렴풋이 상상해 본다.



어떤 장면을 그린 그림일까?

  엄마와 아이들이 보인다. 부엌 같은데 기다란 식탁 위에는 그릇과 찻잔, 과일과 간식이 보인다. 꽃과 조명으로 이 공간을 밝혔다. 덕분에 분위기가 한층 따스하고 편안해진 것 같다. 식사 중인 걸까? 그러기엔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럼 식사 후 티타임일까? 뒷배경에도 눈이 간다. 찬장에는 식기들이 가득하다. 장식장에도 무언가 가득 차 있고 가지런히 정돈된 게 아주 깔끔하다. 엄마는 피아노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엄마의 손이 닿은 것은 와인일까? 맞은편에 있는 남편을 보고는 저 병을 잡은 걸까? 오늘 저녁 와인을 한잔하려나? 부엌 같은데 싱크대는 보이지 않는다. 반대편에 있을까? 궁금하다. 큰 식탁 위에 식탁보가 길게 깔려있고 역시 촛불이 빠지면 섭하지. 곳곳에 촛불이 제 몸을 태워 따뜻한 빛을 내고 있다. 단란한 가족들의 저녁 식사 장면을 보고 있으니 여러 의미로 여유로워 보인다. 칼 라르손의 가족 그림일 것 같다. 자녀가 많았다는데 나머지 가족들은 어디에 있을지도 궁금하다. 딸들이 그림 그리는 아빠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자신을 자주 보던 딸들의 시선을 그린 걸까? 그림의 반대편 모습 그리고 그 너머의 모습이 궁금해 상상하게 된다.



제목이 왜 <게임 준비>일까?

  처음 그림을 보고 제목을 봤을 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식사하는 모습 같은데 왜 제목이 게임 준비일까? 아이들과 게임을 하기로 했을까? 식후 가족끼리 어떤 게임을 하기로 했을 것 같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 식사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기분 좋게 시작하지 않을까? 아내도 아이들도 식사 후 가족이 항상 함께하는 오붓한 시간을 기다리며 설레는 눈빛이 아닐까? 그래서 제목이 ‘게임 준비’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 그림을 보며, 나는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구나. 그림에 대해 아는 지식이 부족하니 궁금한 것만 가득 떠안으며 그림을 감상했다. 뭐로 그렸을까? 어쩜 저렇게 자세하게 그리고 채색까지 하나하나 다르게 했을까? 머리카락이며 식탁보며 한 올 한 올 나타낸 걸 보니 실력도 실력이지만 웬만한 정성으로는 못 하겠다. 내 가족의 모습을 어떤 눈으로 보았는지 참 사랑스럽게 그렸다.


  그림을 보고 있으니 칼 라르손이란 화가가 더 궁금해져 이 화가의 작품과 생애를 찾아보았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쩜 작품들마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얼마나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집이란 공간을 아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집 구석구석을 참 자세히 묘사했는데 하나같이 예쁘고 아기자기했다. 가구 브랜드 이케아의 정신적 뿌리라더니 역시 디자인 감각이 탁월했다. 식구 수가 늘어날 때마다 필요한 가구를 직접 디자인해 만들며 집을 꾸몄고 이런 집이 스웨덴 실내 디자인의 표준이 되었단다. 내가 만든 나의 집이라, 더 맘이 가겠다.


칼 라르손, 『커다란 자작나무 아래의 아침 식사』, 1895


  아내의 모습, 자녀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더라. 그래도 가족이 모여 있는 이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따로따로 있을 때보다 한데 모였을 때 비로소 온전한 가족이다. 함께 만든 소중한 집 앞 푸른 잔디 마당, 커다란 자작나무 그늘 아래서 오순도순 아침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참 예쁘다. 누구나 원하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가족과 집이 내 생애 최고의 걸작이다.”라는 칼 라르손은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면서 참으로 행복했을 것 같다. 그림 속 가족의 모습은 항상 행복해 보였다. 왜 행복을 그린 화가라는지 그림만 봐도 단번에 알겠더라. 그림이라는 것을 통해 내 눈이 가장 많이 머무는 것과 그 순간을 그렸구나.



내 삶을 ‘라곰’하게 만드는 것

  사실 나는 ‘라곰’과 잘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다. ‘적당히’라는 말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부족하거나 과하지 않게 딱 알맞은’ 사람도 아니거니와 그런 삶을 살고 있지도 않다. 늘 넘칠 듯 많거나 아예 없다. 나는 ‘라곰’과 거리가 먼 사람 아닐까? 내 삶을 ‘라곰’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그나마 그 정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가족인 것 같다.


  감성적인 나에게 이성적인 조언을 서슴지 않는 가족이다. 현실보단 이상에 살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잘하는 나에게 현실을 직시하는 조언을 해준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온전히  편을 들어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옳아야 옳은 거고, 맞아야 맞는 거다. 가족이라 자식이라  편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잘못을 찾아 뉘우치게 했다. 그래. 스스로   알아야 하고 후회도 반성도  몫이다. 떼쓴다고 되는  없다. 그렇게 이성과 감성의 적정선을 찾아야지. 덕분에  삶의 균형이 조금 잡힌  같다. 결국 내가 해결해야  일이다. 나의 몫이다. 불만을 토로하기보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지. 힘들어도 일어나게 된다. 그렇게 의지력과 도전정신이 강해지니 웬만한 일에 좌절하지 않고 타격이 크지 않은 것도 같다. 극단에 치우쳐질 때마다 내가 다시 중간을 찾을  있도록 도운  가족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딱 알맞은 삶’

  사람마다 본인이 생각하는 만족스러운 삶, 원하는 삶의 모습은 다르겠지만 ‘딱 알맞은 삶’은 뭘까? 아주 좋지도 몹시 나쁘지도 않은 딱 중간의 삶일까? 괜찮은 삶? 남들은 모르겠고 나에게 ‘딱 알맞은 삶’은 ‘별것 아닌 일에도 소소하게 웃는 삶’ 같다. 하늘을 날아갈 듯 기뻐 날뛰는 날도 있고 우울의 끝을 달려 저 밑 지하로 떨어지는 날도 있다. 어떨 땐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내가 가장 행복할 것 같이 들뜨다 어떨 땐 아무도 나에게 말 걸지 않았으면 하며 혼자서 끝없는 우울을 안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순간은 버겁다. 지친다. 누구의 삶이든 하늘을 날아갈 듯 행복한 순간은 사실 많지 않다. 그래서 한여름도 한겨울도 아닌 봄, 가을 같은 고요히 따사로운 순간이 필요하다. 끝과 끝이 아닌 중간, 알맞게 행복한 순간이 필요하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행복을 찾고 별것 아닌 일에도 소소하게 웃고 싶다. ‘푸하하’ 박장대소하든 ‘깔깔’ 자지러지게 웃든 ‘풉’ 참다가 웃든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오든 다 웃음이니까.


  다들 치열하게 복잡하게 산다. 그래서 ‘라곰’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네 삶은 다 비슷할 텐데. 뭘 위해 그렇게 질주했을까? 달리고 있을까? 힘들게 말고 단순하게 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다. 사실 행복은 나에게 달렸는데. 내가 생각하기 나름인데. 어찌 보면 ‘라곰’이란 말은 ‘적당함’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욕심을 덜어내니 오히려 ‘충만함’ 같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부족함도 적당함도 아닌 충분함이 될 수 있구나. ‘라곰’에 비추어 나의 행복을 더 크게 크게 만들어 넉넉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행복으로 가득 차오른다. 나른한 오후 책 한 권 골라 따스한 햇볕 쬐며 읽다 스르르 잠들어도 행복인걸.





나의 공간에 나의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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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현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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